국내 시장점유율 5% 미만으로 찬밥 대우를 받고 있는 일본영화가 최근 들어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영화의 이 같은 정중동의 분위기는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가의 급격한 우경화로 한일 양국 관계가 냉각 일로를 치닫고 있는 상황에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특히 오는 10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경우 일본 문화청이 직접 주관하는 행사. 일본 영화계가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첫 회 행사 때는 일본 문화계의 거물인 가와이 하야오 문화청 장관이 직접 내한해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과 한일 문화교류에 대해 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개막작은 일본 개봉보다 앞서 국내 '첫 선'**
올해 일본영화제의 주제는 '다양성의 힘'. 1960년부터 2005년까지 만들어진 작품들로 그동안 국내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영화 45편을 모았다. 이들 작품 가운데는 그동안 명성으로만 듣던 시리즈 영화 '남자는 괴로워'나 맹인검객의 활약을 그린 '자토이치' 등이 포함돼 있다. 최신작들이 다수 소개되는 것도 이번 영화제의 특징이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고이즈미 다카시 감독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일본 개봉보다 먼저 국내에 선보이는 작품.
폐막작으로 소개되는 오가타 아키라 감독의 '언젠가 책 읽는 날'(2005)을 비롯해서 '로큰롤 미싱'(2002) '와일드 플라워즈'(2004) '카나리아'(2005) 등처럼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최신작들을 줄줄이 만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자 일본 영화계의 최근 경향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핑크무비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 '당한 여자'의 경우 영화제 관객들로부터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최근 본래 상태의 필름으로 복원돼 일본에 앞서 국내에서 먼저 소개된다. 이번 일본영화제는 특히 영화상영과 함께 해당 작품의 감독과 배우 등 25여 명이 대거 내한해 관객들을 직접 만날 예정이어서 일본영화의 한국침공이 본격화 하는 모습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말부터 서울 명동에 일본영화전용관 오픈**
이렇게 한 자리에서 대대적으로 일본영화들을 만나는 일 말고도 지속적으로 일본영화가 한국관객을 찾아가는 길도 열린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에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 온 영화사 씨네콰논의 이봉우 대표가 우리의 명동에 일본영화전용관인 CQN명동을 개관하는 것. CQN명동은 적게는 84석에서 많게는 145석짜리의 스크린 5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최소 1개관에서 365일 내내 일본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국내에 일본영화만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생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CQN명동의 운영을 맡게 된 씨네콰논 코리아의 이애숙 대표(사진)는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목표는 한일합작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진정으로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일본에 한국의 영화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서 "하지만 한쪽만 가지고는 우리의 목표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제는 한국에 일본의 좋은 영화들을 많이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영화가 국내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1월말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갈 CQN명동은 첫 상영작으로 우리나라의 배두나가 출연한 일본영화 '린다 린다 린다'를 선정했다.
***속속 이어지는 '아시아권' 합작영화**
한국을 비롯, 아시아권과 일본영화계의 합작 분위기도 더욱 활기를 띠는 양상이다. 일본 히데키 모리의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한국의 안성기와 홍콩의 유덕화 등이 출연하는 중국 장지량 감독의 영화 '묵공'이 대표적인 작품. 하지만 이렇게 '큰 덩치'의 영화 외에 작은 규모의 영화들도 속속 제작중이어서 영화제작에 관한 한 한일 양국이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에이원시네마가 일본에서 80% 이상 로케로 제작중인 '스윗 드림' 같은 작품이 좋은 예다. 이 영화에는 '전국 자위대'란 작품으로 일본 내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 기타무라 가즈키(사진)가 우리의 연정훈 등과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다음은 한국 촬영분을 위해 지난 달말 잠시 우리나라를 찾은 기타무라 가즈키와의 짧은 일문일답 내용.
- 한국영화 출연은 처음일 텐데….
"영화출연뿐 아니라 한국에 온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다. 5일 정도밖에 체류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 하지만 그 전부터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한국의 수준 높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봤나?
"브라더후드. 아, 한국 제목으로는 '찐구'. 뭐라고? '진구', 아 '친구'라고? 그래 맞다. '친구'. 그 영화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잔돈건(장동건) 연기가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배연준(배용준)보다는 잔돈건 씨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에서는 워낙 배연준(배용준) 씨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 이번 영화가 당신이 좋아하는 '친구'와 분위기가 비슷한 얘기 같던데….
"분위기만 그렇다. 재일동포와 그의 일본인 친구의 얘기다. 4명의 친구가 나오는데 나는 여기서 일본인 친구로 나온다. 서로의 운명이 얽히고 설킨다."
- 평소 재일동포들을 잘 알고 지내나?
"(웃음, 당연하다는 듯이) 물론이다. 난 오사카 출신이다. 거긴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일본인들이 굉장히 많다. 어릴 때부터 재일동포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살았다. 한국이 친근하게 느껴져 왔던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 한국과 일본의 영화계를 비교한다면?
"굳이 비교할 필요 있을까? 영화를 만드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하니까. 다만 한국 영화는 요즘 굉장히 좋아졌다. 물론 좋고, 안 좋은 영화들의 수준차이가 아직까지는 아주 큰 것 같기는 하다. 일본은… TV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영화계가 많이 위축돼 있다. 재능 있는 감독들이 제작지원을 받기가 점점 힘이 드는 것 같다."
- 한일합작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당연히 두 나라가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와 내가 그런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한국 관객, 일본 영화에 조금씩 호감**
하지만 이 같은 외형적 분위기의 변화와는 별도로 일본영화가 국내에서 조금씩이나마 관객들의 시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고, 또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일본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질적인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올 상반기에 개봉돼 무려 3개월 가까이 롱런 상영됐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작품이 최근 일부 비상업영화관이긴 해도 재개봉과 연장상영이 잇따르고 있을 만큼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일본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5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아 이른바 '대박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흥행 여부와는 별도로 최근 들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토니 타키타니' 등 일본영화 개봉이 잇따르고 있으며 현재는 '도쿄 타워'가 영화팬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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