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항상 가슴을 짓누르며 잠 못 이루게 하는 미해결 문제가 있는데, 지금은 그게 *가르시아다. 가르시아는 임신하자마자 한국인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필리핀 여성으로 벌써 임신 7개월.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자 연장이었다! 비자 연장이 되어야 한국에서 출산할 수 있고 최소한 그래야 아기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비자 연장을 하려면 적절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녀는 내 권유를 받아들여 여의도에 두 번이나 찾아갔다. 한국 최고 권위의 가정법률상담소에 소송을 도와달라고 간 거다. 한 번은 필리핀 신부님과 함께, 또 한 번은 로스쿨 재학생과 함께.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미혼모는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우리는 이혼 전문입니다." 또는 "아기 낳거든 오세요. 그때 친자확인소송을 해 드리죠." 였다. 아기를 한국에서 낳으려면 지금 당장 *소송이 필요한데 왜 먼 훗날 일을 거론하나? 언제나 절감하는 바이지만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많아도 실제로 도와주는 데는 드물다.
실망한 그녀는 다 포기하고 무작정 귀국하겠다고 나왔다. "그냥 갈래요." 그녀는 너무나 약해져 있었고, 나 역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진정성을 가지고 도와준 한국인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가르시아가 이런 소리를 했을까? 그러나 고작 내가 한 말은 "가면 안 돼!" 였다. 만일 그냥 가면 아기는 버림받은 수많은 *코피노 중의 하나가 되고 엄마는 필리핀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아가며 힘들게 살아가는 미혼모가 되리라.
"가르시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어떻게요? 지금 당장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는데. 먹고 잘 데도 없고 돈도 없어요." "돈이 무슨 필요가 있어? 인지대만 있으면 되는데! 그리고 쉼터는 천주교에 많으니까 신부님한테 부탁해봐." "신부님은 쉼터 같은 거 모른대요. 그리고 한 달 안에 필리핀 가신대요." "그럼 우리 자원봉사자 집에라도 재워줄 게."
그녀를 일단 달래놓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방에서 구원의 손길이 답지했다.
1. 오산의 쉼터에서 6개월간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오고 2. 자원봉사자인 영어통역 N, L 씨가 한국말을 못하는 가르시아와 필리핀 증인들의 진술을 영어로 받아 한국어로 옮기고 3. 이 진술서를 근거로 이주여성전문가인 C 씨가 소장 초안을 만들고 4. 로스쿨 학생인 K 씨가 법리에 맞게 손질했다.
이리하여 대강 소장의 형태는 갖춰졌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만든 이 엉성한 소장이 과연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 또한 누가 이 소송을 진행하고 변론을 해줄지가 큰 걱정이었다. 진짜 프로가 도와주면 딱 좋은데. 그러나 간단한 법률자문 정도 해주는 변호사야 많지만 시간 들고 귀찮은 이런 소송을 어떤 변호사가 무료로 해주겠나?
나는 미친 척하고 K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에도 폭행당하는 베트남 여성을 도와준 적이 있으니까.
그녀의 딱한 사정을 빗대어 설명했다. "여의도에도 두 번이나 갔었거든요." 뜻밖에도 K 변호사는 선선히 응했다. "목사님, 진작에 저한테 부탁하시지 그랬어요."
역시 프로는 달랐다. K 변호사는 6일 만에 완벽한 소장을 만들어 신속하게 법원에 제출했고 나는 그 소장 사본을 출입국에 제출하여 그녀의 비자를 6개월 연장할 수 있었다. 불과 체류 만기 닷새 전이었다.
비자를 연장하자마자 K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변호사님은 참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펄쩍 뛰면서 겸사했다. "목사님도! 무슨 말씀이세요? 곧 한번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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