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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네타키리',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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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네타키리',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덫 8] 일본 노인수발 시스템 연구한 김동선씨

"2004년 고령화율이 19.5%를 기록한 일본에서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뭔 줄 아십니까? 네타키리(寢たきり, '누운 채'라는 뜻으로 뇌줄중·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누워 지내는 노인을 지칭하는 말)예요."

지난 2001년 1년간 일본 니가타 현의 야마토마치에 머물며 '노인수발 시스템'을 연구한 기자 출신 김동선 씨의 말이다. 야마토마치 마을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노인복지 마을로 후생노동성 관료들이 견학을 위해 줄을 잇는 곳이다.

<사진 1>

고령사회의 특징은 비교적 건강한 전기 고령자(65~74세)에 비해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 데에 있다. 이들은 노화나 질병으로 치매나 전신불수가 될 확률이 높아 수발이 꼭 필요한 연령층이다. 수발의 장기화와 의료비 증가, 연금재정 고갈이 발생하는 고령사회의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50~60대가 70~80대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부양'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2020년경에는 고령화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도 '네타키리'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이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네타키리'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고령사회 준비, 그래도 우리는 일본보다 빠른 편"**

김동선 씨는 "그래도 우리는 일본에 비하면 장기수발 보장제도의 도입이 빠른 편"이라고 평했다. 일본의 고령화는 이미 1970년대 초에 시작됐지만 한국의 '노인수발보장법(2008년도 시행 예정)'에 해당하는 공적개호보험이 도입된 시점은 불과 5년 전인 2000년도라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고령사회를 맞이하고도 일본 정부가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았던 주된 원인은 '가족신화'에 있었다.

"일본에서는 사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노인 부양을 둘러싼 문제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인 수발에 대한 경제적, 정신적 피로와 이로 인한 부부 간 불화 등을 국민들이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폭발시킨 거죠. 부모를 시설이나 타인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일본 특유의 수치심 문화가 와병노인의 수발 문제를 가정 내에 가둬놨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겁니다."

치매라도 있다면 영락없이 집 안에 갇혔던 노인을 돌보는 책임은 주로 며느리들의 몫이었고, 이들의 피폐한 육체와 쌓인 감정이 노인 학대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될 무렵 기업에 의존하던 '일본식 복지'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민으로부터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거둬 높은 수준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육아와 노인 부양은 가족에게, 종업원의 가족 복지와 노후는 기업에게 떠넘겨 왔다. 이런 '일본식 복지'가 가족의 급격한 해체와 무너진 종신고용제로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가족·시장·정부의 '최적 믹스' 지향하는 일본의 '노인복지'**

"노인수발은 24시간 계속되는 중노동이에요. 하루종일 자리에 누워 지내는 노인이라도 기저귀를 갈아주랴, 식사를 떠먹이랴, 씻기랴 잠시도 틈이 없어요. 한밤중에도 1시간 간격으로 일어나거나 기침, 가래 등으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면 가족까지 덩달아 늘 잠이 부족하게 마련이죠.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사타구니 살이 헐어버리죠, 누운 위치를 자주 옮겨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겨 피부가 짓무르죠…. 끝도 없는 반복입니다."

2000년 4월에 시작된 일본의 '공적개호보험(公的介護保險)' 제도는 부모수발의 부담을 져야 하는 40세 이상 모든 국민을 피보험자로 한다. 이 제도는 준조세의 성격을 지녔음에도 도입 당시 일본인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평생 보험료를 냈다 하더라도 85개 항목에 이르는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지만 '내가 자리에 드러누으면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안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표 공적개호 서비스의 종류>

김동선 씨는 "수발서비스 제도는 각 노인의 욕구와 가족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일본의 제도도 시설서비스와 재가서비스로 나뉘는데, 야마토마치 마을의 경우 주간보호시설, 홈헬퍼, 방문간호 등 다양한 재가서비스를 지자체가 제공해 가족과 수발노동을 분담한 것이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성공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점점 사회적 책임 요구받는 일본의 고령층…한국도 머지 않았다"**

그는 "물론 공적개호보험에도 단점이 있어서 보험료가 계속 오르고, 노인복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자체의 주민들은 보험료를 내고도 시설이용을 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있지만, 일본은 이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로 사회가 굉장히 바뀌었다"며 "서비스 주체를 기존의 복지법인이나 지자체에서 기업으로 확대 개방해 실버산업의 길을 터준 것도 대표적 사례"라고 평했다.

일본의 노인들은 점점 현역세대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길 요구받고 있다. 현재 일본 복지개혁의 가장 큰 기조는 노년 세대에 대해 일정하게 부담을 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기존에 일본의 노인들에게 공짜나 다름없던 의료서비스는 물론 연금혜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희생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김동선 씨는 "물론 돈을 움켜쥔 일본의 노인층과 경제적 약자인 한국의 노인들은 상황이 많이 다르고, 여전히 우리는 노인복지의 기초부터 다지는 게 시급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복지의 확대와 더불어 조세부담이 확대되고 경제의 탄력을 약화되지 않도록 '정부와 시장의 최적 믹스'를 고민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현재 노인수발 문제로 인해 도리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세대나, 10~20년 뒤 한국을 중추가 될 청년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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