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성형수술 전과 후를 비교하는 '비포(before) 앤드 애프터(after)' 사진 중 '비포'의 주인공들은 입 꼬리가 턱에 닿을 만큼 낮다. 수술한 얼굴만큼이나 표정도 화사해진 '애프터'를 빛내기 위해서다. 흐리멍텅한 '비포'의 눈동자를 보면서 '초점이라도 맞추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랴, '비포'에겐 '비포'의 몫이 있는 것을….
이런 성형외과 문전만큼이나 '비포'의 기를 죽이는 곳이 바로 선거판이다. 후보들의 공약이 담긴 선거자료집 첫 면에는 여지없이 '우리 동네가 얼마나 낙후됐는지'를 설명하는 사진과 표로 가득하다. 개중에는 정말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들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평균 정도 혹은 평균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만 못 살고', '우리 동네만 떨어진다'는 식으로 나발을 불어댄다.
이 역시 '애프터'로 따라 붙을 개발 공약을 빛내기 위해서다. 들쭉날쭉한 빌딩들을 애써 무시하고 "우리 동네엔 변변한 건물 하나 없다"고 해야 큰 기관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우뚝해 보이고, 열심히 공부하는 동네 아이들을 외면하고 "우리 동네 교육 수준이 전국 바닥"이라고 내 몰아야 학원가를 만들고 교육 관련 재정을 늘리겠다는 약속이 우쭐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성형외과에선 '애프터'가 현재이지만, 선거가 휩쓸고 간 지역에서는 여전히 '비포'가 현실이란 데에 있다. 물론 꽃다발을 움켜진 선거의 승자들은 '애프터'를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여의도로 입성하지만, 그 다짐은 여의도 어디 메에 잠들기 마련이고, 선거를 통해 제 동네의 '낙후성'을 깨달아 버린 주민들만 '비포'의 현실 속에서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며칠전 10·26 재선거가 치러진 4개 지역도 여지없이 '낙후' 판정을 받았다. 그 중 지역에 공군 전투기 비행장이 있는 대구 동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선거만 다가오면 전투기 소음이 더 커진다"고 했다. '비행장 옮기는 일이 어디 쉽겠냐'는 생각에 그럭저럭 소음에 적응해 살았지만, "전투기 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대학을 못가고, 집값이 떨어지고, 노인들은 귀가 빨리 먼다"고 떠들어 대는 후보들의 '선전' 탓에 "선거철만 되면 전투기가 이마 앞으로 지나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전투기 소음 해결'을 공약한 후보를 네 번이나 여의도로 보내줬지만 비행장 이전은커녕 방음벽 설치도 해 주지 않아 급기야 "이제는 선거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이 기자에게도 옹이로 남아 약속을 한 후보의 참모를 만났지만 "소음해결은 20년 된 공약이다. 20년이 더 지나도 해결되기 어렵겠지만 20년 후에도 먹힐 공약이다"라는 뻔뻔스런 고백이 돌아왔다. '야비한 선거판'은 물론 이를 두고 '꽃 중의 꽃'이라고 강변하는 정치판에 왜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어떻게 '정치 무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선거에 나선 후보가 공약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킬 수 있는 공약만 하라'는 빛 좋은 조언은 선거판에선 '당선을 포기하라'는 개살구로 통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제 공약 빛낼 요량으로 많은 이가 뿌리 내린 터를 마음대로 짓밟는 '관행'은 경고 받아야 마땅치 않을까. 이제 유권자들도 '제 지역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대표로 나선다면서 '제 지역에 먹칠을 해대는' 선거꾼들의 얄팍한 수를 '표가진 힘'으로 몰아내야 하지 않을까.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등등 첩첩히 남은 선거일정을 보며 '다음 번엔 전국이 낙후될까' 두려운 건 기자의 노파심만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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