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20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퇴출 사태를 비난하며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검토하고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힌 데 대해 정부는 북한이 현대와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수순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개성 관광을 다른 대상과 협의할 수밖에"**
아태평화위는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김 전 부회장 퇴출이 현대와 북한 간의 신의를 저버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배은망덕이라면서 "이제는 현대가 본래의 실체도 없고 신의도 다 깨버린 조건에서 그전과 같은 우리의 협력대상으로 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며 따라서 우리는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변인 담화는 이어 "지금 일정에 올라 있는 개성관광에 대해 말한다 해도 현대와는 이 사업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됐으며 부득불 다른 대상과 관광협의를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 "2000년 8월에 현대측이 우리와 체결한 '7대 협력사업합의서'라는 것도 해당한 법적 절차와 쌍방 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수정 보충하거나 다시 협의할 수도 있게 돼 있다"면서 "더우기(더욱이) 이제 와서는 그 합의의 주체도 다 없어진 조건에서 우리는 구태여 그에 구속돼 있을 이유마저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담화는 "우리가 현대사태를 문제시하게 되는 것은 우리와 현대 사이의 신의를 귀중히 여기고 있는 데 있다"면서 "우리는 정주영, 정몽헌 선생을 떠난 현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듯이 정주영, 정몽헌 선생을 떠난 김윤규 전 부회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정주영, 정몽헌 선생들이자 곧 김윤규로 여겨 왔다"고 말했다.
***"현대에게도 앞날과 길 있어"로 마무리 주목**
대변인 담화는 "금강산관광사업 개척과 추진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주역이 하루아침에 이름도 모를 몇몇 사람들에 의해 축출당하고 민족의 기쁨과 통일의 희망이었던 금강산 관광이 전면중단의 엄중한 위기에 처하게 된 데 대해 우리는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담화는 또 "이번 현대사태에는 미국과 한나라당의 검은 손이 깊숙이 뻗치고 있다는 설도 떠돌고 있다"면서 "현대의 현 상층과 한나라당 고위당직자와 근친관계로 볼 때 남조선에서 떠도는 그들 사이의 밀약설도 전혀 무근거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외적인 변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담화는 그러나 후반부에서 "현대에게도 앞날은 있고 길은 있다"면서 "우리는 현대측 상층부가 본의 아니게 이번 사태를 빚어냈다면 후회도 하고 뉘우침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리고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금강산 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주는 아량을 보이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현대의 현 상층부가 민족의 지향과 대세를 똑바로 보고 바른 길에 들어서길 기대한다"고 끝맺었다.
***"北은 속마음을 반대로 얘기할 때가 있다"**
아태평화위의 이같은 발언은 현대아산과 북측이 김 전 부회장의 부회장직 박탈 이후 처음으로 오는 22-25일 한국관광공사 주관으로 진행되는 평양관광에서 공식 접촉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담화가 표현의 강도로 보아 현대와 완전히 결별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그러나 이같은 부정적 해석을 경계하고 오히려 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오후 가진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금강산 관광 사업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남북사업자 간에 상호 이해와 협조 속에서 대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 사업이 조속히 정상화되기 바라며 정부도 금강산 관광 정상화를 위해 도울 수 있는 방안은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금강산 관광 사업이 정상화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모두가 손실을 입게 된다"며 "따라서 이런 상황을 조기에 마무리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북한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또 "이번 담화의 앞 부분은 그동안 현대와 아태평화위 사이의 갈등 과정을 다시 정리하는 얘기"라면서도 "뒷부분에 가면 해결 가능성 시사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문제는 사업 당사자 간에 만나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측이 현대와의 사업에 있었던 아쉬움과 분석을 내놓은 것 같다"며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북측이 현대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측이 현대와의 사업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거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북한 내부에서의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도 "북한은 속마음을 반대로 얘기할 때가 있다"면서 이번 담화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긍정적인 앞날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하기도 했다.
***개성 관광의 '현대 독점 불인정' 확인**
담화문은 실제로 현대아산의 김 전 부회장 퇴출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는 전반부를 지나 "현대에게도 앞날을 있고 길은 있다"며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어 사태 해결의 공이 현대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단 강한 어조로 판을 깰 듯 얘기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기는 북한의 통상적인 어법이 이번 담화문에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간 거론하지 않던 미국과 한나라당을 비난한 것도 현대에 겨눴던 칼끝을 누그러뜨리려는 간접적인 방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다만 북한은 "개성관광에 대해 말한다 해도 현대와는 이 사업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됐으며 부득불 다른 대상과 관광협의를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해 금강산 관광은 현대의 태도를 봐서 정상화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개성 관관은 다수가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미 '개성 관광은 공화국의 뜻대로' 할 생각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은 당혹감과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뚜렷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측에서는 김 전 부회장의 원상복귀는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힌 채 현재 외부에 머물고 있는 현정은 회장을 대신해 장한빈 기획본부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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