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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을 풍류로 풀었습니다"

[알림] 23일까지 남양주 다산유적지에서 실학축전

올해는 연암 박지원 선생과 초정 박제가 선생이 서거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분들은 영·정조 시대에 북학파 지식인들입니다. 북학파란 말은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들은 주로 이용후생을 강조하며 상업과 백성의 복리를 강조하였습니다. 북학파들은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 견문을 넓혔습니다. 조선으로서 청나라는 거의 유일한 국제사회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한 조선을 발전시키자는 주장을 합니다.

이용후생학파는 도시 중상주의를 중시하였다면, 반계, 성호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는 농본주의를 중시하였습니다. 그후 다산에 와서 두 학파는 통합적으로 집대성 됩니다. 아무튼 10월 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두 분의 사상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고, 지금 경기도 남양주 능내면에서는 축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실학축전2005' 총감독을 맡아 무척 바빴거든요. 유라시아 기행문 연재가 늦어져 미안합니다. 축제가 끝나는 대로 곧 기행문을 연재하겠습니다. 남양주시 능내면 다산유적지에서 실학축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0월 23일까지입니다. 오늘은 이 축제를 소개합니다.

올해는 2회째로 주제를 송풍천고(松風天鼓)로 하였습니다. 송풍 즉 풍류소리, 민심의 소리입니다. 풍류(風流)란 바람처럼 물처럼 자연의 무상성과 유기성을 깨닫는 경지의 문화일 테고, 천고는 하늘의 북소리 인데 즉, 천둥소리에 빗댄 민심의 소리입니다.

10월 13일 펼친 개막행사는 시작의식부터 새롭게 했습니다. 큰 뜰에서 천 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200여장의 큰 돗자리가 깔리고 거기에 차를 달이는 팽주가 한 사람씩 배치되었습니다. 시민들이 가족과 친지들로 삼삼오오 모여 큰 뜨락에 천여명이 모여 앉았습니다. 연암, 초정, 다산 3인 실학자에게 헌다례를 올리고 돗자리에 앉은 채 차를 마시며 축하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다산의 시를 가지고 동다송가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무대는 5군데 제단무대, 실악음악 앙상불 무대, 인형극놀이 무대, 시서화백탑, 그리고 중앙무대입니다. 돗자리 앉아서 빙빙 돌아가며 감상하면 되는 무대입니다. 저녁 가을 한강물이 구비치는 두물머리 강변 들판에서 풍류를 즐겼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제단에 모신 3인을 추모하며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았습니다.

실학은 영·정조시대를 전후한 지식인들의 학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지 실학이라는 개념이 문풍을 앞서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리학, 훈고학을 비판하고 실사구시로 학문을 논하자는 학풍이 새로 일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과농소초에서 "선비의 학문은 마땅히 농·상·공의 이치를 고루 갖춰야 한다. 이 세가지 분야는 반드시 모두 선비를 기다려 완성되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후세에 농·상·공 이 쇠퇴하면 선비에게 실학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이미 허학을 비판한 실학풍을 주창합니다.

원래 당시에는 실학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주장이나, 일제시대 정인보, 최현배 선생부터 실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고도 하지만, 당시 실학적 학풍이 일어 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한 수를 더해서 말하자면 실학은 영·정조시대 문예부흥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임란 이후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이농현상이 뚜렷한데, 유랑민이 되어 도시로 부유하는 도시빈민층이 부쩍 늘어나고 신흥 상공인이 도시의 대규모 시전·난전을 이룹니다.

당시 지식인으로서는 이런 물적 토대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연암의 양반전, 호질 등도 이런 신흥 계층의 역동성에 주목하고 그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쓴 문학입니다. 실학자(후에 지칭한 명칭이지만)들은 "중국의 시를 쓰지 말고, 나는 조선인이니까 조선식으로 시를 쓴다."는 당당한 주장이 나옵니다. 연암은 중국 고전을 흉내 내는 문체를 보고 매섭게 꾸짖습니다. "같음을 추구하는 것은 참이 아니다." - 夫何求乎似也 求似者非眞也

실학은 분명히 당시 문화 대격동기의 문예부흥의 한 흐름이었습니다. 신흥 대도시에서 발흥했던 도시탈춤, 서화고동(書畵古董)의 시서화 수집취미, 직업적인 광대와 장인의 문화발흥, 민중의 낙천적 구비문학·신민요·판소리 부흥, 풍속화·진경산수화의 출현 등 가히 영·정조시대 문예부흥입니다. 지식인의 실학적인 조류만을 떼어내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실학은 당대의 변화를 감지한 비판적 지식인들이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것이며 세상물정에 눈 밝은 지식인의 개혁적 주장입니다. 따라서 민중의 흐름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으며 당시 문화 전체상 속에서 실학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실학이 축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학을 학문적 섹티즘에 가두어 놓고 학술적 연구 소재로만 삼는다면 실학이 아니라 다시 허학입니다. 실학은 태어난 배경부터 백성의 삶으로부터 학문의 길을 다시 찾고자 한 것입니다. 실학축전은 삶의 한복판에서 실학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와 실학을 현학적 울타리를 넘어 생활 속에서 다시 찾자는 요구로 생겨난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을 놀듯이 하고 놀이 속에서도, 삶 속에서도 배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문화를 주제로 하는 축제에서는 농촌형 공동체문화와 도시형 시장문화를 계승하는 축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학축전처럼 지식층의 고품격 문화를 계승하는 축제는 별로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은 민속·민중적 문화인 공동체문화의 계승과 상류 지식층 개성문화의 계승, 그리고 조선 말기에 두드러진 전 민족적 위기에 나타난 영성문화까지 볼 때 완성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계승론의 편식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 역시 파행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론의 위기는 잘 아시다시피 전통 재현주의와 전통 청산주의의 극단적 선택으로 분열하여 왔습니다. 그 원인은 전통계승의 편식성에서도 기인합니다.

실학축전은 이 전통문화론의 위기의 시대에 나타난 마지막 카드인지도 모릅니다. 전통에서 신지식층이 상상하고 창조했던 진보적 풍류문화를 간과한다면 우리 전통문화 계승은 반쪽 밖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는 샘입니다. 한국의 선비문화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실학문화에서 그 빛을 발합니다. 의외로 실학과 문화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학문적 섹티즘이 많을 뿐더러 풍류를 광대문화나 저급한 놀이 문화로만 아는 실학 연구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실학자들이 추구했던 고품격 풍류문화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개체성, 지엽적 공동체성를 극복하려는 대공동체적 민족성과, 신문명기획적인 동아시아적 보편성이 정초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문화교류를 통해 얻은 눈 밝은 신지식인은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며 미래의 민족살림의 설계도를 그리다가 붓을 놓았습니다. 이후 대보수반동기 지배층은 국가위기를 가속해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력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미완의 문명 프로젝트를 승계할 소명이 있습니다.

실학축전 연출 방향은 포스터에 쓰여져 있듯이"실학을 풍류로 풀고 생활로 깨달아요."입니다. 실학을 축제로 한다면 내용을 담는 문예적 틀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아무리 양보하려 해도 실학을 서구식 문예 틀로는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쟝르주의적 예술론으로는 물과 기름처럼 이상한 기류를 느낍니다. 실학의 내용은 동아시적 문예 틀인 풍류로 담아야 제격에 맞습니다. 실학이 뜻을 밝히려는 도라면 축제는 도를 담는 양식, 즉 그릇입니다. 실학축전 마크처럼 풍류라는 그릇에 실학을 담겠습니다. 동도동기(東道東器)입니다. 동도동기로 개방적이되 중심을 잃지 않는 내용과 형식을 이제 내올 때가 되었습니다.

행사프로그램은 23일까지 계속됩니다. 매일 실학체험프로그램- 다산의 거중기 조립해보기, 백탑파의 공예취미 윤회매 만들기, 실학주제 판화 찍기, 당나귀를 타고 떠나는 열하일기 체험 등이 있고 이동식 교육극'다산선생님과의 하루'가 매일 오후 4시에 있습니다. 큰 뜨락에서는 실학풍류학교가 시서화, 악가무, 다도교실로 열리고 있어서 옛 실학선비들의 정신문화를 교육프로그램으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참여하거나 가족들이 많이 참여한답니다. 그밖에 전통놀이체험, 농경문화체험, 멋살림 기념품 코너가 마련되 있습니다. 능내면에 위치한 다산 유적지에서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멋진 축제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저는 12년 산골 생활을 일단 접고 도시로 나왔습니다. 자발적 유배자를 자처했던 지난 12년 산골 생활에서 얻은 공부를 가지고 도시로 나왔습니다. 본격적인 축제연출가, 시민문화운동의 길을 다시 걷고자 합니다. 이것도 5~6년 당분간이겠지만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깔 묻혔던 문화운동정신의 진면목이 이제 문화의 시대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시민이 스스로 선택한 전통계승, 시민과 함께 풀어가는 살림문화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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