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이름은 분단시대다.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갈려진 분단시대를 60년이나 살아왔다. 분쟁지역에 취재를 가면 듣는 얘기가 있다.
"아니, 당신 나라가 자리한 한반도도 분쟁지역인데, 그곳은 어떤가요? 사람 살기에 안전한가요?"
지구촌 분쟁지역 취재를 가서 흔히 듣는 거북스런 질문이다. "갈수록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대답하면, 으레 이어지는 질문이 "그렇다면, 당신은 북한에 가보았나요? 그곳은 어떻던가요?"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말하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묻기 일쑤다. 아니, 왜 그곳에 못 가봤냐는 투다.
이제는 어느 분쟁지역을 가더라도 "북한에 가봤어요"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운이 좋게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사장 최병모 변호사)가 광복60주년 기념으로 조직한 참관단의 한 사람이 됐다. 그래서 2박3일 동안 평양과 묘향산의 문화유적들을 돌아보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은 1시간도 채 안된다. 비행기의 좁은 유리창 밖으로 순안공항 옥상의 제법 큰 김일성 상반신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2박3일 동안 머물면서 그의 얼굴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흔히 어떤 중요 인물이 죽으면 우리는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는 표현을 하지만, 적어도 북한의 김일성에겐 그런 표현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김일성은 그 자체로 북한 사람들의 정치의식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양 순안공항에 닿은 시점은 10월 8일. 북한 노동당 창당 60주년(10월10일)을 맞이하기 바로 이틀 앞이었다. 그래서인지 순안공항에서 숙소인 평양 시내의 양각도 호텔로 이어지는 거리엔 깨끗이 한복을 차려입고 여러 색깔의 풍선이며 꽃을 들고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아, 저들도 같은 한글을 쓰고 통역도 필요 없이 말이 통하는 동포들이 아닌가.
북한 노동당 창당 60주년을 하루 앞둔 10월 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 김영춘 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군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당 기념대회를 열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그보다 하루 앞서 10월 8일 5.1경기장에서 <아리랑>을 봤다. 5.1경기장은 15만 석 규모. 지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던 곳이다. '통일의 꽃'이라 일컬어진 임수경 님이 당차게 5.1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뇌세포에 살아있을 것이다.
80분 동안 약 10만 명(겹치기 출연자를 빼면 실제로는 6만5천 명)이 출연하는 <아리랑>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널찍한 운동장에서 무용수들이 펼치는 집단적 율동, 특히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관람석 바로 맞은편에서 약 2만 명의 학생들이 보여주는 카드섹션은 굉장한 볼거리였다. 정밀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움직임이 정확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재빨리 만들어냈다. 그토록 숙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슬며시 떠올랐다.
남한의 일부 언론들은 "아리랑은 북한체제의 선전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보기 나름일 것이다. 80분 공연 가운데 극히 일부 장면은 개인숭배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북한 쪽에선 빼놓고 넘어가기 어려운 내용이다.
북한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며 <아리랑>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봐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어차피 남북 사이에 차이가 나는 부분은 있다. 구태여 그 차이를 드러내 얼굴 붉히며 따질 필요는 없다. 시간을 갖고 그 차이를 메워가는 자세가 다름 아닌 통일노력이 아닐까 싶다.
평양 순안공항을 떠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는 중국 산동반도 쪽으로 향했다가 곧 남쪽으로 꺾는다. 그리곤 연평도를 왼쪽 아래로 바라보며 달리다 영종도 공항에 닿는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정확히 55분. 그렇게 지형적인 거리는 짧다. <아리랑>을 보는 남북 사이의 시각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그런 차이를 극복해나간다면 통일로의 거리도 그만큼 짧아질 것이다. 이미 그런 분위기는 무르익어가는 중이다.
남북통일의 전망에 관한 한 필자는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낙관론자다.
<사진설명>
1. 한복을 잘 차려입고 북한 토산품을 파는 평양 여성들.
ⓒ김재명
2.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 준비에 나서는
북한여성들 ⓒ김재명
3. 묘향산에서 마주친 북한 여군들. 겉으론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남쪽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곁눈질하는
옆얼굴에서 묻어났다. ⓒ김재명
4. 80분 동안 이어지는 <아리랑>의 서막 ⓒ김재명
5. <아리랑>의 주역들인 여학생 무용수들 ⓒ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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