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수상이 이끄는 자민당이 지난 9월 11일 실시된 제44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296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갑작스런 중의원 해산에 의해 실시된 이번 선거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등으로 보수적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킨 고이즈미 수상의 향후 진로와 연관된 것이기에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예상치 않은 고이즈미 자민당의 대승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고이즈미 자민당이 거둔 압승의 함의와 그에 따른 미일관계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검토해본다.
***고이즈미 자민당의 총선 압승: 그 함의와 국내정치적 영향**
자민당이 단독으로 획득한 296석이라는 의석수는 소위 말하는 절대 안정다수 의석수, 즉 상임위원장의 표결 없이도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269석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고, 연립정권을 형성하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중의원 해산 전에 가지고 있던 283석도 뛰어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이제까지 자민당이 획득한 최대 의석수인 300석, 즉 나카소네 수상의 자민당이 1986년의 총선거에서 차지했던 의석수를 '상대적'으로 상회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의 총의석수가 현재의 480석이 아닌 512석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자민당의 296석을 공명당이 이번 선거에서 차지한 31석과 합하면 개헌을 가능하게 하는 중의원 3분의 2를 뛰어넘는 것이다. 정녕 역사적 기록이 될 압승이라 할 만하다.
이번의 선거결과에 따라 고이즈미 수상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타당한 지적이라고 하겠다. 첫째는 이번 선거의 감행이 고이즈미 수상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점과 연관된다. 참의원에서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자 자민당 내의 많은 의원들, 예를 들어 모리 전 수상과 같은 원로급 의원들이나 간부의원들은 고이즈미 수상에게 중의원 해산이라는 카드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최근의 선거에서 나타난 바를 토대로 할 때 이번의 선거가 자민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런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수상은 중의원 해산이라는 결단을 실행에 옮겼고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 및 판단이 선 사항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고이즈미 수상의 성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는 이번 선거의 진행과정 및 결과처리에서 나타난 고이즈미 수상의 당운영과 관련된 측면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고이즈미 수상과 자민당 집행부는 이번 선거에 즈음하여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의 탈당을 유도하면서 공식 후보로 지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항하는 후보, 소위 말하는 '자객'후보를 내세웠다. 이는 집행부의 정책방향과 다른 사람들은 확실하게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는데, '압승'이라는 이번 선거의 결과는 이러한 집행부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서 더욱더 집행부의 입지를 강화함은 물론, 향후 집행부의 이러한 강압적 진행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혔다고 생각된다.
특히 상기한 두 번째 측면은 종전의 파벌중심적 구도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고, 따라서 자민당 내의 역학구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주목을 요한다. 즉, 자민당이 파벌 중심적 구도에서 집행부 중심의 구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 이유로서 당집행부의 공천권을 강화시키는 소선거구제의 도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외에도 고이즈미 수상의 높은 국민적 인기나 자민당에 대한 '애증'과도 같은 국민적 평가도 한몫하는 것이기에 과연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지는 현재로서 예단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당선가능성 및 그와 연관된 당의 선명성을 이유로 내세우는 집행부의 영향력은 소선거구제를 포함한 현재의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유지된다면 예전보다 더욱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더하여 고이즈미 수상은 첫 당선된 신진의원의 파벌참여를 규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의 고이즈미 수상 하에서는 파벌의 역할이 설혹 남아있다 하더라도 고이즈미 수상의 높은 인기를 뛰어넘기 힘들고, 이번 선거로 해서 최대 파벌이 된 모리파벌은 고이즈미 수상의 친정과 같은 지지세력이며 그의 장악 하에 놓일 신진의원의 수만도 80명이 넘는 현 상황에서 부차적인 역할밖에는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객관적 상황에서 볼 때 고이즈미 수상의 독주 가능성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다.
***고이즈미 내각 하의 미일관계**
전후 일본의 외교 및 안보 정책에 있어서 미일 안보동맹 및 그에 따른 미일관계가 중심적 토대를 이룬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다. 이러한 방향은 냉전이 종식을 고한 1990년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유지되었고, 향후에 있어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쉽게 바뀔 사항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는 냉전의 종언 이후 불안정한 국제질서에 대비한 일본의 외교 및 안보 방향에 대한 논의 속에서도 그 대부분의 의견들이 미일관계를 중심축으로 제시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만큼 현재의 일본에게 있어서 미일관계는 중요하게 인식되어 있는데, 고이즈미 수상 하에서의 미일관계는 특히나 강고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9.11 사태 및 이라크 파병에 대해 고이즈미 수상 하의 일본이 보여준 신속한 대응이나 지속적인 지지 등에서 알 수 있다. 또한 2004년 12월에 발표된 신방위대강에서도 이러한 미일관계의 공고함이 나타났다. 즉, 테러에의 대처에 있어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강조됨과 더불어, 자위대의 국제평화유지활동을 예전의 부수적인 임무에서 본래적인 임무로 변경시키고,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중국이나 북한을 지역 내의 주요한 위협으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냄으로서 외교 및 안보 분야에 있어서의 대미협조 노선을 확고히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선은 고이즈미 수상의 개인적 신념 및 입장에 기초한 바 크기에,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당내외의 지지를 획득한 현재로서는 더욱 더 견지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미일간의 주요 현안으로 논의 중인 주일미군 재배치 문제나 이라크파병 연장 문제 등에 있어서 좀더 진전된 합의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주일미군 재배치문제의 경우, 앞서 언급한 신방위대강의 책정 등을 통해 총론적인 차원에서는 합의가 이루워진 바 있으나, 실제적인 재배치의 수용이라는 각론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양국간에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것이지만, 일본 내의 정치일정 등도 한 몫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장애가 제거된 현재로서는 양국 정부관료 사이의 힘겨루기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일 간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이슈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고이즈미 수상의 총선승리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서 일북수교를 제기할 수 있다.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한문제에 있어서 '압박'과 '대화'라는 양용작전을 구사하는 일본은, 특히 6자회담의 국가들 중에서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차례에 걸친 일북정상회담에서 나타나듯이 고이즈미 수상 하의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획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총선 승리후 고이즈미 수상이 일북수교에 노력하겠다는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미북 간의 이견이 현격한 가운데 고이즈미 수상의 활동 폭이 과연 얼마만큼 클 것인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당분간 일북수교의 가능성을 높이고 그에 따라 북한문제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고이즈미 수상의 역할에 있다고 보여진다.
***고이즈미 수상 이후의 미일관계**
현재로서 우리가 좀더 주의해야 할 사항은 고이즈미 수상 이후라고 하겠다. 1년 후의 임기만료를 그대로 준수하겠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언급이 지켜질 가능성이 높기에, 그리고 당분간 총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낮기에, 이제는 좀더 예측가능해진 고이즈미 수상보다는 새롭게 등장할 리더가 그 많은 의석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수상 이후에 과연 누가 수상의 자리에 앉을 것인지 현재로서 가늠하기 쉽지 않으나, 현재로서는 고이즈미 수상과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60대 중반의 후쿠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나 아소(麻生太郞) 현 총무성대신, 그리고 이 보다 좀더 젊은 세대로서 50대 중반의 아베(安倍晋三) 전 간사장 등이 거명되고 있다.
차기 수상의 선출과 관련해서는 고이즈미 수상의 지명이 중요하게 작용하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그의 높은 국민적 인기와 이번 선거에서의 성공 때문인데, 상기한 인물들이 거명되는 이유도 고이즈미 수상의 지명을 고려할 때 그와의 입장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고이즈미 수상의 노선이 이후에도 견지될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특히 일본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측면을 차지하는 미일관계는 차기 수상이 누가 되든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즉, 앞서 언급한 이라크 파병문제나 주일미군 재편문제 등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나 미일간의 이견이 크게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요한 차이는 일본의 동아시아 외교 및 일북 수교교섭 등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전 간사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일북 수교교섭에 있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공언하고, 북한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토하는 아베 수상의 등장은 일북관계의 진전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그에 따라 미일관계에 있어서는 보다 공고한 협력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헌법개정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좀더 높다는 것 역시 순조로운 미일관계를 예상하게 한다.
반면에 후쿠다 전 관방장관이나 아소 총무성대신의 경우에는 아베와는 다르게 좀더 유화적인 아시아 외교가 진행되리라고 예상된다. 즉,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든지 대북강경일변도의 입장을 취한다든지 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하겠다. 이는 고이즈미 수상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 때문이기도 한데, 특히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경우에는 이제까지의 유화적 입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러한 유화적 입장이 미일관계에 근본적인 장애로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나, 완급을 조절하는 정도의 차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현재 대체적인 예측은 이번 선거의 압승이라는 압력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좀더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도 아베 전 간사장은 다음이 아닌 차차기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자민당 내에서도 고이즈미 수상의 정책방향을 유지하되 좀더 유화적인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일관계는 일본외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내각교체 등으로 해서 크게 변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도 미일관계를 일본외교의 중요 축으로 생각하는 고이즈미 수상이 총선거를 통해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한 상태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앞으로 남은 1년의 임기동안 일북 수교교섭에 노력하겠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언급은 미일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동북아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에, 한국으로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는 한일 양국에 있어서 공히 한미관계나 미일관계 못지않은 중요한 파트너쉽 관계이고, 그만큼 성숙한 운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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