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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본 애국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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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본 애국가의 의미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93>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환타지' 공연을 보고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애국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해외동포들에게 애국가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준 건 지난 12일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광복 60년과 재아 한인들의 이민 40주년 기념음악회 자리에서였다.

이날 아르헨 국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은 뻬드로 깔데론의 지휘로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코리아환상곡'을 공연하여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한ㆍ아 양국 사람들의 문화적인 일체감을 맛보게 했다.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환상곡'과 아르헨티나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프레시안> 2004년 7월22일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와 아르헨티나' 참조). 한국 음악계에는 안 선생이 지난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향악단을 지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안 선생은 부에노스가 아닌 아르헨 북부 뚜꾸만이라는 지방도시의 제1회 음악제에서 대학 교향악단을 지휘했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안익태 선생의 생애를 특집으로 다룬 이장직(음악평론가)의'한국 환상곡의 세계'(<음악동아> 91년 10월호)에는 안익태선생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향악단을 지휘했다고 언급되어 있어 안 선생은 아르헨에 머무는 동안 당시 '예술의 전당'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연을 꿈꾸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결국 45년이 지난 지금 안선생의 그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중심가 벨그라노 음악당을 매운 한ㆍ아 양국 관객들은 코리아환타지의 장엄한 선율에 숨을 죽였으며 합창단원들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한국어로 불렀을 땐 관객들 가운데 한인들은 벅찬 감동을 억누르지 못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연주회 후 한인교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들의 아르헨 이민 40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 듣는 애국가는 의미가 특별하다"며 "우리의 애국가가 이렇게 장엄하고 감동적인 줄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이민 1세대의 한 인사는 "해외에 나와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현지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애국가를 듣고 보니 새삼스럽게 우리 조국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연신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이 인사는 또"말로만 듣던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환타지를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국립교향악단을 통해 접해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우리 애국가의 진정한 가치를 오늘에야 깨달았으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관람평을 하기도 했다.

현지 문화계 인사들도 "처음 듣는'코리아환타지'의 웅장하고 섬세한 선율이 감동적"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주아 한국대사관이 주관하고 삼성 아르헨티나사가 후원한 이 음악회는 한국이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씨가 특별 출연하여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차이코프스키'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아르헨국립교향악단과 함께 협연했다.

백씨는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금년 초 연주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45년 전 아르헨티나의 지방도시 뚜꾸만에 이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울려 퍼진 한국환상곡 합창단에는 아르헨티나 거주 한인 12명의 음악인들이 참여하여 이채를 띠기도 했다. 이들은 한인교회의 성가대들로서 아르헨 국립교향악단이 "한국환상곡을 처음 연주하는 데다 합창부분이 난해한 곡이어서 한인 성악인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민 40주년 기념공연에서 한인 성악인들을 이끈 박경수씨는"이번 음악회가 아르헨에서 안익태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안 선생의 유작인 코리아환타지 공연을 보고 책장 속에 보관돼있는 영상자료가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보니 고인의 생전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조국에서보다는 유럽과 중남미 등지에서 천재음악가로서 그 명성을 날린 코리아환타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의 59년~61년대 활동했던 모습을 일부 공개한다.

여기에 올린 사진자료는 필자가 5년 가까이 시간을 할애해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수집한 영상자료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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