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와 관련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고 격렬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은 채 그에 대한 사법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남한 내의 움직임과 시민단체의 규탄성명을 소개만 하는 선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통일시대 위기에 빠진 자들의 넋두리"**
국가보안법폐지연대가 지난 7일 발표한 규탄 성명을 전한 북한 평양방송의 14일자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성명은 허준영 경찰청장의 강 교수 사법처리 시사 발언과 김성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의 취업제한 발언 등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 담긴 것인데, 평양양방송은 성명의 내용을 전할 뿐 특별한 해설이나 논평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평양방송은 "성명은 경찰청장이 동국대학교 교수 강정구의 논문을 문제 삼아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지껄인 데 이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강정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같이 숨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떠들어대며 사법처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이어 "보수언론과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끼어들어 반통일적 망발을 마구 내뱉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통일시대 위기에 빠진 자들의 넋두리라고 성명은 단죄했다"고 보도했다.
남한 내의 논란을 '중계'하는 식의 태도는 지난 1일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는 "남조선(남한)의 우익보수적인 '자유개척청년단' 패거리들이 지난 조선전쟁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한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를 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하는 놀음을 벌였다"고 보도했을 뿐 강 교수가 피력한 '자기의 견해'가 무엇인지, 그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 역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강 교수 논란에 대한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2001년 8월 만경대 방명록 파문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당시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파문을 자세히 소개하고 "방명록 파문 소동은 즉각 중지돼야 하며 구속 인사들은 무조건 지체없이 석방돼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강 교수가 만경대 가계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하고자 한 것은 좋은 일이지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며 철저히 '가치 판단'이 개입된 자세를 취했었다.
이같은 차이는 우선 북한이 남한 내 논란에 끼어들어 봤자 북한에나 강 교수에게나 득 될 게 하나도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를 친북 인사로 몰아붙이는 세력을 비난하고 강 교수 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하면 오히려 강 교수의 혐의만 짙게 해줄 뿐이라는 것이다. 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선임연구원은 "끼어들어 봐야 남한 여론만 악화된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방명록 파문의 경우 북한이 조금의 흠집도 거부하는 김일성 일가와 관련되어 평양땅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번 '통일전쟁' 논란은 남한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색깔론 시비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일일이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국전쟁을 보는 강 교수의 시각이 북한의 입장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측의 선(先) 침공으로 시작됐다는 북한의 공식 주장에 반해 강 교수는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이라며 북한군 주도의 '내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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