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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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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초대

김민웅의 세상읽기 <133>

10월은 사뭇 황홀한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9월처럼 아직은 어설프게 애매하지도 않고, 11월처럼 조만간 막바지로 가야 하는 다급함도 없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시간이 다 나름의 개성과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10월의 석양이 수채화처럼 스며든 하늘은 그 빛깔이 유난히 깊고 아늑하게 여겨집니다.

아마도 여름에 대한 미련을 버린 태양이 겸손해지기 시작했고, 가을의 뿌리를 품은 대지는 새로운 자신감으로 충만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양을 마주하는 일은 그래서 몸을 결사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전투가 되지 않고, 땅을 딛고 서는 일은 나무와 풀, 그리고 꽃들의 정직한 향기에 취하는 기쁨이 되어 갑니다.

군중집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초대하지 않은 이들까지 인파가 몰려들었던 해변이 어느새 허무해지고, 영원히 상륙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파도가 쓸쓸하게 돌아서는 시간이 오면 산은 바다를 떠난 이들을 맞이합니다. 강은 단장에 바빠진 산자락을 따라 더욱 장중하게 흐릅니다.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말입니다. 10월의 강산은 이렇게 그간 혹 자신을 망각하고 있던 이들에게 초대의 인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초대의 서한이 자신의 편지함에 이미 도착해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삶은, 어둡지만 편안한 조명 아래 몸을 가볍게 흔들며 열중하고 있는 재즈 밴드의 연주를 중단시킨 카페의 황량함입니다.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 익숙해진 채 자신이 초대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간다면, 그는 동물원 철책에 갇힌 사슴의 슬픈 눈동자입니다.

자신이 무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들판을 언제나 동경하면서도 철책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게 그어놓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법칙으로 알고 지내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반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함께 시들어가는 과정이요, 새로운 삶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고칠 수 없는 불신을 스스로 기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무덤은 그래서 그런 이에게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 잡기 마련입니다.

아쉬움이 없는 계절이란 없겠지만, 10월의 아침과 저녁은 더더욱 사무치게 가슴에 와 박히는 순간들이 되어갑니다. 놓칠 수 없는 바람의 유쾌한 서늘함과 너그러운 햇볕의 포옹, 그리고 날이 갈수록 대담해져가는 관능적인 야산(野山)의 옷차림은 모두 이 계절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신화의 첫 장입니다. 그 신화가 기록된 서문의 페이지를 일단 넘기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나고 보면 두고두고 그리울 수 있는 10월의 풍경화가 마음에 새겨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풍경화가 세월 속에서 낡아지지 않는 매력, 아니 날이 갈수록 빛나는 광채를 뿜었으면 합니다. 노동도, 사랑도, 그리고 혁명도 모두 그런 찬란한 기억 속에 남는 삶의 기록이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런 기록을 가진 인생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 시간도 자신의 능력과 꿈의 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10월의 시간, 그 한복판에 서서 이 계절에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시절의 흔적을 기쁘게 만들어가는 그런 축복,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 온 다음 날 오후, 멋진 하루의 마무리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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