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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체 게바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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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체 게바라의 유령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92>

***부시 방문 앞두고 테러 불안에 떠는 아르헨**

제4차 미주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11월 4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입국을 반대하는 시위가 드디어 폭력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동 테러리스트들의 현장 잠입설 등이 퍼지고 있어 정상회담장 취재기자들까지 테러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체 게바라'라는 단체는 6일 새벽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미국계 은행과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 등에 사제폭탄을 투척해 부시의 아르헨티나 방문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띄웠다.

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왜 하필이면 반미와 부시 방문 반대에 체 게바라가 등장했는가? 아르헨티나 유력 일간지의 사회부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달 초 마르 델 쁠라따에 모이는 미주정상 회담은 1961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됐던 미주 국가대표회담과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은 미주 국가들은 모두 경제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며 '발전을 위한 통합'을 내세웠으나 쿠바 대표로 참가한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가 미국의 주장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당시 체 게바라는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미국이 미주대륙 정치의 통합을 추진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라틴아메리카 문제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중남미 시장경제는 국가가 나서서 통제할 것이 아니라 시장 스스로 알아서 자유롭게 형성돼야 한다"고 외쳐, 북미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 대표들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961년에 그랬듯이 경제협력을 내세워 중남미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이번 미주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내고 있으며, 이번 사고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1961년 당시 체 게바라가 보여준 것과 같은 활동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심리를 드러낸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현지의 일부 언론은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의 살해를 명한 워싱턴의 결정은 정치적인 실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 가운데는 체의 죽음이 미국 정부 때문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쿠바 출신 역사학자인 프로일란 곤잘레스는 최근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에 실린 기고문에서 체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돼 총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미 정보요원들에게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미국정부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 의해 사살됐다면서 "지난 40년 동안 서방 언론들은 미국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거짓정보를 전달하며 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곤잘레스는 또 "중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와 비교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산골에서 체포될 당시 그는 부상당한 전쟁포로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재판조차 생략된 가운데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미 정부로부터 사살명령을 받은 미 정보요원의 사주에 의해 볼리비아 정부군이 체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것은 전쟁포로에 대한 국제법을 무시한 범죄행위이자 미국의 심각한 정치적 실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서방 언론들 역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체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미 정보요원들의 발표만 그대로 보도하는 오류를 범했다. 당시 볼리비아 현지 언론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지만, 미 정보요원들은 볼리비아 언론의 사실보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체의 사살을 지시한 요원은 '볼리비아인들은 대다수가 문맹자여서 신문을 보지 않는다'며 체가 미국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사살됐다는 사실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문제제기를 무시하기도 했다. 남미인들을 무시하는 미국정부의 이런 태도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 없으며, 세계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인권유린 사태가 자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영웅시되고 있는 체에 대한 향수가 반미와 반부시를 부추기고 있고, 이런 분위기가 시위의 폭력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주 정상회담장은 전쟁터 방불"**

이와 함께 중동 테러리스트들의 아르헨티나 잠입설과 반미 입장의 정치인들과 학생, 실업자단체들이 정상회담 기간에 대규모 반부시 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이래저래 부시 미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은 시끄러울 전망이다.

한편 제4차 미주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마르 델 쁠라따의 현지 취재를 신청한 12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간 방탄조끼와 헬멧, 방독면 등 완전군장을 하고 취재현장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현지 언론사 정치부의 한 기자는 "이번 미주 정상회담은 지난 이라크전쟁 당시처럼 종군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현장취재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이라크전쟁 취재 때는 가족의 반대가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가능하면 마르 델 쁠라따의 현장취재를 가지 말라고 말린다"는 말로 부시 방문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인들이 느끼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미주 정상회담의 풀기자단 가운데 7일 까사 로사다(대통령궁)에서 만난, 평소 안면이 있는 현지 언론사의 한 기자는 필자를 향해 "킴, 조심하라"며 "부시 곁에는 가까이 갈 생각도 하지 말고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까사 로사다의 한 공보실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취재기자단에 대한 테러 위험이야 없겠지만 시위대와 경호요원 간의 충돌에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또 "테러 위험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회담기간 중 마르 델 쁠라따 상공의 항로를 침범하는 항공기는 무조건 격추될 것이며 해상 역시 완전 봉쇄된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또한 차량테러의 가능성에 대비해 회담장 전역에 6000여 명의 군경이 인의 장막을 쳐놓고 차량진입을 철저하게 막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 정착과 빈곤 추방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쿠바를 제외한 미주대륙 34개국 정상들이 모이는 이번 회담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테러위험과 폭력시위로 얼룩지고 있어 각국 대표단은 물론 취재기자들까지 불안을 느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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