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국정감사를 하는 20일 간은 공무원들에겐 '시련의 계절'이다. 상임위 당 스무 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요구해대는 자료 꾸리랴, 의원실을 통해 언론으로 새어 나가는 내부정보 막으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들을 보노라면 "국감만 하면 살이 빠진다"는 그들의 푸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감사가 예정된 광화문 정보통신부 청사에서는 아침부터 독특한 안내방송이 연거푸 흘러나와 국감에 임하는 행정부 자세의 일단을 보여줬다.
방송은 "국감준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치사로 시작됐지만, 결국은 "외부인 앞에서 국감 질의내용에 대해 비판하거나 코멘트를 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며 직원들의 '입조심'을 요구했다.
"언론이나 외부에서 국감 질의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얻으려고 할 때는 즉흥적으로 답변하지 말고 보고라인을 통해 입장을 확실히 하도록 하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기자실에까지 울려 퍼졌다. 취재원들로부터 돌연 '경계의 대상'이 돼버린 기자들은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기자는 "다음과 같은 당부 내용을 잘 지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합시다"라는 맺음말을 두 번이나 들으며, 입장에 따라 다른 차원의 '유종의 미'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국민의 입장에선 피감기관의 정보공개와 의원들의 폭로를 통해 행정부의 적폐들이 많이 드러날수록 '성공적 국감'이지만, 피감기관의 입장에서는 국회나 언론에 꼬투리를 덜 잡힐수록 '아름다운 마무리'가 된다는 '입장차'를 정통부의 안내방송이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국감을 맞이해 방어태세를 점검하기는 정통부만이 아니었다. 국무조정실은 '국정감사 정보공개 및 홍보강화 방안'이란 지침을 각 부처에 하달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국회의원의 자료요구에는 중요도 및 왜곡, 악용의 가능성, 이미 공개된 자료와의 일관성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응하라 △요구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의원들의 질의 의도와 왜곡(가능) 형태 등에 따라 문답자료를 작성하고, 폭로성 질의나 왜곡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자료제출 시점에 해명자료를 작성해 배포하라고 돼있다. 이런 식으로 '자료제공의 원칙'을 적시한 지침에 대해 야당은 당장 "국감 방해"라며 반발했다.
'몸조심해 나쁠 것 없다'는 피감기관의 방어논리를 전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국민의 대표들에 의한 합법적 감시에 지나친 경계심을 보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행정부의 수반인 노무현 대통령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이해찬 국무총리도 국감으로 뜬 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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