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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죄는 사실 음란함에 있지 않다"

시민단체, 23일 공판 앞서 '김인규 공동대책위' 발족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영화 <씨네마 천국>에서 가장 의미있는 장면중 하나는 바로 '사제의 키스씬 검열'이다.

***사제의 '키스씬 검열'과 대한민국 대법원의 '음란 판결'**

영화의 배경은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한 작은 마을. 훗날 영화 감독이 되는 소년 토토에게 '마법의 공간'인 마을 광장의 낡은 영화관 '시네마 파라디소'의 모든 영화는 동네 신부의 검열을 거쳤다.

꿈꾸듯 영화를 훔쳐보는 토토와 키스 씬이 나올 때마다 흠칫 놀라며 무섭게 방울을 울려대는 사제의 코믹함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법원이 '사제'가 되어 국민을 '어린 토토'로 보고 '음란함을 경고하는 종'을 울린다면? 미소는 불쾌함을 넘어 조소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종소리는 사법적 판결이라는 이름 아래 강력한 단죄의 힘을 지녔다.

***"23일 공판 앞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

미술교사 김인규(43) 씨는 23일 공판을 앞두고 2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7월 27일 대법원으로부터 "김씨가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은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음란물"이라며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문화연대, 미술인회의, 민예총 등 시민단체들이 '김인규 사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 21일 오전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 발족식을 갖는다고 밝혔지만, 그의 씁쓸함은 가시지 않는다.

대책위는 "이번 판결은 김인규 교사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교육적, 문화적 의미들을 읽어내지 못하고, 국가적 질서유지 기능의 적정성도 뛰어넘은 월권적 판결"이라며 "표면적인 것만 보고 청소년 유해성을 재단한 이 사건은 김인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 '몸'에 대한 보수적 억압과 이데올로기가 한 개인을 언제라도 형사 처벌할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성토했다.

이날 발족식에는 천영세 국회의원(민주노동당), 최진욱 추계예대 교수, 심한기 청소년문화공동체품 대표 등이 지지발언으로 힘을 보탤 계획이다. 현재 미술인회의 홈페이지(www.misulin.org)에서는 사이버 서명이 이뤄지고 있다.

***"'카우치 사건'과 내 경우가 다른 이유는**

김인규 교사는 현재 태안 한산면에 있는 서천 에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재직중이다. 현재 면사무소의 의뢰를 받아 학생들과 함께 제작할 읍내 정류장 벽화 구상에 바쁘다는 그는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뭐…. 그렇죠"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죠. 사실 1,2심의 무죄 판결 때문에 당연히 무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제 홈페이지(www.ingyu.net)에 들어와보면 사유를 유발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야 하고 호색적 취미를 돋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거든요. 제 홈페이지 방문자들의 반응도 그랬구요."

'카우치 사건'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카우치와 제 경우는 다르다고 봅니다. 우선 방송과 개인홈페이지라는 공간부터 다르죠. 방송은 보다 사회적인 규칙과 합의의 룰 안에 있지만, 개인 홈페이지는 창작자의 의도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또 충동적이 아닌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거나, 일련의 사유의 맥락을 형성하고, 그 과정 속에 이미지를 배치한 것은 아닌 것과 차이점이 있죠."

***"나의 죄는 사실 음란함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나의 죄는 사실 음란함이 있지 않다. 죄라면 불쾌감에 대한 괘씸죄"라며 "어쩌면 판결문의 지적처럼 살짝 가리는 은밀한 표현을 했거나 그림의 대상이 나 자신이 아닌 모델이었다면 문제가 안 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보는 데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그 '은밀한 느낌'이야말로 사실 음란함에 가깝다"며 "제 누드가 은밀함을 제공키는 커녕 사람들이 교묘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그 은밀함을 방해하기 때문에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업의 '도발성'을 설명했다.

"나는 오히려 우리의 몸이 그토록 쉽게 사람들의 관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우리의 몸이 도덕적 규율뿐 아니라 직장내의 상하질서와 상품과 소비의 대상으로 손쉽게 규격되고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에, 저 높은 곳의 거대한 시선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날 수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저항해야만 한다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자신의 작업은 누군가의 길들여진 시선의 관음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으로, 왜 우리의 몸이 그토록 쉽게 소비의 대상과 욕망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마는지 말하고 싶었다"는 그의 항변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꽤 많다.

"물론 제 표현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불쾌함만을 느끼실 분도 많다고 본다. 그렇지만 저는 예술이 유쾌하면 존재해도 되고 불쾌하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예술은 문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종의 문화 실험소이기 때문이다. 관습은 계속 변하는 것이고 문화는 고정불변한 규범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이다. 기존의 가치 관념에 도전 없는 문화는 죽은 것이다."

<박스기사 시작>-------

지난 7월 27일 내려진 김인규 교사 부부의 누드사진 등 일련의 작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변은 다음과 같다.

당시 재판부는 김 교사 홈페이지 게재물 6점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 성기 그림에 대해서는 "그림 전체에서 성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아서",
△성기가 발기된 채 양 주먹을 쥔 청소년 그림에 대해서는 "근육질과 성기가 과장돼 현실감이 떨어지는 만화라서",
△하드코어 포르노물 일부를 고속편집한 동영상에 대해서는 "사진과 흰 여백이 매우 빠르게 움직여 자세히 봐도 내용을 파악할 수 없고 포르노 시청자가 통상 기대하는 장면이 안 나온다는 점에서" 각각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성 성기를 정밀 묘사한 그림에 대해서는 "묘사가 매우 정밀하고 색채가 사실적이며 여성 성기 이미지가 그림 전체를 압도하기 때문에",
▲김씨 부부의 맨몸 정면 사진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제작 의도가 있었다 해도 얼굴과 성기를 가리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나신을 드러낼 필연성이 없어 보여서",
▲발기된 채 정액을 분출하는 남성 성기 그림에 대해서는 "보통사람이 성적 상상과 수치심 외에 다른 사고를 할 여백이 그다지 크지 않다"며 각각 음란물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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