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진지 두 달이 다 돼 가지만 국민이 알고자 했던 'X파일' 속 진실은 단 한 가지도 밝혀지지 못했다.
'X파일' 후폭풍으로 발칵 뒤집혔던 정치권은 그간 도청테이프 수사와 공개를 특별법으로 할 것이냐, 특검법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알맹이 없는 정쟁을 벌였을 뿐, 정작 X파일 공개를 위한 본질적 노력은 외면해 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삼성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은 국감 날이 다가올수록 뒷걸음질을 치고 있고,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회장은 때 맞춰 미국으로 출국해버린 상황이다.
눈치 빠른 국민들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진실이 '묻혀 갈 것'이라는 생각을 굳혀가며 'X파일' 공개를 위한 정치권의 노력에 대해서도 기대를 접었을 법한 14일, 늦게나마 민주노동당 노회찬, 조승수, 열린우리당 선병렬, 이광철, 한나라당 원희룡 등 여야 의원 5명이 '안기부 X파일 공개와 철저수사를 위한 의원모임'을 결성했다.
소속 정당의 울타리를 넘어선 공조라는 점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자리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 벽두에 386세대 출신의 여야 초선 의원들이 끼리끼리 모여 밥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힘을 합쳐보자"고 다짐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움직임이 성과를 거뒀다는 얘기는 없다.
본인들의 기분과 언론의 등떠밀기에 편승해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초당적 움직임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와 한계를 갖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 데에서 온 씁쓸한 결과일 뿐이다.
이번에 새로 시도되는 초당적 움직임은 과연 그런 한계를 넘어서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X파일' 수사를 위한 특검법과 내용공개를 위헌 특별법이 상정된 법사위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 두 법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각 당 대표가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향후 특검 수사와 X파일 공개 후에도 수사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과 더불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해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며 X파일로 인해 드러나게 될 정치․사회․경제의 제반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 제도적 정비와 개혁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국회에서 'X파일' 공개를 요구하는 제대로 된 모임이 결성돼 목소리를 냈다는 데에 가치를 부여할 만하다. 그간 줄곧 목소리를 높여 왔던 민주노동당만의 '독주'가 아니라 여야가 '합주'를 이뤘다는 데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그리고 지난 제16대 국회 때의 움직임과 달리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공조'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도 진일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당론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요령부득의 난관에 봉착한 특검법-특별법의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한 나름의 충정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인정해줄만 하다.
물론 각 당의 지도부가 "'X파일' 공개에 두려울 것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동에 나선 의원들이 다섯 명에 불과한 것이 애석할 뿐이다.
이들은 첫 공동보조 행동으로 국회의장단을 방문해 'X파일'의 공개와 철저한 수사를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국민 여론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X파일 내용의 공개를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여러 기회를 통해 확인됐다. 이번에 모처럼 수면 위로 올라온 초당적 공조의 '미약한 목소리'가 어느 정도나 '큰 힘'을 발휘해 각 당의 지도부를 움직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있으나 마나하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국회가 이런 기회를 통해 국민의 바램에 '접속'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연정'이 됐건 '연대'가 됐던 초당적 공조는 바로 이렇게 국민적 바램이 크고 당장 해결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 기회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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