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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금융시장에 공공성의 브레이크를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11>

***상전벽해, 한국금융**

위기 이후 벌써 8년이 지났다. 기업, 금융, 노동 등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경제의 혈맥인 금융시장의 대변화가 단연 두드러진다. 정부는 160조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며 부실채권을 해소하고 많은 금융기관들의 문을 닫았으며 특히 합병과 해외매각의 소용돌이를 통해 은행권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했다. 위기 이후의 경제개혁은 과거 정부가 은행을 좌지우지하며 기업들에게 돈을 몰아주던 시스템 대신 보다 개방된 주식시장 중심의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이식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도 그랬듯 주식시장은 자금조달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주주에 대한 높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으로 인해 상장기업으로부터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액수가 더 높은 실정이다. 게다가 주로 외국자본에 팔려나간 은행들은 기대하던 선진금융기법 전수 대신 시장의 수익성에만 목을 매달며 가장 중요한 기능인 기업에 돈을 대주는 역할은 점점 더 외면하고 있다.

자산규모를 고려한 외국인의 시중은행 지배율이 60%를 넘어서 외자지배가 멕시코에 필적할 만큼 세계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만 늘여서 투자 정체와 가계부채 증가에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투자를 줄이며 빚을 갚아버린 대기업들이야 은행돈이 필요도 없겠지만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지금 한국은, 기업이건 은행이건 정부건, 그 누구도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을 위해 리스크를 지고 적극적으로 금융을 조달하고 투자에 뛰어들려 하지 않는 형국이다.

그러나 최근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악화되면서 시장논리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금융의 변화에 대해서도 재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금융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것이 언제나 능사일까. 돈이 남는 이들로부터 필요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금융시장은 특히 미래를 보는 사업이고 돈을 빌리는 상대의 정보가 빌려주는 이에게 백퍼센트 알려지기 어렵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금융시장의 완벽함에 대해 고개를 저었고 이미 여러 나라들에서 금융기관이 시장논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일본의 금융재평가법 제정운동**

일본의 경우, 버블붕괴로 발생한 90년대 경제위기 이후의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심화되었고 이는 최근 금융의 공공성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 고이즈미 정부는 은행들에게 부실채권을 줄이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는데 은행들은 대기업들에 대한 채권은 포기하고 연장해주면서도 힘없는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는 대출을 회수하고 추가대출을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은행들의 행태는 버블 이전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마구 돈을 빌려주며 버블을 더욱 심화시켰던 이전의 행태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원래 은행들이란 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지만 정작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빼앗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이러한 행태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많은 언론과 학자들도 힘을 보탰다. 이러한 저항은, 보수적 반개혁파 정치인의 저항이란 측면도 있었지만, 금융상 다케나카가 탄핵의 위협에 직면할 정도까지 이르렀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배경으로 릿쿄대학의 야마구치 교수 등은 중소기업가 동우회와 함께 금융재평가(assessment)법의 제정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경험을 따라 일본의 은행들도 지역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어느 정도 의무화하고 중소기업들에 대한 무리한 금융배제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담보나 연대보증 등이 있어야 겨우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중소기업의 대출이 부실채권 처리과정에서 더욱 어려워진 현실을 고치기 위한 노력이며, 민주당의 법안발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했는지 2003년 봄에는 일본정부도 소위 관계금융을 강화하기 위한 액션플랜에서 지역의 은행들은 중소기업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자금공급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는 금융재생법의 주요 대상인 대은행과는 달리 지역의 금융기관들은 지역기업들과의 긴밀한'관계'를 적극활용하여 지역경제를 진흥하고 중소기업을 재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똑같이 금융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일본의 그것은 보다 현실적이며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띤다. 일본정부는 이미 국제금융업무를 하지 않는 은행들에 대해서는 자산에 대한 자기자본의 비중인 소위 BIS비율을 8%가 아니라 4%로 낮게 적용하여 대출의 숨통을 터주려 했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등급을 매우 다양하게 매겨서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지 않고도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금융재평가법을 도입하자는 시민운동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에 비해서 일본 중소기업은 사정이 역시 나아 보인다.

***세계의 경험**

놀랍게도 일본의 금융재평가법 운동의 원조는 실은 한국이 그리도 배우고자 하는 미국이다.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것도 많겠지만 때로는 본토 미국을 제대로 알고 그 경험에서 배워야 할 점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77년 카터 정부 때부터 소득과 인종에 따른 금융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제정된 지역재투자법(CRA: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제정하여 금융기관들이 일정액을 그 지역의 중소기업 등에게 빌려주는 것을 의무적으로 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정부는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지역에 대한 재투자를 조사하고 이들이 자산 규모에 따라 빈곤층과 소기업에 대한 대출 그리고 지역개발을 위한 대출을 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이 지점을 설치하거나 재배치하려면 자기자본비율 10%이상과 지역재투자법에 따른 평가가 4단계 중 2번째 수준인 양호 이상이라고 하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하며, 정부의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 과정에서 지역재투자법의 평가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80년대에는 이러한 규제가 완화되기도 했으나 90년대 클린턴 정부 이후로는 법안의 강화가 이루어지며 이 법이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1993년에서 98년까지 이 법에 의한 가계대출 증가율이 80%에 이른다.

신용을 얻는 것은 기본권이며 소외층에게 대출을 하는 것을 금융의 공적인 기능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노력은 당연히 미국만이 아니다. 금융에서 정부의 역할이 미국보다 훨씬 강력한 독일 등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지역금융기관들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시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출을 책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금융시장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는 우체국 예금에 기초하여 공적인 여러 금고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는 조금 틀리지만,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 등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의 성공적인 사례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들 가난한 나라의 소액금융기관들은 아주 작은 액수의 자금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빈곤층에게 빌려주어 자활을 돕고 있는데, 지역 주민공동체의 상호책임에 기반하여 높은 회수율을 보이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빈민소액금융은 UN이 올해를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로 정할 만큼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

중소기업과 빈민들의 돈을 빌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심화되자 최근에는 한국정부도 지역재투자법과 같은 규제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학계와 시민운동계 일각에서도 이제 금융의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새로운 금융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재경부는 역시 위기 이후 시중은행 지분을 거의 다 장악해 버린 외국자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외국자본의 저항을 우려하여 은행부문에 대한 규제 대신 우체국 예금자산의 지역금융기관의 운용 등만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은행들이 지키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라 할 만한 규정을 우리가 도입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일까.

하긴 한국의 은행들을 인수한 사모펀드들이야 미국에선 은행업을 할 만한 자격조차 없는 이들이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미국 법조차 지키지 않기 위해 외환은행의 미국 지점들을 폐쇄해 버린 사실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결국 공공성을 위한 금융규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한 의지의 문제이며 한국 정부가 분발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강한 시민의 압력이 필요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실정에 맞는 보다 현실적인 여러 방안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지적한다. 위기 이후 시장의 길로 폭주해 버린 은행들에 대한 규제 뿐 아니라 상호저축은행이나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짧게나마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공금융을 포함한 정부 스스로의 보다 적극적인 금융지원책과 은행부문을 장악한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가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한국금융, 공공성의 필요성**

이론적으로도 정보문제로 인한 금융시장의 심각한 실패는 이미 주류경제학에서도 상식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또한 악화된 분배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바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금융기능의 마비임은 많은 경제학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는 바이다. 중소기업이나 빈민에 대한 금융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위기 이후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악화되는 경향을 멈추고 투자확대와 양극화의 개선에 모두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는 외국자본의 저항 이외에도 역시 이런 노력이 또 다른 '관치금융'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일 것이다. 새로운 금융규제가 도덕적 해이나 부정부패 등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정부의 금융개입의 폐해를 낳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공공성을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관치가 아니라 진정한 민치금융에 기초해서 폭주하는 시장을 사회가 제어해야 한다는 노력이다. 중소기업이나 빈민 등, 실제적인 금융수요자들의 자발적인 노력, 금융기관 종사자 스스로와 은행들의 행태 변화 그리고 시민운동 등에 기초한 정부에 대한 감시의 눈이 늦춰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옷 벗고 나면 쉽게 어디 펀드나 금융기관에 가서 떼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많은 금융관료들도 스스로 바뀌어야 할 일이다.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들 한다. 그러나 금융공공성을 위한 노력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금융시장의 권력이 시민의 손으로 제어될 필요가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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