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군사 관련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싱크 탱크다. SIPRI는 해마다 『군비ㆍ군축ㆍ국제안보 연감』을 발행해 왔다. 다음달인 9월에 발간될 <2005년도 연감>은 지구촌의 분쟁 현황과 국제사회의 평화유지 노력, 전세계 군비지출과 무기수출, 핵무기와 군축과 관련된 세부적인 현황들을 담고 있다.
이미 국내 외신면에 내용의 일부가 짧게 보도된 바 있지만, SIPRI 연감 출간에 앞서 그 주요내용을 정리해본다.
■주요 무장투쟁 : 지난 2004년 1년 동안 사망자 1000명 이상을 낸 주요 무장투쟁은 19개다. 이를 지역별로 나눈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각기 6개로 가장 많은 전쟁이 터졌고, 그 다음이 중동 3개, 중남미 3개, 유럽 1개다. 이 가운데 3개 전쟁을 빼고는 모두 10년 이상을 끈 전쟁들이다. 근래에 일어난 3개의 전쟁이란 △알-카에다 세력과의 테러전쟁 △이라크전쟁 △수단 동부지역의 다르푸르 내전을 가리킨다.
(무엇을 전쟁이라 규정할 것인가는 연구자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전쟁은 '1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적대적 행위'로 이해된다. 사망자 '1000명 이상'이란 미 미시간대학교가 카네기재단의 후원 아래 1960년대부터 벌여온 전쟁관련요인 프로젝트, 약칭 COW 프로젝트가 마련했던 기준이다. 전쟁 희생자 1000명 속에는 전투원은 물론 비전투원인 민간인이 포함된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1990년대 들어 지금껏 15년 동안 지구상에는 해마다 20-30곳에서 전쟁이 벌어져 왔다-역자 주).
2004년의 전쟁들은 대부분 내전의 성격을 지녔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서의 내전은 차츰 국제분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전쟁에 뛰어드는 무장집단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그 동기가 전보다 훨씬 복잡해지면서, 어느 것이 내전이고 어느 것이 국제전이라고 딱히 나누기도 쉽지 않아졌다. 2004년에 있었던 여러 국지적인 분쟁들도 전쟁동기, 무장집단, 위치, 자금원 등의 잣대로 보면 상당수가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이라크의 현 상황은 내전이 국제적으로 번지는 일반적인 패턴과는 달리, 국제전이 (반미 수니파와 친미 시아파 사이의) 내전 양상으로 번진 특이한 경우로 하나의 연구대상이다.
■다국적 평화유지활동 : 2004년 말 현재 전세계 21개 분쟁지역에 군인과 경찰 합쳐 6만4000명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돼 활동 중이다. 아울러 4000명의 민간인들이 유엔군을 도와 평화유지와 재건 업무를 맡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과는 별도로, 전세계 35개 지역에서 군인과 민간인 합쳐 22만5385명의 요원들이 나토(NATO)나 아프리카연합(AU)를 비롯한 여러 지역기구의 깃발 아래 평화유지 활동을 펴고 있다.
■국방비 지출규모 : 2004년 전세계 국방비 지출은 9750억 달러로 추정된다(2005년도 시가 기준 1조350억 달러). 이같은 국방비 지출규모는 지난날 동서냉전 시절에 국방비가 가장 많았던 1987-88년에 견주어 보면 6%쯤 못 미친다. 전세계 1인당 국방비 평균 지출규모는 162달러. 전세계 국민총생산(GDP)의 2.6%다. 10년 단위로 묶어 비교하자면, 1995-2004년 사이의 국방비 지출이 그 앞서 10년 동안보다 2.4% 늘어났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냉전이 막을 내린 1990년대 초부터 국방비 지출이 꾸준히 줄어들어 1998년에는 최저치를 기록했다. 둘째, 1999년부터 다시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기 시작해 2002-4년 3년 동안이 그 앞서 3년 동안(1999-2001년) 보다 6% 늘어났다.
전세계 국방비 지출규모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2004년도 국방비 지출은 4553억 달러로, 전세계 국방비 지출의 47%를 차지한다. 미국은 2002-4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국방비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는 펜타곤의 정규예산에다 추가경정예산을 더하는 방식의 지출이다. 2003-5년 회계연도에 미 국방부가 집행한 추가경정예산은 238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액수는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일본을 뺀 아시아(중국 포함), 중동의 2004년도 국방비 지출을 모두 합친 규모(1930억 달러)보다 많다.
미국의 지나친 국방비 지출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는 논란거리다.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와 앞으로의 경제성장에 국방비가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둘러싼 회의적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더불어 국방비 지출 상위 5개국에 꼽히는 나라는 2위 영국(474억 달러), 3위 프랑스(462억 달러), 4위 일본(424억 달러), 5위 중국(354억 달러, 추정치)이다. 이들 상위 5개국의 국방비 총지출 규모는 전세계 국방비의 64%를 차지한다. 한국은 155억 달러로 10위.
■무기 판매 : 2003년 전세계 상위 100대 무기판매기업의 총매출액은 2360억 달러에 이르렀다(중국 제외). 이들 100대 기업의 매출은 전년도인 2002년에 비해 25% 늘어났다. 이들 가운데 북미 대륙에 있는 39개 기업들(미국 38개, 캐나다 1개)이 무기 매출의 63.2%를, 유럽에 있는 42개의 기업들(이 가운데 6개는 러시아 기업들)이 매출의 30.5%를 차지했다.
(미국 무기판매기업들은 9.11 뒤 변화된 안보환경과 펜타곤이 추진하는 미군 변형과 군 인력의 민영화에 따른 새로운 수요에 발맞춰 왔다. 군의 아웃소싱에 따른 군수산업체들의 매출 증가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지만, 서유럽 국가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취임 이래로 기동성과 첨단무기를 지닌 부대로 미군을 개편하고, 핵심 전투인력을 뺀 나머지 보조 인력을 민간부문에 넘기는 아웃소싱 작업을 추진해왔다-역자 주).
100대 무기판매기업들의 2003년도 매출 규모는 전세계의 가난한 국가 61개국의 국민총생산을 합친 액수와 거의 맞먹는다. 2003년도 무기판매 상위 12대 기업을 국적별로 살펴보면, 8개가 미국 기업이다. 특히 1위에서 3위까지를 기록한 록히드 마틴(249억 달러), 보잉(243억 달러), 노스롭 그루먼(227억 달러)은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참고로, 2002년의 경우, 미 보잉이 221억7천만 달러로 무기 매출액 1위, 록히드 마틴이 188억7천만 달러로 2위, 레이시온이 145억1천만 달러로 3위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 가운데 무기판매에서 100위 안에 꼽힌 기업으로는 삼성(무기판매액 6억7000만 달러, 2002년 59위, 2003년 56위), 한국항공우주산업(6억 달러, 2002년 52위, 2003년 63위), 삼성 테크윈(5억2000만 달러, 70위), 프랑스 탈레스와의 합작인 삼성 탈레스(3억 달러, 98위) 등이다.
■국가별 재래식 무기 판매 : 997년 이래 SIPRI가 측정한 무기판매 지수를 보면, 1997년부터 주요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 판매액이 줄어들다가, 2000-2002년 사이에 전년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였고, 2003-4년 사이엔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대 무기판매국은 러시아! . 오랫동안 재래식 무기 판매 1위국이었던 미국을 제쳤다(1위 러시아 269억 달러, 2위 미국 259억 달러, 3위 프랑스 63억 달러, 4위 독일 48억 달러, 5위 영국 44억 달러, 6위 우크라이나 21억 달러).
2000-2004년 동안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빅5의 무기판매 총액은 전세계 총액의 81%에 이른다. 2004년 중국과 인도는 재래식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여온 국가들이다(1위 중국 116억 달러, 2위 인도 85억 달러, 3위 그리스 52억 달러, 4위 영국 33억 달러, 5위 터키 32억 달러, 6위 이집트 31억 달러, 7위 한국 27억 달러). 중국은 주로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들여오고 있으나, 러시아의 오래된 기술 문제로 말미암아 수입선이 다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2000-2004년 사이에 한국은 무기수입에서 세계 7위(27억5500만 달러), 무기수출에서 세계 19위(3억1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무기교역 측면만 본다면 적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흑자를 나타냈다. 2000-2004년 사이에 9600만 달러의 재래식 무기들을 수출해, 세계 29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무기수입액은 5300만 달러(86위). 북한은 1992-2004년 사이에 AT-4 대전차 미사일 3250기와 SA-16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1250기를 러시아로 수출했다. 미사일은 북한의 주요 무기수출 품목이다. 북한의 무기 수출선은 러시아를 빼면 대부분 중동 국가들이다.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비정부기구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와 옥스팸(Oxfam)은 지난 6월말 '선진 8개국(G8): 세계적인 무기수출국들'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G8 선진국들이 값비싼 무기들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기면서 후진국들의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6-2003년 8년 동안 집계된 G8 선진국들의 무기판매액 1위는 미국(1518억 달러). 2위는 영국 430억 달러, 3위는 프랑스 302억 달러, 4위 러시아 262억 달러, 5위 독일 108억 달러 순이다. 빅5의 무기판매액은 전세계 무기판매액의 84%에 이른다. 보고서는 G8 선진국들이 빈곤 국가들을 원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판매에 열을 올려 빈곤과 사회불안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역자 주]
■군축 : 2004년4월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1540에서 핵-생화학(nuclear, biological, chemical, 약칭 NBC) 무기 확산에서 비롯된 세계평화안보 위협에 맞서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결의안 1540은 테러집단이 대량살상무기인 NBC 무기를 개발-획득-소유-운반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군축(arms control) 협상에 관한 한 세계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주의적인 군축협상을 통해 NBC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세계는 이라크전쟁에 이어 또 다른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다.
■핵무기 비확산 : 1968년 출범한 NPT 체제 아래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5개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2004년 현재 실전에 배치해놓은 핵무기는 13,000개 이상이다. 이들 5개국이 비축해놓은 핵탄두 총규모는 32,300개에 이른다.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체제의 현안들을 논의하려고 올해 5월 뉴욕에서 열린 2005년 NPT 평가회의는 아무런 합의 없이 막을 내렸다.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평화적 용도인지 아닌지는 논란거리다.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국제회담(6자회담)도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사진설명)
사진 1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2005년판 『군비ㆍ군축ㆍ국제안보 연감』표지
사진 2 = 2005 SIPRI 1995-2004년 세계군비지출 현황(단위 10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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