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이 '100년만의 무더위'라는 매스컴의 호들갑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한달내내 폭염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밖에 나서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제법 부는데, 유난히 이번 무더위와 힘겹게 씨름했기 때문인지 왠지 '지나간 폭염'이 조금은 그리워지려고도 한다.
고려대 근처 안암오거리 쪽에 언젠가부터 단골로 잘 가는 삼겹살집이 있다. 그 집의 간판메뉴는 '대패삼겹살'이다. 대패로 민 듯한 얇은 삼겹살의 맛도 일품이고 게다가 대학가라서 가격이 파격적으로 싸다는 게 최고의 매력이다. 또 언젠가부터는 이 집 삼겹살을 먹고 난 뒤에는 바로 앞에 있는 생과일아이스크림 집에서 입가심을 하는 게 코스처럼 돼버렸다.
이 생과일아이스크림집 이름이 '떼르드글라스'다. 천연재료를 직접 갈아 만드는 소위 '웰빙 다이어트 과일아이스크림'인데, 유럽에서는 오래전에부터 이런 아이스크림이 유행했었다. 오늘은 어찌하다보니 계속 음식광고만 하는 것 같은데 물론 상업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
떼르드글라스(Terre de glace), 이름 한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체인점으로 제법 성공해 여기저기서 이 간판을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생과일 맛의 아이스크림'이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성공한 이 체인은 프랑스어로 된 브랜드 네임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순수 국산자본이란다.
'떼르(Terre)'는 영어의 '랜드(Land)'에 해당하는 단어고 '드(de)'는 '오브(of)', '글라스(glace)'는 얼음 또는 아이스크림을 뜻한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 나라'라는 의미다. 영어로 '아이스크림 랜드'라고 하기보다는 훨씬 유럽적이고 참신한 어감을 주고 있어 브랜드마케팅에는 성공한 듯하다.
음식산업도 이제는 전문화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그간 '하겐다아즈'나 '배스킨라빈스' 같은 다국적기업의 대형체인이 아이스크림 시장을 독점지배해 왔지만 모르긴 해도 이제 사정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중소자본의 토종기업이 생과일아이스크림이라는 차별화전략으로 당당히 틈새시장을 개척한 걸 보면, 이제는 창의성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골리앗 같은 다국적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크게 성공한 '레드망고'라는 체인도 또 하나의 성공사례다. 미국의 석학 리차드 플로리다 교수는 그래서 미래를 주도하는 새로운 계급은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다.
이왕 떼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또 하나 우리말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하나를 소개하자면, 레슬링 용어 중에 '빠흐떼르(Par terre)'라는 것이 있다. 레슬링 경기 해설을 하는 김영준씨가 방송에서 '빠떼루'를 연발하면서 한때 유행어처럼 인구에 회자되었던 바로 그 용어다.
'빠떼루'는 조금 일본식 발음이기도 한데 프랑스 원음에 가깝게 하자면 '빠흐 떼르'가 맞다. 하지만 우리말의 외래어 표기 규정은 프랑스어의 경음을 격음으로 표기하고 있어 '파테르'라고 돼 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 규정은 사실 현실에 맞지 않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프랑스어의 경우는 격음보다는 경음이 훨씬 원음에 가깝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같은 라틴어 계열은 경음이 없는 영어와는 다르다.
어쨌거나 "빠흐떼르(par terre)는 '땅바닥에'라는 뜻이다. 한편 레슬링에서의 '빠흐떼르 포지션'은 경기 중에 적극적이지 못하거나 규정에 위반되는 경기를 했을 경우 내려지는 일종의 경고조치로 경고를 받은 선수가 매트 중앙에 양손과 무릎을 대고 엎드리면 상대선수가 엎드린 선수의 등위에서 공격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세상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양문명을 꽃피웠고 진취적이고 이동성이 강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은 땅에 기반한 문명이라서 다소 정적이고 다소 보수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농경문명은 다름아니라 땅에 기반한 문명이다. '떼르'라는 말은 그래서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바다보다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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