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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원죄, 그리고 올바른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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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원죄, 그리고 올바른 대응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32> 'Do the Right Thing'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의 제작사 'Forty Acres and a Mule Filmworks'의 명칭은 미국의 흑인, 정확히 말해 노예의 후손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품고 있는 원한과 배신감을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를 따온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흑인치고 이 문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40 에이커(약 16헥타르)와 노새 한 마리'란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노예들(freedmen)에게 나누어 주기로 약속된 것이었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 일부 지역에서 잠깐 시행되었다가 링컨 암살 후 끝내 정책화 되지 않은 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과거 노예제도에 대해 흑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물리적 보상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가구당 40 에이커'라는 토지의 분할 단위는 전쟁 말기인 1865년 1월 연방군 윌리엄 T. 셔먼 소장이 남진하면서 발령한 특별 야전명령 15호(Special Field Order No. 15)에서 명시된 것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의 특정 구역 내의 백인 농장주들이 전쟁통에 버리거나 그들로부터 압류한 농지에 적용됐었다.'노새 한 마리'는 이 야전명령에는 나오지 않는 대목인데, 북부군이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남아돌던 노새들을 현지에 살고 있던 해방된 노예들에게 한두 마리씩 나눠준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링컨이 암살당하지만 않았다면 해방된 노예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겠으나, 그의 암살 후 미합중국이 일찍이 노예제도의 원죄를 조금이나마 벌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류 존슨은 전쟁 후 급선무가 남북의 백인들끼리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 해방된 노예들을 위한 정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남부의 재건(Reconstruction)을 주도하면서 나라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반란군인 남부연합군 지도자들과 대농장주들을 무더기로 사면시켜 주었다. 존슨은 철저하게 백인 대농장주들의 이익의 편에 서 있었으며, 흑인들이 백인의 권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사실상 '원위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쪽으로 대세를 몰고 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셔먼 소장의 특별야전명령 15호를 통해 해방된 노예들에게 40 에이커씩 분배됐던 토지를 포함하여, 전쟁 중 연방군이 압류했던 모든 토지를 본래의 농장주들에게 되돌려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흑인들은 명색만 해방일 뿐, 땅을 가지지 못한 무산자의 멍에는 벗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고 나서 맞은 국가 재편의 기회를 통해 흑인들이 땅을 한 필씩이라도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면 그들도 일찍이 지주의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이 나라의 인종간 역학관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다. 논밭을 일굴 40 에이커, 그리고 쟁기를 끌 노새 한 마리 – 이것은 그때 미합중국이 바로 세우지 못한 역사의 메타포이다. (생각해 보건대, 그 표현 속에 담겨있는 소박함은 노예제도의 극악무도함과 자못 서정적이기까지 한 대조를 이룬다.)

20세기 초반부터 유럽계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이른바 '용광로'(melting pot)의 개념에서도 흑인들은 제외됐다. 사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회개혁의 간판이었던 뉴딜(New Deal) 정책은 흑인과 백인간의 신분상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선 빈곤층에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 이 정책의 사회보장(Social Security)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유색인종이었던 하인(domestics)이나 농장 노동자들(farm workers)을 명시적으로 제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럽계 이민자, 즉 백인계통의 미국인들에게만 주류에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민 초창기에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던 유럽계 이민자들이 이때부터 미국 사회에서 하얀 피부색이 갖는 위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날 미국의 흑인과 백인간의 경제적 격차가 고착화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1930년대에 설립된 연방주택국(FHA)의 초기 주택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이때 FHA는 정부가 보증하는 장기 주택융자 제도, 즉 서민층 가정들이 목돈이 없어도 불과 10%의 다운페이먼트(첫 납입금)로 집을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요즘은 이러한 장기 주택융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미국에서도 이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집값의 절반 이상을 낼 능력이 없는 사람은 내 집을 장만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FHA의 주택융자 제도와 함께, 2차 대전 이후 제정된 제대군인지원법(GI Bill)의 일환으로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뉴욕시 등지의 교외지역에 저가형 주택단지가 대거 형성되면서 주택구입 붐이 일고, 이 기회를 활용하여 2차대전이 끝나고 귀환한 수백만 제대군인들이 너무도 쉽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같은 제대군인으로서 귀환한 1백만 명에 달하는 흑인 사병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주택구입 붐의 혜택을 보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연방기관 FHA의 장기주택융자에 대한 인종분리적 내부지침이었다는 것이다.

FHA는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주택융자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들에 시달한 지침서에서 흑인과 백인이 섞여 있는(integrated) 동네의 집값은 '불안정'하므로 리스크가 높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흑인에게 주택융자를 주는 것은 지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정부 당국자들은 주택시세에 인종분포를 반영시키는 이러한 주택감정시스템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했고, 연방 조사관들은 239개 도시에서 이 시스템을 적용하여 인종분포를 근거로 주택시세와 지역별 리스크를 평가했다. 미국에서 '백인동네'와 '흑인동네'간의 부동산 시세의 격차는 이같이 정부의 주도하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1934년부터 1962년까지 연방정부는 1천2백억 달러에 달하는 주택융자를 보증해 주었는데, 이 가운데 '비백인'(non-white)에게 돌아간 융자금은 2%에 못 미쳤다. (이 내용은 미국 공영방송 PBS의 지원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사 California Newsreel이 만든 3부작 시리즈 'RACE – The Power of an Illusion'[인종, 환상의 위력 · 2003]의 3부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흑인들에게는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좀 더 와 닿을 만한 말로 얘기해 보자. 맨하탄 부근의 교외지역인 롱아일랜드에 레비타운(Levittown)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 동네는 앞서 말한 것처럼 40년대 말에 FHA의 장기 주택융자 정책에 편승하여 개발된 보급형 주택단지이다. 개발 당시 이 타운의 신규주택 한 채(대지 200평, 건평 40평 정도)의 가격은 1만 달러 미만이었고, 제대군인들은 30년 장기 모기지를 얻어 월 납입금 65달러 정도에 그런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수십 수백만의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롱아일랜드의 레비타운, 또는 유사한 교외 주택단지로 몰려들어 버젓한 주택 소유주들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 1만 달러 미만에 살 수 있었던 레비타운의 집은 요즘 기본이 40만 달러를 호가한다. 초창기 유럽계 이민자들의 신분상승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사진> 뉴욕 롱아일랜드의 레비타운.

그런데 흑인들은 어땠는가. 능력이 되어 레비타운에서 집을 사고 싶어도 연방정부 기관의 차별적 융자정책으로 인해 집을 살 수 없었다. 쾌적한 교외로의 진출을 거부당한 그들은 대신 도심의 공공주택이나 '흑인동네'로 몰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몰려있는 지역의 부동산은 애초부터 연방정부의 작품이었던 '인종별 리스크 가이드라인'의 영향으로 시세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이처럼 제도에 의해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이룬 눈부신 경제적 성장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봉쇄 당한 흑인들은 중산층에 있어서 대부분 부동산에서 창출되는 부의 축적을 맛볼 수 없었다. 개개인의 감정적인 인종차별보다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체계적인 인종차별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원죄를 - 이민자도 아니고, 건국 때부터 함께 살아온 특정 인종 전체의 존엄을 거덜내고 좌절과 불만을 그들의 인생관으로 만든 그 원죄를 - 당사자들은 잊지 않는다. 그 원죄에 대한 원한은 휴화산처럼 겉으론 평온해 보일지라도 항상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우리는 근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강자의 논리는, 정확히 50년 전(1965년 8월)에 일어난 로스앤젤레스의 와츠(Watts) 폭동이나, 더 가깝게는 1992년에 일어난 LA폭동 같은 대규모 사건들을 단순한 '사태'로 매듭지으려 하고, 그것을 미국의 원죄와 결부시키는 것을 멋적게 만든다. 원인제공자를 무시하게 마련인 강자의 논리는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은 반사회적인 폭도요 범죄자일 뿐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적 원죄의 맥락에서, 그런 폭동을 국가의 불의에 대항하는 항쟁으로 보는 흑인 중심의 관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것은 스파이크 리의 영화 'Do the Right Thing'(1989)을 생각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관점이다. 제작사 이름이 '40 에이커와 노새 한마리'인 이 영화는 강자의 논리 속에 묻혀온 흑인들의 관점에 인격을 부여해 주고,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저항을 인간화한다. 강자의 지배논리로 무장한 자가 아니라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일어나는 폭동을 스파이크 리의 렌즈를 통해 흑인의 관점에서 보게 될 터이다. 어쩌면 심지어 그 소요가 남긴 잿더미 속에서 폭력 저항의 어떤 당위성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People, people we are the same
No we're not the same
Cause we don't know the game

여보게들, 여보게들 우리는 같아
아니 우리는 같지 않아
우린 수단이 없기 때문이지 ["don't know the game" = 게임의 법칙이나 요령, 또는 인사이드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뜻]

이건 영화의 시작에서 울려 퍼지는 갱스터랩 그룹 퍼블릭 에네미(Public Enemy)의 'Fight the Power'(권력에 저항하라)의 가사이다. 언뜻 정신분열적 가사처럼 들리는 "우리는 같아, 아니 우리는 같지 않아"라는 구절은 사실 노예해방 이후 평등 속의 불평등에 거세된 채 살아온 흑인들이 품고 있는 배반의식의 요약이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일반적 정서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개시 인물자막과 함께 나오는 이 노래의 쿵쿵 울리는 후렴("Fight the powers that be, Fight the power")의 리듬에 맞춘 로지 퍼레즈(티나)의 공격적인 춤은 수백 년 동안 흑인들을 짓눌러온 지배층(powers that be)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준비운동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저항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저항할 것이냐는 것이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그 선택만 있을 뿐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는, 마치 사회정의에 대한 흑인들의 갈망이 말로 다 표현될 수 없음을 상징하듯 말더듬이 스마일리(로저 G. 스미스)가 들고 다니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한 장씩 사달라고 졸라대는, 말콤 X와 마틴 루터 킹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은 협력한 적도 없고 공식적으로 만나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1964년 3월 워싱턴에서 일정이 겹쳐 잠깐 마주쳤을 때 찍힌 이 사진은 흑인들 사이에 국가의 불의에 대응하는 방식의 선택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자막은 말콤 X와 마틴 루터 킹 각자가 갖고 있는 대응방식의 신조이다.

<사진>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

"인종 정의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폭력은 비실용적이며 부도덕한 것이다. 비실용적인 이유는 그것이 모두의 파멸로 끝나는 추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이유는 그것이 적의 이해를 얻기보다는 굴욕감을 주려 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전향시키려 하기보다는 괴멸시키려 한다. 폭력은 사랑보다는 증오 속에서 자라나기에 부도덕한 것이다. 폭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폭력은 대화가 아닌 독백의 사회를 만든다. 폭력은 스스로를 패배시킴으로써 끝나고 만다." – 마틴 루터 킹

"나는 미국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나쁜 사람들 또한 많으며, 그 나쁜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여러분과 내가 필요한 것들을 가로막는 지위에 올라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여러분과 나는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권리를 보존해야 하며, 내가 폭력을 주창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동시에 자기방어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자기방어일 때는 폭력이라고 하지도 않고, 난 그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 말콤 X

이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면서 문득 분명해지는 것은, 스파이크 리는 'Do the Right Thing'에서 말콤 X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먼저 마틴 루터 킹의 유려한 글이 나오면서 비폭력의 메시지를 멋지게 표방하는 듯 하다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by any means necessary)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외쳤던 말콤 X의 선동적인 연설 발췌문이 이를 힘차게 반박하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 증거는 이 영화의 제목에도 담겨있다. 우선 한국어 제목으로 붙여진 '똑바로 살아라'는 이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를 잘못 전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Do the Right Thing'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불특정 다수에게 '올바르게 살아라'고 하는 한가한 교과서적 교훈의 표현이 아니다. 제목은 어떤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 처했을 때, 짓눌림을 당하거나 불의를 눈앞에 두고 그것에 맞는 올바른 대응을 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인물 중에 '시장'('the Mayor' – 오지 데이비스 분)이라고 불리는 영감은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그는 주인공 무키(스파이크 리)에게 난데없이 두 차례 "항상 올바르게 행동을 하라(Always do the right thing)"고 의미심장하게 일러준다. 그리고 무키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연한 표정으로 살(Sal, 대니 아이엘로)의 피자가게의 통유리창을 쓰레기통으로 박살내고, 그것이 폭동의 불을 댕긴다. 백인과 흑인간의 싸움에서 백인의 편을 들던 백인 경찰의 손에 흑인 청년이 죽었을 때, 무키가 한 것처럼 하는 것이 'the right thing'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쉽게 단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미국의 수많은 흑인들이 그렇게 단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흑인사회 고유의 암담한 현상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백인도 아닌 사람이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백인의 시각에서만 보고 이해하려 한다면 최소한 촌스럽거나 지적으로 게으르다는 혐의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강자의 논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인과관계를 반드시 왜곡한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진실을 알고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가치관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Do the Right Thing'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 캐릭터의 모습을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영화의 초반에서 무척이나 밉살스럽게 묘사된 그로서리 가게 주인 서니(Sonny – 스티브 박 분). 그는 폭동이 시작되고 분노가 절정에 달한 주민들이 그의 가게로까지 쳐들어가려 하자 "I'm not white! I'm black!"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주민들은 허를 찔린 듯 일단 그를 향한 분풀이를 포기한다. 그가 이처럼 황급하게 내뱉는 말은 과연 같은 소수민족에 대한 불의를 목격한 사람의 연대감에서 우러나온 진심일까, 아니면 단지 궁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얕은 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작품에 대한 동기분석 차원의 궁금증이기도 하거니와, 미국에서 살고 있는 황색 소수민으로서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답이 무엇이든, 스파이크 리는 이 장면을 통해, 피부가 검지는 않더라도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는 우리 같은 이민자들에게 경고장을 던지듯 한가지 충고를 던지는듯하다. 명심하라.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미국의 역사를 똑바로 보고, 이 나라의 원죄가 낳은 현실을 냉철한 눈으로 보고 있다면, 그 원죄의 열매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상 '백인행세'를 한다는 것은 분명 떳떳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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