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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균형발전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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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균형발전계획'이 필요하다

공간연구집단의 '도시에서 유목하기' <7>

5년간 62조원!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투입하겠노라고 발표한 국비의 규모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기업과 인재, 자본을 모두 끌어가면서 비수도권 지역, 특히 군 단위 지방 농촌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지역사회가 침체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이처럼 대규모 예산이 책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비 투입 규모만 1년간 국가예산의 절반에 이르고, 공공기관 이전, 지방 산업 클러스터 건설 등 굵직한 지방 경제 활성화 정책들이 포함된 이 계획이 발표되면서, 지방 지자체들은 지역 활성화의 계기가 마련됐다며 반기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지방 지자체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균형발전사업을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고 국가균형발전사업의 향후 15년간 로드맵이 발표되고, 행정복합중심도시, 공공기관 이전 등 대규모 지방분산 정책을 실시하는 등 중앙정부가 의욕적으로 지방살리기에 나서는 모습은 지방 지자체들에게 '무언가 바뀌는구나'란 인상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도별 전략사업(출처: 산업자원부)]

사실 그동안 한국의 지역정책이 서울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6·25전쟁 이후 1970년까지 전국적 국토개발계획이 없었던 시기에, 서울의 인구는 1950년대에는 매년 18만명, 60년대에는 매년 27만명씩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200달러에도 못 미쳤던 국민소득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나마 정부기관이 기업이 밀집한 서울에는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취업자 통계를 보면, 60~70년대 서울시의 취업자 수는 매년 약 10만명씩 증가하였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군사정부는 1963년 서울-인천지역에 대한 특정지역개발계획을 수립하고 1965년 최초의 도시 공업공단인 구로공단 1~3단지를 서울시에 조성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뒷받침하였다. 1972년부터 10년 단위의 제1~2차 국토종합개발이 시행하면서 중앙정부는 서울 집중과 지방 침체를 해결하려 하였지만, 실제 투자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지방의 낙후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았다. 1990년대에는 국토의 고른 개발을 모토로 하는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었고, 아산, 군장, 대불, 광양 등 서해안 중심의 신산업거점 형성사업, 도서·오지개발사업, 개발촉진지구 등 낙후지역 육성 정책 등이 시행되면서 지방살리기가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는가 했지만 이마저도 '글로벌 스탠다드', '국제경쟁력' 등 19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세계화 조류에 휘말리면서 정책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한편, 국가주도형 하향식 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와 함께 각 지자체 스스로 지역개발을 책임지는 상향식 정책의 틀을 갖추었지만, 지자체의 권한 및 재원 부족으로 지방의 낙후 문제는 그다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 출범 후 전면적으로 도입된 국가균형발전계획은 지금까지의 서울·대도시 중심 정책을 반성하고, 그동안 국가 정책에서 소외되어 왔던 지방이 정책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지역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통해 국토 공간상의 모든 지역의 발전 잠재력을 증진함으로써 어느 지역에 거주하더라도 기본적인 삶의 기회를 향유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한다(국가균형발전의 비전과 과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3)'는 정책 목표에서 볼 수 있듯이, 균형발전계획의 성패는 지역 사회 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방 각 지역이 중앙정부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통해 고르게 혜택을 받음으로써 이후 자립적으로 지역 발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배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대규모 이전, 혁신 산업클러스터, 기업도시, 지역특화발전특구, 신활력사업, 지방대학지원사업 등 지방 도시 및 낙후지역의 개발을 촉진하는 제도들을 활발히 시행한다거나, 기초 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에 지역혁신협의회를 설립하여 각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체적인 계획 수립을 유도하는 '상향식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들이다.

올해만 해도 4개(재심의하기로 한 태안, 해남ㆍ영암을 포함하면 6개)의 기업도시가 지정되고 시도별로 공공기관 이전협약이 체결되면서 정부의 균형발전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토지소유자 50% 동의시 토지수용권 부여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한 기업도시는 고용창출효과가 큰 대기업 생산부문에 참여하지 않아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가능성이 높고, 공공기관 이전에서는 공공기관이 들어설 혁신도시의 입지를 놓고 중앙정부와 광역정부가 격렬히 맞서고 있다.

낙후지역(전국 지자체의 30%인 70개)에 향후 3년간 매년 20억~30억원을 지원하는 신활력 사업을 두고서는, 선정된 지역은 정부 재정지원 확대, 탈락지역은 재심의를 요구하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매달 굵직한 계획들을 발표하는 중앙정부와 달리 균형발전계획을 추진해 나갈 지역의 하부구조는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역혁신협의회 회의 모습(출처: 연합뉴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계획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부문별 계획과 각 시도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지역혁신발전계획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공공기관 이전, 산업클러스터, 신활력지역 등 요즘 이슈가 되는 사업들은 대부분 중앙정부의 부문별 계획에 포함되고, 지역혁신발전계획에서는 각 시도에서 별도로 전략산업(시도별로 4개씩)과 지역연고산업(10개씩)을 선정하여 이의 육성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시도별로 어떤 산업을 전략산업 또는 연고산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각 사업에 어느 정도 재원을 배분할지는 시도별로 구성되는 '지역혁신협의회'에서 결정되는데, 문제는 균형발전계획의 핵심 브레인이자 집행기구라 할 수 있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지역내 각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이자 공정한 심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비만 해도 5년간 약 30조원 가까이 집행되는 지역혁신발전계획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상적인 의사결정은 지역주민→기초지자체 지역혁신협의회→광역 지역혁신협의회를 거치는 방식일 것이다. 상향식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내발형 발전모델을 모토로 하는 참여정부의 균형발전계획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 지자체의 지역혁신협의회가 지자체내 각 계층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고, 광역 지역혁신협의회는 기초 협의회의 대표자들과 중립적이고 전문적 조언이 가능한 위원들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는 브라질 뽀르뚜 알레그레시의 참여예산제 운영방식과 비슷하다). 중앙정부에서 대규모로 책정한 재정 투자계획(62조!62조!62조!)이 중간 누수 없이 각 지역 주민들에게 실제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민의가 최대한 반영되는 의사결정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불행히도 이런 상향식 의사결정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광역, 기초 할 것 없이 지역혁신협의회는 단체장이 위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대부분 기관단체 대표들로 채워지고 있으며(전체 지자체의 2/3가량이 위촉으로만 협의회 위원을 선임하였다), 기초 협의회와 광역 협의회 간의 의사소통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균형위에서 발간한 보고서('기초자치단체 혁신기획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를 보면, 광역 협의회의 회의 결과가 기초 협의회에 통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64%), 기초 협의회 위원들은 광역 협의회 회의 결과를 거의 모른다(52%)고 응답하였다. 최근 지역혁신발전계획의 사업선정결과를 둘러싸고 전라남도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매일노동, 2005.5.18일자)은 협의회의 폐쇄성이 가져오는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라북도 지역혁신발전계획상 투자계획(출처: 전라북도 지역혁신협의회 홈페이지)]

협의회의 폐쇄성은 비단 행정조직 내의 문제만이 아니다. 시도별로 몇 조원에 이르는 투자 정책을 수립하고 재원을 배분할 시도 지역혁신협의회가 일반 주민에게도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혁신발전계획의 수립과정, 협의회 회의록, 지역별 재원배분 결과 등 협의회의 활동 결과들이 공개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아예 광역 협의회 홈페이지를 구축하지 않았거나 간단한 팝업창만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이미 작년말 시도별로 지역혁신발전계획이 수립되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보고서 형태로 게재되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한편, 홈페이지를 구축한 시도 지역혁신협의회 중에서도 각 부문별 사업에 얼마만큼의 재원을 할당할지 투자 계획을 공개한 곳은 전라북도뿐이며, 부문별 계획도 대항목으로만 잡혀 있어 각 기초지자체가 시도별 계획을 통해 우리 지역에 어느 정도 지원이 이루어지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향후 5년간 지방 각 마을, 지역의 모습을 확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계획이 일부 공무원들과 전문 위원들 사이에서 주민 몰래 작성되고 있고 계획 내용도 별달리 공개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정부는 서둘러 사업을 추진하느라 미처 정보 공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변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계획의 목표가 홍보 책자에서처럼 '골고루 잘 사는 사회의 건설'이라면, 기초 지자체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참여가 없는 현재의 하향식 계획이 낙후 지역의 기초체력 강화에 지속적으로 효과를 낼 지 의문스럽다.

지금처럼 공개되지 않은 채 밀실에서 쑥덕쑥덕 결정되는 체제 하에서, 정부가 국가균형발전계획에서 투자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효율적 자원 배분'을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대규모 돈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각 지자체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비리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려면 주민과 기초 지자체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투명화하는 장치가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일본에서 그랬듯, 각 기초 지자체에 100억원씩 일괄적으로 나눠주고 알아서 사업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지금의 밀실 결정방식보다 재원 투자 결과가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지자체간 형평도 달성하고 지역 주민이 보다 활발히 참여하는 본격적인 풀뿌리 계획방식을 시험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필자 이메일: urbang5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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