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유라시아의 빛을 찾아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유라시아의 빛을 찾아서

김봉준의 '유라시아 문화기행' <2>

속초까지 달려 왔습니다. 7월 22일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을 지나 설악산을 넘어서 속초까지 왔습니다. 한ㆍ러 유라시아 대장정은 예정대로 시작했습니다. 23일 오전 9시 30분, 국회에서 환송식을 가졌습니다. 이화영, 고진화, 박계동, 김은영 등 대장정에 직접 참여하는 국회의원들이 참석했습니다. 김덕규 국회부의장은 격려사를 하고 장영달 한·러 의원외교협의회 의장은 환송사를, 알랙산더르 미나에프 러시아 참사관도 축사를 했습니다. 모두 무사히 잘 다녀오길 바라고 유라시아 대장정의 의의를 강조하는 발언들이었습니다.

"유라시아시대를 열자"는 구호도 주먹을 불끈 쥐고 함께 외쳤습니다. 여야 모두의 정치인, 현대 삼성 등 경제인, 시인 학자 예술인 할 것 없는 문화계 인사가 모두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오랜만에 겪어보는 이구동성입니다. 유라시아 시대를 열자는 데는 반대의 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요즘같은 갈등의 시대에 보기 드문 일입니다. 정치 쪽에서는 한·러 우호 협력과 미래평화시대를 강조하고, 경제 쪽에서는 대륙으로 무역과 자원경제의 활로가 열리기를 바라며, 문화 쪽에서는 대륙문화와의 근원적인 친연을 알고 싶어 합니다. 강조점이 다를 수밖에 없으나 우호 협력과 평화번영을 바란 다는 점에서 '대충' 비슷합니다.

크게 같기만 해도 이것으로 이미 성과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야 당연합니다. 다르면서 같다, 같으면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초부터 인정하고 가는 길, 이것이 앞으로 있을 '유라시아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시베리아의 자연을 보존하면서, 토착민의 문화적 종 다양성을 인정하는 불문율이 통하는 시대이길 바랍니다.

우리 유라시아 대장정 일행은 벌써 두 번에 걸쳐 길 고사를 치렀습니다. 이름하여 '평화 길맞이'입니다. 김원호 상쇠가 이끄는 유라시아 평화 길맞이 풍물패는 쌀과 초를 장만하고 북어와 명주실을 제단에 올리고 차 고사를 지냈습니다. 고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내려왔는지 다시 생각합니다.

'쌀'은 '살'의 된 발음입니다. 햇살, 창살 하는 그 살에서 왔으니 살은 곧 빛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씨를 쌀이라 불러온 것 같습니다. 촛불 역시 빛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겨레가 차린 가장 간결한 제상에는 역시 생명의 빛을 모시는 겁니다. 북어와 명주실은 치유와 목숨을 상징합니다. 북어는 원래 北魚로 북시베리아에서 북해로 흘러가는 고기랍니다. 북어는 해독작용에 좋아서 독충에 물리거나 숙취해소에 쓰여 왔습니다. 북방 유목 수렵민에게 요긴한 고기입니다. 하얀 무명실은 애기들 돌잔치 상에도 올려놓았습니다. 우리 풍속에서 붓과 밥과 실을 놓아둔 아기 돌상에서의 실과 같은 의미입니다. 수명장수를 상징하지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명주실과 북어는 그러니까 명복을 상징합니다.

그 간소한 제상차림에 절을 올리는 것은 생명의 빛을 향한 비나리입니다. 비나리는 소원을 비는 지극한 바램의 의례를 말하지요. 우리 대장정 일행은 속초에 도착해서 어둑어둑한 설악산 자락 아래 속초유스호스텔 앞마당에서 차를 주차해 놓고 비나리를 했습니다. 어둑한 밤 비 주룩주룩 내리는 그늘에서 간만에 치루는 고사는 대원들 30여명의 마음을 다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역시 고사는 멋진 겨레의 의례입니다. 저는 풍물 고사야말로 우리 겨레가 자랑할 만한 이동식 미사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비나리를 하고 싶은 곳이면 간소하게 펼치고 하는 의례입니다. 생활 처소를 모두 성소로 보는 사유체계이지요. 진속일여(眞俗一如)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때와 장소뿐만 아니라 모든 비존재에게까지 영혼이 있다고 보는 범신관입니다. 이동하며 의례를 펼친다는 것은 유목문화전통에서 옵니다. 우리 문화가 저 시베리아 샤먼의 문화와 같은 뿌리라는 것을 의례는 말하는 셈이지요.

의례는 신화와 사유체계의 산물입니다. 고사나 굿이 본래 우리만의 문화는 아닙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저 대륙의 동아시아와 연결됩니다. 한국문화는 그 '연결'이 끊어진 100년입니다. 이 끊어진 끈을 연결해 보러 가는 길, 문화원형을 찾아가는 길이 유라시아의 빛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나라는 남북으로 끊어지고 기후는 동서로 분리된 땅이 한반도 같습니다. 동해로 넘어오니 비가 내리더군요. 분단 60년은 우리 문화의 연결 고리를 모두 끊어 놓았습니다. 대륙으로 오가는 문화흐름이 철저히 차단 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좌우이념의 대립을 많이 언급하면서도 문화의 단절은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해서 전통문화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 세월이 100년의 역사 같습니다. 덕분에 서양으로부터 좋은 것 나쁜 것 한꺼번에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어째든 주체의 빈곤과 편협한 개방이 만들어 낸 파행적 근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속초를 떠나 차를 배에 싣고 연해주 자로비노항으로 갑니다. 이상하지요. 굳이 차를 배에 싣고 동해를 공해로 빙 둘러서 항해하며 가니 말입니다. 새삼 대륙과의 단절시대를 실감합니다.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대륙여행을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지를 말입니다. 끊어진 동종의 문화에 대한 갈망이 우리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길고사를 치르며 절을 올리는 대원들의 몸에 저는 쑥 연기를 뿌렸습니다. 개량화 한 향보다 쑥 연기는 우리로 하여금 고향 생각을 절로 나게 합니다. 여름에 앞마당 모기를 쫓던 쑥불에서 더 오랜 의미를 건져 봅니다.

우리는 배달 자손입니다. 천손족의 부족장 환웅이 혼인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곰 숭배족과 호랑이 숭배족으로부터 동시에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내기를 시켰는데 마늘과 쑥만 가지고 100일 동안 견디며 살 수 있는 처자에게 장가를 가겠노라고 합니다. 곰 숭배 족 처자가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천손족 환웅과 결혼하는데 곰 숭배 족은 그때부터 단군의 모계가 됩니다. 쑥은 단군족 모계전통문화의 상징입니다. 그때부터 신성한 의례를 할 때 몸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쑥을 사용하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례가 의식을 정화합니다. 쑥향이 그 매개물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오늘 조국을 떠납니다.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잃어버렸던 문화의 끈을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시베리아의 토착민들과 춤추며 평화의 우애를 다지고 싶습니다. 우리는 떠나기 전 아침. 속초시장으로 달려가 마지막 장을 봅니다. 우리가 거기서 꼭 먹고 싶은 , 먹어야만 하는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입니다. 차에 실린 짐은 포화상태이니 마지막 준비물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제일 아쉬운 음식이 무엇일까? 전 시원한 국물입니다. 된장 고추장 넣고 파 마늘 숭숭 썰어서 차린 얼큰하고 시원한 국. 우리는 된장국을 들판에서 취사 중에 차려 먹기 위해 부랴부랴 장을 보고 배 위에 오르렵니다.

정다운 된장국, 정다운 조국이여 잠시 안녕
검푸른 동해도 안녕
도시 먼지도 쩨쩨한 맘도 부디 안녕
이제 와서 단절 탓, 분단 탓하면 무엇 하리
다시 빛 담아 오리
유라시아의 빛 받으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