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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 '마징가 Z 공격'을 아시나요?

[런던올림픽] 다시 보는 1976년 한국 여자 배구와 'AGAIN 1976'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대회다. 이 대회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해방 이후 한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중한 동메달이 있었다. 바로 여자 배구 대표팀이 구기 종목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것.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2012년,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AGAIN 1976'을 꿈꾸고 있다. 1976년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대표팀의 전략

몬트리올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의 동메달은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키도 서양 선수들보다 평균 10cm 정도 작았고, 배구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룬 쾌거였다. 선수들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빠른 발놀림과 다양한 공격 전략을 준비했다.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딴 '마징가 Z 공격'도 그러한 공격 전략의 일환이었다.

당시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전반,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선수들은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차 공격을 많이 사용했다. 시간차 공격이란 상대 수비수가 예상한 공격 시간보다 빨리 또는 늦게 공격하는 기술을 말한다. 공격 타이밍을 속여 서양 선수들의 높은 블로킹을 피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일본은 당시 이 기술로 세계 배구를 제패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징가 Z 공격'은 단순한 시간차 공격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은 1991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징가 Z 공격'이 이동시간차 공격이었다고 말했다. 시간차 공격을 하기 위한 속임수 동작과 이동공격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대표팀은 공중에서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변경자 선수에게 이 기술을 훈련시켰다. 변경자 선수는 기대 이상으로 잘해냈고 이 기술은 대표팀의 비밀 병기가 됐다.

▲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던 훈련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탁월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독특한 공격 전략만으로는 세계의 벽을 넘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바로 '지옥훈련'이었다.

대표팀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일본 여자 배구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다이마쓰 감독에게 5주간 특별 지도를 받았다. 다이마쓰는 스파르타 훈련의 대명사였다. '전 일본 여성의 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비인간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기로 유명했다. "나를 따르면 금메달이고, 그렇지 않을 거면 당장 코트를 떠나라"고 선수들을 다그칠 정도였다.

휴일 없이 매일 13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졌다. 한 선수는 연습 중 다이마쓰의 스파이크를 받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표팀 주전 공격수이던 박인실 선수가 "더 이상 이런 짐승 같은 생활을 못하겠다"며 선수촌을 나가기까지 했을까.

박인실 선수는 선수촌에서 이탈한 후 다이마쓰의 비인간적인 훈련 방식과 이를 묵인하는 대한배구협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직후 대한배구협회는 박인실 선수를 영구 제명했다. '국위 선양'을 위해 다른 무엇보다 메달을 따는 것을 우선했던 시대에 선수가 훈련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남은 선수들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 선수들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올림픽 메달만 따면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빈혈 증세로 얼굴이 노랗던 백명선 선수는 이번에 메달을 따야 여섯 동생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다며 악착같이 뛰었다.

입 하나 덜고자 혹은 남자 형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집안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고자 고향을 떠나 공장으로 또는 식모살이를 하러 갔던 1960-1970년대 젊은 여성들의 현실은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죽을 고생을 하며 훈련한 대표팀 선수들은 몬트리올로 향했다. 한국은 몬트리올올림픽에 출전한 8개 팀 중 소련, 동독, 쿠바와 함께 B조에 속했다. 한국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북극 마녀'로 불리던 소련 팀에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했다.

준결승에 진출하려면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힘을 발휘했다. 동독과 쿠바에 모두 첫 세트를 내주고도, 두 번 다 세트 스코어 3-2로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특히 동독을 상대로 한 예선 2차전에서는 마지막 세트에서 5점 차이를 뒤집는 뒷심을 보여줬다.

한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0-3으로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눌렀다. 값진 동메달이었다. 선수들의 활약에 국민들은 감동했다. 이 메달은 1980년대에 여자 배구 전성시대를 여는 도화선이 됐다.

'AGAIN 1976'을 꿈꾸는 여자 배구 대표팀

그 후 한국 여자 배구는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본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2004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메달 획득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한국은 세계 랭킹 1위 미국, 2위 브라질, 5위 중국, 6위 세르비아, 11위 터키 등 쟁쟁한 강호들이 즐비한 이른바 '죽음의 조'에 속했다. 세계 랭킹 15위인 한국은 예선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올림픽을 20여 일 앞두고 간판선수 김연경의 팀 계약 문제가 터지면서 대표팀의 시름은 깊어졌다. 주장 김사니의 어깨 부상과 양효진의 발목 부상도 악재였다.

하지만 부상 선수들의 컨디션이 살아나고 김연경이 투지를 불태우면서 대표팀은 활력을 되찾았다. 한국 팀은 브라질과 세르비아를 연파하며 승점 8점을 챙겨 조 3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 여자 배구 대표팀이 지난 2일(현지 시각) 세계 랭킹 2위인 브라질 팀을 꺾고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한국 팀의 8강전 상대는 강호 이탈리아(세계 랭킹 4위)다. 한국 팀보다 실력이 한 수 위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조별리그를 거치면서 각 팀 선수들의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 한국 팀이 해볼 만한 승부라는 전망도 나온다.

36년 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선배들의 마음가짐과 지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마음이 똑같을 순 없다. 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열정만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징가 Z 공격'을 만들어낸 선배들의 열정을 빼닮은 2012 런던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 선수들의 열정이 런던 얼스코트에 펼쳐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여자 배구 8강 경기는 8일 오전 5시(한국 시각)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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