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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 지역사회의 힘으로...

공간연구집단의 '도시에서 유목하기' <5>

***홍대앞 시장골목**

양화로에서 홍대입구 진입로로 약 100m 올라오면 우측으로 좁은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골목을 '홍대앞 시장골목'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이곳이 기차길이었지만, 지금은 선로 대신 좁고 긴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시장골목은 여느 이면지역의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걷기가 다소 불편하고, 건물들이 허름해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물건을 파는 가게, 거리 곳곳의 벽화, 저녁이면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있어 다른 골목길과는 확연히 다르다. '홍대'하면 떠오르는 예술적 분위기를 바로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시장골목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대형 고기집, 요란한 간판의 노래방, 옷가게가 하나씩 들어서더니 좁은 골목에 대형 상업용 빌딩마저 등장했다. 이와 함께 대체로 낮게 형성되어 있던 임대료가 들썩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시장골목이 조만간 이른바 '걷고 싶은 거리'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철거계획**

마포구는 1998년 11월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사업 대상지로 시장골목을 포함한 약 1.2km의 폐선로 부지를 선정했고, 2000년 기본설계를 마친 뒤 2002년 홍대입구 전철역 부근에 1차 사업을 완료했다. 1차 사업의 내용은 폐선로 위에 늘어서 있던 건물들을 철거(그림3)하고 넓은 보행로(그림4)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본설계를 살펴보면 시장골목도 1차와 마찬가지로 폐선로 위의 건물을 허물고 거리를 넓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이 부지가 서울시 도시계획에 의하면 중로 2류의 도시계획도로이고, 마포구는 1984년 마포구 도시기본계획에서부터 이곳을 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가로형 공원으로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문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와 같은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철거와 보행환경**

비록 걷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반드시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공간을 넓혀야만 보행환경이 좋아질까? 시장골목과 마찬가지로 일렬로 늘어서 있던 건물군을 해체하고 만든 1차 사업구간의 거리는 일차선의 도로와 몇몇 지점에 차량을 정차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보도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저녁시간이나 주말이면 도로 주변은 주차장으로 변하고 만다. 도로는 비록 차량 한 대만 다니도록 되어 있지만 보도를 조금만 올라가면 도로 양편으로 주차하고도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설계되었고, 차량을 막기 위해 설치된 볼라드가 듬성듬성 배치돼 있기 때문에 차량들이 보도 위를 마구 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넘어오는 차량들 때문에 공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애써 깔아놓은 보도가 심각하게 파손되고 있다. 또 비록 보도가 넓긴 하지만 주변에 주차된 차량과 지나가는 차량들 때문에 소음과 매연, 그리고 번잡함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행환경의 질은 보도 자체의 물리적 크기보다는 차량과의 관계, 보도의 유지관리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만드는 여러 도시에서는 보도정비와 함께 주차와 차량의 운행계획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다. 보행자 도로 주변으로는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외곽에 주차장을 설치한다든지, 차량의 운행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폭만 계획하고 차량이 보행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철저히 볼라드를 설치하고 보행이 편하도록 보도의 재료를 선정한다. 이 같은 계획은 가로가 넓든 좁든 상관없이 시행된다.

즉 이곳 시장골목도 현재 아무렇게나 다니는 차량의 통행을 일방이나 시간제 차량 운행으로 조정하고, 적정한 곳에 주민들을 위한 주차장을 확보하고, 기존의 보도를 깨끗하게 정비한다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기존의 주민들을 몰아내지 않고도 충분히 보행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철거와 문화환경**

하지만 기존의 건물을 남기면서 가로환경을 개선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길이 정비되면 주변건물과 함께 선형건물군의 상가들도 자연히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걷고 싶은 거리' 1차 사업구간은 술집, 오락실, 노래방 등의 먹고 마시는 유흥가로 변해버렸다. 야외무대에서 가끔 공연이 열리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먹고 버린 술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광고물 전단지가 바닥에 가득하다. 곳곳에는 주변 상가에서 내놓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봉투들이 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일종의 문화겠지만, 과연 사람들이 기대했던 홍대 앞 문화공간의 모습이 그런 것일까?, 세금을 들여 사업을 한 결과, 어디에나 있는 유흥가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사업에 세금을 쓰도록 동의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어떤 곳이 '문화적'이라고 할 때는 물리적인 길 자체가 아니라, 주변의 공간구성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화랑과 고미술점이 있는 인사동과 공연장들이 밀집한 대학로를 문화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란 음악, 미술, 무용과 같은 예술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시골장터에서 바닥에 좌판을 내놓고 왁자지껄 물건을 흥정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이고, 유럽 중세 도시의 좁은 골목길, 근엄하게 보이는 오래된 건물과 거리 곳곳에 작은 화분을 내놓는 것도 그들의 삶의 방식 즉 문화다.

삶의 방식은 대개 오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욱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문화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한 물리적인 변화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의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문화는 변해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막상 실행하기란 만만치 않다. 오가는 사람을 상대하는 음식점과 타 지역과 거래하는 사무소, 큰 상점과 작은 상점,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몇몇 무허가 건물이 있기 때문에 그 이해관계는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과 협의하지 않는 한, 공공 섹터가 혼자서 아무리 펜대를 굴린다 해도 모두가 만족하는 계획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움직임**

최근 이곳에서는 지역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 만들어 지고 있다. 철거 위기에 처한 'Theater Zero 소공연장 살리기' 운동에서 시작한 지역사회의 움직임이 '홍대앞 문화협동조합'을 결성했고, 그 뒤 시장골목에 있는 철거예정 건물의 입주민들과 지역활동가들이 모여 '서교동 365번지' 대책 모임을 만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건물의 철거를 반대하기 위해 모였지만, 이들의 논의는 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까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논의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공공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폭력적인 개입 또는 방치가 아니면서도 조금씩 나은 공간을 가꾸어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민들이 만드는 거리**

'서교동 365번지' 회의는 '값싼 작업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한다', '음식점이나 상점 일부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할애한다'는 등의 예술분야 아이디어에서부터 '간판은 작고 아름답게 만든다', '쓰레기는 정해진 시간에만 내놓고 상점 앞은 스스로 청소한다', '상점 앞은 계절에 맞는 꽃화분으로 장식한다'와 같은 운영원칙, 낡은 시설에 대한 보수까지 지역 환경 전반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논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주민들끼리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에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과의 합의와 이에 대한 실천이 없이 물리적인 보행환경만 정비한다면 1차 '걷고 싶은 거리'사업과 같은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만들게 될 '걷고 싶은 거리'사업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물리적으로 보행환경을 정비하는 것과 함께 주민들이 계획과정 속에 참여해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엄격히 실천될 때만 허명이 아니라 명실 상부한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이메일: laluna6@cric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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