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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마다가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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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마다가스카르'

김민웅의 세상읽기 <89>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디즈니 식 귀족주의 동화의 구조를 뒤집는 풍자 만화영화 <쉬렉>을 만든 드림워크(Dream Works)사의 최신작품입니다. '뉴욕 센트랄 파크' 동물원에 있던 사자와, 얼룩말, 하마, 기린 그리고 펭귄이 어느 날 도시에서 빠져나와 아프리카 초원으로 우연치 않게 상륙한 뒤 벌어지는 사건들을 희극화 시킨 내용입니다.

이들 동물들은 동물원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인기 연예인처럼 보여주는 재미로 살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얼룩말은 이런 생활의 한계에 고달파 하면서 무한한 신비가 깃들어 있는 야생(野生)의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얼룩말은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처럼 들판을 한껏 달리는 꿈을 매일 꿉니다. 하지만 이미 도시적 문명에 길들여지고 그에 안주하고 있는 다른 동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쪽이 사태를 주도하기 마련입니다. 얼룩말의 아프리카 복귀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면서 상황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그러다가 결국 이들 동물원의 친구들은 파도에 실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해변에 상륙하게 됩니다. 그곳은 한편 초원의 자유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밀림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미 본래의 야성(野性)은 거의 상실해버리고 도시의 규칙에 따라 살고 있던 이들은 미지(未知)의 숲 속에서 좌충우돌의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밀림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던 B급 맹수를 격퇴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은 마다가스카르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지만, 그래도 그건 잠시 여름밤의 휴식에 불과했고 아무래도 몸에 익숙한 것은 뉴욕의 센트랄 파크였습니다.

마다가스카르가 아무리 황홀하게 아름다워도 이들의 집은 이미 도시의 한 복판이었던 것입니다. 그건 야생의 능력을 잃어버린, 그래서 군중의 인기와 기존의 체제가 주는 안락함에 젖어버린 존재들의 슬픈 자화상일 수 있었습니다. 뉴욕 생활의 정서를 나눌 수 없는 관객에게는 아무래도 호소력이 떨어지고, <쉬렉>에 비해 짜릿한 풍자나 허를 치고 들어오는 웃음이 약한 점으로 해서 만화영화 <마다가스카르>가 전작(前作)들만큼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일상의 틀 속에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든 그것을 벗어나려는 열망을 가진 오늘날의 도시인들의, 모순된 모습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아무런 제약도 없는 광활한 들판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달리고 싶어 하면서 정작 그렇게만 살고 싶은 용기는 없는, 그래서 도시의 기득권이 주는 평안을 잊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무수한 사람들이 원초적인 생명의 숨결을 호흡하기 위해 찾아나서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와 강.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인간 자신이 본래 어디에서 그 삶을 누렸는가를 각성하게 하고 도시문명이 스스로 박탈해버린 아름다움의 원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을 아무런 불평 없이 온 몸으로 껴안고 서 있는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뭇 새들을 하늘로 순식간에 비상하게 하는 들판. 은거중인 수도자가 시냇가에 몸을 쉬고 있는 숲 속. 한 밤의 시간 내내 그 열기를 견뎌내며 태양을 잉태하고 있는 바다. 그리고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유영(遊泳)하는 강. 이 모두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일구어내는 생명의 터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바는, <마다가스카르>가 서구 제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빈틈없이 사육되고 있는 뉴욕 센트랄 파크에 있는 동물들을 포획한 근원에는 제국주의의 약탈이 자행한 어두운 역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꿈꾸었던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로 복귀해도 그 신비한 야생의 숲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동물들의 모습은, 제국의 지배에 익숙해진 '슬픈 열대'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건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보았던 브라질의 밀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이 무더운 계절이 우리에게 슬픈 열대를 닮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본과 도시문명과 그리고 인위적 습관이 몸에 깊이 뿌리내려 원시 자연의 생명력을 망각해버린 '사육된 역사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시원함이 이 여름의 선물 가운데 하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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