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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이 들어도 '성노동자' 될 수 있나"

[인터뷰] 탈성매매 여성들이 보는 '노동자성-노조 인정' 주장

"우리를 '성노동자'로 인정하고, 우리의 생계를 앗아가는 성매매특별법을 폐지하라!"

지난달 29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앞에서 울려퍼진 성매매 집결지(여성가족부와 여성계가 권하는 '집창촌'의 다른 표현) 여성들의 성토 대상은 단연 여성부와 여성단체였다. '인신매매'가 아닌 '자발적 성매매'까지 정부가 나서서 금지하는 것은 빚이 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외면하는 정책이니 이제는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현재 정부의 탈성매매 자활사업에 참여중인 여성들은 이러한 '성노동자 인정' 요구를 어떻게 볼까. 9일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다시함께센터'의 자활사업에 참여해 온 허소희(가명·25), 강미정(가명·23)씨를 만났다.

허소희씨는 2000년부터 집결지에서 일하다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음독자살을 시도해 본의 아니게 집결지 여성들 시위의 원동력이 됐던 인물. 허씨는 그를 인터뷰했던 한 기자의 소개로 다시함께센터를 알게 돼 지난 1월부터 자활을 시작했다. 현재 외국어를 배우며 동시통역사를 꿈꾸고 있다.

강미정씨는 다방에서 일하다 얻은 빚을 빨리 갚을 수 있다는 직업소개소에 꼬임에 빠져 섬으로 팔려가 2년동안 '감금'돼 있었다. 센터의 도움으로 구조된 뒤 2003년 11월부터 자활을 시작한 그는 현재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왜 일찌감치 성매매를 그만두고 자활에 참여할 수 없었느냐는 질문에 허씨는 단호하게 "그 때는 쉼터나 자활사업 같은 게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운을 뗐다.

***"나이 들어도 '성노동자' 계속할 수 있나"**

"거기 있는 친구들은 이런 데서 공부하고 의료지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나도 그랬다. 차라리 공창제를 인정하라는 생각이었다. 지난해 초가을 여의도 집회 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기 있으면 마담이나 업주로부터 매일 '여기 아니면 너 갈 데 없다. 네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얘길 듣는다. 또 가방끈 짧고 빚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집결지에 있으면 밖의 세계를 모른다. 그 안에 슈퍼마켓, 옷가게, 병원 다 있고 해 오던 생활이 있는데, 밖에 나가면 돈 들어갈 일 투성이니 엄두를 못내는 거다. 아가씨들이 밤에만 생활하고 뉴스도 안 보니 무슨 정보가 있겠냐. 여성단체에서 집결지 찾아가도 마담들이 다 막는다.

아가씨들이 노조 만들겠다는 건 '내가 내 몸뚱이 굴려서 먹고 살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건데 뭔가 지금의 생활을 전제로 자구책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앞날은 생각 안하나. 나이 들어도 남자들이 좋아하고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런 말 하는 친구들은 솔직히 자기 발전 안하고 편하게만 살려는 것 같다. 기지촌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들 젊었을 때는 몇몇 종교기관 말고는 도와주는 단체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조 얘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위에 나선 집결지 여성들의 한결같은 주장 가운데 하나는 정부 지원의 부실함과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지원비가 터무니 없이 적고, 직업훈련이라는 것도 취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허씨 또한 "여성들이 자활에 반발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제일 두려운게 '돈'"**

"쉼터에 입소한 친구들을 보면 집안 어렵고 신용불량자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한달에 몇백만원씩 만지다가 직업훈련비 35만원 포함해 50만원으로 용돈까지 해 생활하려면 처음엔 불편하다. '이것 가지고 어떻게 살아'라고 다 그랬다.

그런데 쉼터에서 숙식 다 해결하고 학원 다니면서 내 일에 몰두하고 아껴 살다보니 살아지더라. 경제관념도 생기고 돈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서울에서 인천갈 때 4만원씩 나와도 귀찮아서 택시 타고 10만원을 1000원처럼 썼던 일이 까마득하다. 돈을 많이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서 배웠다.

거기서는 한달에 500만원씩 벌어도 방값 100만원, 화장품 및 치장비 100만원, 계절마다 드는 드레스비, 가게에서 필요한 휴지 및 콘돔 사는 공금, 술값, 핸드폰비 그런 거 제하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120만원 정도다. 업주들은 가불 안하면 그런 애들 데리고 호빠(호스트바)같은 데 가서 돈을 쓰게 하니 빚이 안 생기겠나."

자활을 하며 어떤 때에 뿌듯했는지를 묻자 강미정씨는 "밤을 새서 공부했는데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해 하는 자신을 볼 때"를 꼽았고, 허소희씨는 '폭넓어진 인간관계'를 들었다. "마담이모, 포장마차·약국 아저씨, 손님 등 우리에 대해 어떤 목적이 있는 사람들만 알고 지냈는데, 여기 들어와서 이렇게 조건없이 관심받고 학원 다니면서 '똑똑하다' 인정 받을 때가 참 좋다."

***"환경이 중요해...반발의 큰 이유는 '두려움'"**

강미정씨는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며 "만약 지금도 우리를 그대로 가게에 데려다놓으면 손님 뺏으려고 서로 욕하고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 생활을 오래했을수록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지 모르겠으니 무서운 거다. 내가 섬에 있을 때 거기 마담언니는 8년 있었는데, 나한텐 매일 '섬에서 나가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경찰에서 구조 나왔을 때 업주 편을 들면서 거기 남았다."

허씨는 "좀 더 일찍 이런 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내 길을 찾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직장이든 한 자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다. 솔직히 공부 더 하고 싶어도 4~5년씩 걸리면 포기해야 되어서 마음이 아픈데, 그 언니들은 오죽하겠냐"고 공감을 표했다.

***"나도 그때는 몸과 마음이 아픈 줄 몰랐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는 노동이 어디 있냐. 성노동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했다.

허씨는 "나도 그 때는 내성이 생겨서 몸이 아픈 줄 모르고 정신적으로도 멀쩡한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거기서 일했던 상황이 영화 장면처럼 생각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수치감도 들고. 쉼터에 온 친구들을 보면 생활한 지 최소 2~3개월은 지나야 슬슬 부인과 질병, 디스크, 위 질환 등 아픈 데가 나온다. 거기서는 '자궁염증'을 감기 앓는 것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항생제 독한 것 맞고 그냥 지나가고 그러는데, 그러면 나중에 큰일난다"고 우려했다.

강미정씨는 "쉼터 입소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 떵떵 거리고 잘 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몸 괴롭히면서 어떻게 잘 먹고 잘 사냐"고 되물으며 '성노동자성을 주장하는 사회단체'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에 대해 더 화가 난다. 본인들이 직접 해보고나 그런 소리를 하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자활 사업, 부족한 점 많아"**

그러나 자활사업에도 분명한 한계나 문제점은 있다. 이들은 ▲현재 1년인 쉼터 입소 기간의 연장 ▲쉼터 시설개수의 확장 ▲한달 35만원인 직업훈련비 증액 ▲다양한 직업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을 요구사항으로 꼽았다.

허씨는 "현재 직업훈련의 80%가 영어·일본어 교육, 검정고시 준비, 피부미용, 헤어, 요리, 네일아트, 애견미용에 치중돼 있는데 솔직히 자기가 뭘 잘 할지 모르니 쉼터별로 우르르 몰려서 이 쉼터는 다 피부, 저 쉼터는 다 네일아트 그렇게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적성이 뭔지 알 수 있게 다양한 정보 제공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현재 학원비가 많이 들면 포기하고 마는데, 지원비가 조금만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강미정씨의 경우, 대학 등록금은 현재 쉼터 후원으로 해결하고, 스스로도 사무행정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다. 현재 여성부는 어느 정도 자활 능력이 생긴 여성들이 쉼터를 나오면 막상 거주할 공간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그룹홈(group home)'이라는 주거지 제공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룹홈은 정부 예산으로 주택을 마련하되, 임대료와 생활비는 여성들 4~5명이 공동생활을 하며 마련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둘은 "시위에 나선 여성들을 꼭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성노동해 번 돈으로 '주체'가 된다?"**

"제가 가봤잖아요. 시위하는 그 사람들 눈을 보면 알아요. 진짜 원해서 그러는지 시켜서 그러는지. 사정 뻔히 다 아는데 자꾸 거짓말하고... 저는 한번 그 사람들이 나와봤으면 좋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데리고 나오고 싶고. 저는 그 사람들이 저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라고 생각 안해요. 단지 몰라서 그렇죠"(강미정)

"성노동자 되면 돈을 버는 '주체'가 되는 거라구요? 그럼 뭐 해요? 매일 몸은 남자들한테 눌리는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제가 더욱 열심히 해서 잘된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백날 말해봤자 안 들으니 나와서 잘 살고 있다는 거 직접 보여줘야 믿을 것 아니에요? 다른 삶도 가능하다고."(허소희)

강 씨는 섬에 있을 때 '1366 여성구조전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외워뒀다 조심스럽게 전화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섬이라서 못 가고,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못 간다'는 답이었다. 강씨는 "그러나 지금은 안 그렇다. 법과 제도가 꼭 있어야 한다. 정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내가 첫 자살시도자라 그런지 자꾸 시위에 저를 이용하는데 나 이제 잘 살고 있으니 그만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스 시작>

***성노동자를 인정하라?**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과 함께 여성부가 전국 집창촌의 단계적 폐쇄 정책을 발표하자, 업주들과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생존권'을 외치며 "우리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행 1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이들은 최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앞에서 가진 5000여명 규모의 집회에서 '성(性)노동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나섰다. 성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어 업주들의 조합과 일정 정도의 협약을 체결하고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문제이지, 성매매를 범죄로 만들면 자신들의 생존권이 박탈된다는 주장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는 "성노동자 여성을 성매매 피해여성이라고 규정하면 이들은 구제와 자활정책의 대상이 될 뿐"이라며 "노동이라는 단어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은 저항하고 방어하는 주체가 되며 자치조직이나 노동조합의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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