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협의회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인들이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큰 방향만 확정된 입시안을 '본고사'로 잘못 이해한 채, '전면전, 초동진압'등 군사용어를 남발하며 서울대를 공교육 붕괴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서울대 교수협 "군사정권 이래로 이런 '자율 침해' 없어"**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전 대책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교육 붕괴라는 지금의 현실은 획일적인 교육제도, 변별력 없는 수능, 암기식 교육이라는 누적된 교육정책의 오류로 인한 것"이라며 "정책 당국과 정치권 모두가 나서는 상황은 그 동안의 교육 실패의 책임을 호도하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호완 협의회장은 "군사정권 이래로 이렇게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받아본 적이 없다. 서울대는 입학정원의 60%는 지역균형선발제 등 교육부 요구 방식으로 뽑고 40%만 자율성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대의 과도한 인재 욕심'에 대해서도 "서울대 교수 1천7백명중 자녀가 서울대 다니는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자기 자식이 다니는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가 안 크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며 다소 엉뚱한 논리를 펴기기도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상황에나 신경써야"**
장 회장은 "서울대가 세계 1백위권에도 못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조소하고 실망하면서 이런 현상을 바꾸기 위한 시도에는 왜 힘을 보태주긴 커녕 힘없는 대학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느냐"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인 뒤, 다른 대학과의 '연대'에 대해 "사립대로부터 격려전화를 많이 받지만 당분간 특별한 대응 계획은 없다. 다만 교육부도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유학을 가는데, 가지 않아도 될 만한 대학을 국내에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상황과 실업률에만 신경 쓰고 교육영역은 대학에 맡겨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서울대 입시방안 때문에'강남 학원가가 들썩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번 통합논술에 필요한 능력은 사설학원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중고교 과정에 충실하고 많은 독서를 통해 지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사설학원보다 오히려 출판사들이 기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울대 교수협의회 성명 전문이다.
***서울대 입시안을 두고 벌어진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리의 견해**
최근 서울대학교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학입학 전형 방식에 대하여 정부와 여당이 거친 표현을 동원하며 비판하고 나서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서울대학교가 도입하고자 하는 “통합형 논술고사”가 실질적으로는 “본고사”에 해당하여 사교육을 부추기고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리라는 데에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는 여러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무엇보다 우리 교수들을 놀라게 한 것은 큰 방향만을 확정하고 연구검토 중인 사안을 두고, 마치 본고사가 확정된 것으로 전제하고 “전면전”을 벌이겠다, “초동진압”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 방식이다.
첫째, 우리는 정책을 집행하고 정치담론을 이끄는 정치인들이 최소한의 품격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학교의 입시안을 두고 군사용어를 남발하고 “손을 보아야한다” “조져야 한다”는 식의 폭력적 언설을 쏟아내는 것은 국정을 이끄는 막중한 위치에 걸맞지 않다.
둘째,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는 암기식 교육을 지양하고 공교육 부문에 사고력과 창의력 교육을 진작시키기 위해 연구개발 중인 하나의 방안에 불과하다. 고교 공교육을 망친다든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판단은 전연 근거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은 마땅히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교육 붕괴”라는 극단적 표현이 등장하기에 이른 지금의 교육 현실은 지나간 한 세대에 걸쳐 누적된 교육정책의 오류가 낳은 결과는 아닌가? 또한 교육의 문제를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공교육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은 아닌가? 대학을 서열화 시키고 성적중심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학력주의는 마땅히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학입시가 교육 불평등과 학력사회의 총체적 원인인 것처럼 보는 전도된 인식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서울대학교의 입시가 학력주의와 대학서열화를 부추기고, 공교육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력주의와 교육 불평등은 교육기회의 사회적 배분을 통해 해결해야할 사안이며 서울대학교는 지역균형선발제도를 통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일개 대학교의 입시안을 두고 정책당국과 정치권 모두가 나서는 상황은 그 동안 시행된 여러 교육정책들의 실패와 학교교육 붕괴의 책임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여 온 획일적인 교육제도, 변별력 없는 수학능력시험, 암기식 반복교육과 평가가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닌 문제점들은 남겨둔 채 타당성 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획일된 입시정책만을 고수하려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학문과 교육, 나아가 국가의 장래는 대학의 자율성 보장에 달려있다. 이점은 현재 국제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학생선발의 방식에 정부가 이렇게 간섭하는 사례도 없으려니와,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사상과 학문의 다양성이 발현되고 창의성 있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점은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모든 나라들이 보여주는 바이다. 대학은 국민이 지지하고 국가가 보호․육성하며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사회제도이다. 또한 대학의 전통은 한번 훼손되면 복원하는 데에 장구한 세월이 소요된다. 우리는 일부 편향된 시각과 행동 및 언사에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정부 정책을 주도하는 고위인사의 언행을 보면서 이와 같은 인사가 양산하는 정부정책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으로 존립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서울대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임무임을 직시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인재를 얼마나 육성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경제는 극심히 침체하여 민생이 극도로 피폐해지고 있다. 사상최악의 취업난으로 인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도 취업하지 못하는 실정은 이들을 교육하는 우리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적실하지 못한 시각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대학의 자율성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데에 힘을 쏟기보다는 이러한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를 바로잡는 데에 매진해주기 바란다.
2005년 7월 8일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