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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영원한 신라’의 꿈 : Millennium S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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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라진 ‘영원한 신라’의 꿈 : Millennium Shilla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14>

옛날 금강산 기슭에 한 나무꾼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나무를 해다 팔아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나무꾼은 쫓기는 사슴을 구해 주고 사슴은 그 보답으로 선녀와 혼인하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나무꾼은 사슴이 알려준 대로, 구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는 선녀의 옷을 감추어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를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슴은 나무꾼에게 아이를 네 명 낳기 전에는 선녀 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무꾼은 선녀가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아이 셋을 낳았을 때 날개옷을 돌려줍니다. 그러자 선녀는 아이들을 양팔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하늘로 올라가고 맙니다. 슬픔에 잠긴 나무꾼은 사슴의 도움으로 금강산 연못에서 목욕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선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마(龍馬)를 타고 하강하여 어머니를 만납니다. 선녀는 나무꾼에게 "절대 용마에서 내리지 말라."고 합니다. 나무꾼은 어머니가 끓여주는 호박죽을 먹다가 용마의 잔등에 엎지르자 깜짝 놀란 용마가 펄쩍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용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나무꾼은 죽어 수탉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설화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나무꾼과 선녀'입니다. 이 설화는 여러모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꿈꾸어보았을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마치 여자가 '신데렐라 신드롬'을 가지고 있듯이 남자도 '온달 신드롬'이나 '나무꾼과 선녀 신드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꾼과 선녀'에는 이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하늘의 여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가 알몸으로 물에서 멱을 감음으로써 남성들의 성적(性的) 자극은 말할 것도 없고 성적인 유혹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없던 나무꾼이 이들의 옷을 감춤으로써 그 하늘의 여자를 아내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설화는 문학에서는 오랫동안 연구의 주제였고 끝없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나무꾼과 선녀'에서의 주요 연구 주제는 지상과 하늘나라의 사랑 문제, '금기'를 지키지 못한 나무꾼의 심리적 문제, 여성을 붙잡아 두고 싶은 남성들의 욕망 등등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나무꾼과 선녀'는 뭔가 좀 이상합니다.

첫째, 선녀라면 세상 최고의 여자이고 나무꾼은 세상에서 아주 지위가 낮은 천민(賤民) 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결혼을 해요? 신분이나 지위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 게 아닐까요? 마치 요즘 세계적 재벌의 귀한 딸이 날품팔이와 결혼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둘째, 하늘나라의 선녀라면 상당한 정도의 힘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맥없이 나무꾼의 장난에 놀아납니다. 선녀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저 나무꾼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도대체 이 선녀들의 출신이 하늘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셋째, '나무꾼과 선녀'에서 나타나는 선녀의 이미지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선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선녀가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우리 이웃의 아줌마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르죠. 결혼하기 전에는 모두 선녀였다가 결혼 후에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나 '바가지 꾼'이 되는 것이 여자의 운명인지(백마 탄 왕자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변하는 거랑 같은 이치겠죠).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부리야트족(칭기즈칸의 종족)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의 설화에는 옛날 사냥꾼이 새를 잡으러 갔다가 호수에서 깃옷[羽衣]을 벗고 여자가 되어 헤엄을 치고 있는 백조 세 마리를 보고 깃옷 하나를 감추어 여자와 함께 삽니다.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살던 어느 날 아내는 술을 빚어 남편을 취하게 한 후 깃옷을 얻어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비단 바이칼이나 한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혀 엉뚱하게도 민족 기원과 관련된 신화라는 것입니다. 즉 부리야트의 신화에는 백조가 지상에 딸 하나를 남겨두고 하늘로 가지요? 바로 이 딸로부터 부리야트족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몽골 부리야트족의 신화를 다시 한 번 봅시다.

"호리이도는 노총각으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이칼 호수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는데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호수로 내려와 아름다운 선녀로 변하여 옷을 훌훌 벗더니 목욕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호리이도가 살금살금 다가가 선녀의 옷을 숨겼다. 잠시 뒤 목욕을 마친 선녀는 옷이 없어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호리이도는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그녀를 데리고 자기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선녀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의 미희(美姬)였던 텡거리 고아(天美)가 변해서 된 선녀였다. 호리이도와 선녀 부부는 호리라는 성을 가진 11개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도리야프체프,『부리야트 蒙古民族史』(東京 : 1943) 55~56쪽]

[그림 ①] 부리야트 삶의 터전 바이칼호의 사계(四季)

우리가 앞서 본 알랑고아가 민족 전체의 시조 여신을 의미한다고 하면 부리야트 부족의 전설은 그 하위의 씨족 시조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무꾼과 선녀'는 매우 성스러운 건국신화, 또는 민족 기원 신화였군요. 그런데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선정적(煽情的)으로만 이 신화를 보아왔습니다.

그 원인은 한반도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새끼 중국인' 근성 때문이지요. 이 쥬신의 신화를 오랑캐의 신화로 비하하는 전체 사회적 분위기가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툭하면 발해의 지배층만 고구려인이라고 하지를 않나, 만주 쥬신을 북적(北狄)이라고 하지를 않나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새끼 중국인' 근성에 푹 빠져 공맹(孔孟)의 도(道)를 배우고 익힌다는 선비라는 작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인) 한글을 오랑캐의 글이라고 천시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앞에서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 - 일본 등의 건국신화를 보면 코드의 변형은 있었지만 결국 전체적인 코드는 대동소이하며 이것은 쥬신이라는 하나의 민족의 일체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화의 세계는 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숨어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같은 형태의 집단 무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민족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매우 중요한 코드(code)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이 코드(code : 암호)라는 말은 민족의 코드(ethnic code)를 줄인 말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소(神話素 : mytheme)'와 기호학(Science of Signs)에서 말하는 기호(sign)의 중간적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기호학이란 모든 사회 현상을 기호(sign)로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해 내는 작업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무의미한' 것이란 없습니다. 매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부여하는 기호라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의미의 표상이라는 얘깁니다. 만약 내가 만든 기호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일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거꾸로 말하면 그 기호 속에는 내 존재의 정체성(identity of my existence)을 밝힐 수 있는 의미들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1) 선녀 코드의 비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핵심적인 코드는 무엇보다도 선녀(仙女), 즉 천녀(天女)입니다. 이 천녀(선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낸다면 '나무꾼과 선녀'의 해석도 쉬운 일이겠죠.

민족의 시조신화, 또는 건국신화와 관련하여 천녀가 나오는 신화는 아무래도 고구려와 민족적 기원이 같다고 하는 북위(北魏)의 신화입니다. 그래서 일단 이 신화를 봅시다. <북사(北史)>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무황제[聖武皇帝 : 북위의 시조인 신원황제(神元皇帝)의 아버지]가 사냥을 나가 산 속 호수가에 있는데 하늘에서 천녀(天女)가 내려왔다. 천녀는 천제(天帝)의 명으로 성무황제와 인연을 맺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이에 성무황제는 천녀와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천녀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다음 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한 날이 되자 천녀는 하늘에서 내려와 아들을 맡기면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 아이는 자라서 후일 위(북위)나라 시조 신원황제가 되었는데 이름을 역미(力微 : [리웨이?])라고 하였다(<北史> 卷1 魏本紀 1)"

위의 신화는 북위(北魏 : 386∼534)의 건국신화입니다. 북위는 고구려와 근본이 같은 쥬신 계열의 국가인데 요즘은 완전히 한족(漢族)의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민족사학자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북위를 아예 한족의 정권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북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고 북위 자체도 책임이 있습니다. 마치 조선왕조처럼 북위는 지나치게 중국화(中國化)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북위가 중국의 역사의 일부라고 하면 됩니까? 그러면 결국 조선 왕조도 중국사의 일부가 되겠죠? 정신 차립시다.

[그림 ②] 북위

북위의 신화를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쥬신 신화와는 달리 남녀의 역할이 바뀐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이전까지의 쥬신 신화는 하늘을 상징하는 존재가 남성적이었는데 반하여 북위의 신화는 천녀(天女 : 선녀)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북위의 신화는 전체적으로는 천손사상을 강조하는 쥬신의 큰 흐름은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천녀는 고구려 고주몽의 어머님과 몽골 성모 알랑고아와 사실상 거의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국시조의 어머니, 즉 민족의 시조모(始祖母)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일본 신화의 경우에도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라는 태양의 여신이 건국을 주도합니다.

천녀(선녀)를 시조모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보기엔 여신(女神)이 종족신이 되는 것은 그만큼 가부장제(家父長制)의 성립이 늦었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요.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봅시다.

선사시대에는 여성이 남성보다는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모계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로마 지역에서는 여신 숭배의 전통이 강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최초의 신도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Gaia)이지요. 그러나 제우스가 등장하면서 여신들은 주체성을 상실하면서 남자 신들의 연인이나 배우자, 혹은 딸의 자리로 밀려나게 됩니다. 즉 가부장 사회가 나타나면서 여신들이 힘을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림 ③] 대지의 여신 가이아 이미지(조각)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저서는 메를린 스톤(Merlin Stone)의 『신이 여자였을 때(When God was a Woman)』(NY : A Harvest / HBJ Book, 1976)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위대하고 강력한 태양신은 남성으로, 부드럽고 감정과 사랑의 상징인 달은 여성일 것 같은데 이 책은 그것이 고정관념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메를린 스톤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서 많이 놀랐다는 것이지요.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가나안(Canaan), 아나톨리아(Anatolia), 아라비아(Arabia),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등의 지역에서도 태양신이 여신으로 기록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에스키모인, 일본인, 인도의 카시스인 사이에는 여신인 태양신이 달로 상징된 부하 형제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최초의 인류뿐만 아니라 하늘나라는 물론이고 땅 전체를 낳은 것으로 믿어지는 신들은 바로 여성 창조주들이었다. 이러한 여신들에 대한 기록들은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등에도 남아 있다."
[Merlin Stone 『When God was a Woman』(NY : A Harvest / HBJ Book, 1976). 2~3쪽]

즉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최초의 신들은 대부분 여성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선사시대가 모계(母系)를 중심으로 한 사회였기 때문에 나타난 일일 것입니다. 왜 선사시대는 모계인가라고 물으시겠죠? 인류 초기의 역사에서는 집단혼(集團婚)이나 군혼(群婚)의 상태이므로 어머니는 분명한데 아버지는 불분명하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현재 폴리네시아라든가 일부 남아있는 신석기시대 문화수준에 머물러 있는 종족들의 생활상으로 유추해볼 때 신석기시대인들은 모든 행위가 공동생산ㆍ공동소유ㆍ공동분배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 활동에 있어서도 여성의 역할이 커서 자연히 모계 씨족사회에 바탕을 둔 사회조직체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원시 부족들의 혼인 및 가족제도가 모계(母系)이거든요. 이런 모계사회는 농경이 본격화하는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부계(父系)사회로 넘어갔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림 ④] 남성의 상징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

그렇다면 유화부인(버들꽃아씨)나 알랑고아, 나아가 웅녀(熊女)도 가이아(Gaia)와 같은 존재에서 그 지위를 지속적으로 상실해갔다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조현설 교수(동국대)의 논문[『건국신화의 형성과 재편에 관한 연구』(동국대 박사논문 : 1997) 3장]을 보면 이 점 대단히 명쾌해집니다. 조현설 교수에 따르면, 유화부인이나 웅녀는 원래는 어떤 집단의 시조신격을 가졌으나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건국신화 속으로 재구성되어 들어오면서 시조신격으로서의 지위를 일정 부분 상실하고 아울러 자신의 신화도 제거 당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신화의 원래 모습을 보려면 이렇게 모습이 바뀌기 이전의 신화를 봐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조현설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건국신화는 시조신화가 국가 권력의 이념으로 변형되면서 재구성된 서사(敍事)라는 것, 그리고 이 건국신화는 온 나라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에서 서사시(敍事詩)의 형식으로 음송(吟誦)되고 음송의 결과가 구전(口傳)됨으로써 그 이념과 당위가 신화공동체 속으로 내면화된 서사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건국신화를 구성한 권력은 남성권력이라는 것이 그 인식의 내용이다."
[『건국신화의 형성과 재편에 관한 연구』(동국대 박사논문 : 1997) 3장]

결국 우리가 건국 신화에서 남성지배의 제도화(공식화)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남성 지배의 제도화 이전의 신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작업도 민족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신화학(神話學)에 남겨진 숙제입니다.

신화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 승리자들의 기록입니다. 신화는 모계사회로부터 가부장 사회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내부적 투쟁을 하지만 외부적인 공격으로 인하여 하나의 부족이 다른 부족에 정치경제적ㆍ문화적으로 흡수되면서 그 원래 신화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설화 수준으로 지위가 격하되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런저런 책에 수록되거나 다른 신화를 장식(粧飾)하는 데 사용되게 됩니다. 결국 어떤 신화를 가진 집단이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계속 패배하여 그 역사적 실체가 소멸된다면 그들의 신화조차도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화의 운명이자 그 민족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쥬신의 신화를 발굴하고 그 신화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체(political entity)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중국의 철학과 신화와 소설에 열광하는 사이에 우리의 신화는 자꾸 우리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도 사라져가는 것이지요. 마치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교포 3세나 4세들이 그 피부거죽만 한국인이고 그 내부의 모든 구성물은 한국의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국인이듯이 말입니다. 반도 쥬신으로부터 멀어져 간 대표적인 신화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나무꾼과 선녀'입니다. 오죽하면 쥬신의 신성한 시조신화가 선정적인 섹스 이야기로 전락했겠습니까?

이제 다시'나무꾼과 선녀'로 돌아갑시다. 이 선녀[천녀(天女)]는 혈통은 하늘의 사람이지만 하늘의 신처럼 강한 카리스마와 물리력을 소유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즉 선녀는 출신은 하늘이기는 하나 별로 힘이 없는 사람이죠. 나무꾼 정도가 옷을 숨기고 희롱하는 데도 속수무책입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선녀라는 것은 천손족(天孫族)이기는 해도 그 일부이거나 아니면 주류(主流)가 아니라 방계(傍系) 그룹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즉 북위나 앞으로 볼 몽골·만주의 신화에 나타나는 선녀[천녀(天女)]라는 말이 가진 의미는 ① 원래의 천손사상을 가진 민족 집단의 일부가 토착민들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② (천손족의 국가가 소멸되었을 경우) 원래 문명이 높은 천손족의 유이민(流移民)이 극심한 물리력의 충돌 없이 흘러 들어와 서서히 권력을 장악했거나, ③ 천손족의 방계그룹이 흘러들어와 권력을 장악했을 경우 등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모계사회의 전통이 깊이 남아있을 경우도 있으며, (여성이 귀하므로)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유목사회의 문화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고 가부장 사회의 성립이 늦었을 경우 등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녀(천녀)라는 코드(code)가 가진 의미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위의 선녀 신화도 결국은 북위의 모태가 된 세력 즉 고조선 또는 부여ㆍ고구려의 방계 그룹들이 이동해 와서 이룩한 국가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나무꾼과 선녀 : 영원한 신라의 꿈**

저는 앞에서 '나무꾼과 선녀'가 부리야트의 시조신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꾼과 선녀'가 시조신화로서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구성된 것은 바로 만주 쥬신(만주족)의 신화입니다.

만주 쥬신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의 건국신화를 봅시다. 만주 쥬신의 신화는 다소 길어서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분석하도록 합시다[아래의 전설은 『청실록(淸實錄 : 中華書局 影印本)』태조실록(太祖實錄), 『청사고(淸史稿 : 1927)』, 장기탁(張其卓)․동명(董明)의 『만족삼노인고사집(滿族三老人故事)』과 이마니시하루아끼(今西春秋)『滿和對譯滿洲實錄』(최학근 대역)(서울 : 1975) 1권 박시인 『알타이신화』(청노루 : 1994) 등에 있는 내용을 순서에 맞게 체계적으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옛날 하늘 위에 세 명의 아리따운 압캐 살간[선녀(하늘의 여인 : 天女)], 즉 선녀 세 자매가 살았다는데 은꾸륜(恩固倫), 정꾸륜(正固倫), 뿌꾸륜(佛固倫)이었다. 세 선녀는 하늘 생활이 싫증나 있는데 지상에 궤리만싸엔아린[果勒敏珊延阿林山 : 만주어로 장백산(長白山 : 백두산)을 가리킴)]에 천지(天池)가 있어 그 연못은 물이 맑고 온갖 꽃들이 피어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놀고 싶어 했다. 막내 선녀 뿌꾸륜은 총명하여 흰 구름으로 깃털을 만들고 깃털을 걸친 팔을 날개로 삼아 몸을 흔드니 한 마리 새하얀 백조로 변했다. 두 언니도 그녀를 따라 천지 옆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광경을 사냥꾼 삼형제가 목격하고 백조들을 따라 갔는데 백조는 선녀 세 자매로 변하여 옷을 벗고 천지의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위의 글은 만주 쥬신 신화의 첫 머리입니다. 일본신화와 비교해 볼 때 이해가 쉬워서 좋지요? 그리고 몽골의 부리야트 신화와는 거의 일치하지요?

그런데 이 첫 대목에서 두 가지 중요한 코드(ethnic code)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녀, 즉 천녀(天女)이고 다른 하나는 장백산(長白山 : 백두산)이라는 쥬신의 영산(靈山)입니다. 선녀는 이미 분석했으니 장백산을 봅시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장백산은 쥬신의 제2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산입니다. 위에서 나오는 궤리만싸엔아린(山)이란 만주어인 궤리만(長 : 크거나 길다) 싸엔(白 : 희다)이라는 말에다 아린(山)을 합친 말인데 이것을 과륵민산연아림산(果勒敏珊延阿林山)이라는 한문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장백산은 모든 쥬신의 성산(聖山) 부르항산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동과 만주를 터전으로 하는 쥬신에게 있어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산이지요. 원래 쥬신의 시원(始原)은 알타이지만 긴 세월이 흐른 뒤 장백산을 중심으로 다시 민족 부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시조신화가 시작되는 장소가 쥬신의 영산(靈山)인 장백산(백두산)임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그림 ⑤] 만주쥬신과 반도쥬신의 성산 장백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갑시다. 앞으로 가급적 백두산이라는 말보다는 장백산(長白山), 또는 태백산(太白山)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민족(民族)의 성산(聖山)에 웬 ① '대머리 산', 또는 ② '머리가 허옇게 센 늙은이 산', 또는 ③ '벼슬이 없는 백수건달의 산'이라는 의미인 백두산(白頭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가 없군요.

반도 쥬신의 지식인들은 입으로는 늘 백두산을 성산이라고 하면서도 그 땅이 한반도의 변방에 있음으로 의도적으로 비하(卑下)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이 한반도에는'새끼 중국인 근성'이 왜 이렇게 뿌리가 깊은지 알 길이 없군요. 그러면서도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이겨내겠다는 그 용기가 가상합니다.

장백산은 요동ㆍ만주 쥬신(만주족)이나 반도 쥬신에게나 모두 성산(聖山)입니다. 이것은 금나라나 후금(청)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만주 쥬신들이 공식적으로 장백산에 신성한 이름을 부여한 것은 금나라 때(1172)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사(金史)>에 따르면 "1172년 장백산을'흥왕의 땅(興王之地)'으로 높이고 나라를 흥하게 하는 신령스러운 왕(興國靈應王)이라는 작위를 주고 사당(廟宇)도 세웠다(大定十二年 有司言 長白山在興王之地 禮合尊崇 議封爵 建廟宇 十二月 禮部·太常·學士院奏奉勅旨封興國靈應王 卽其山北地建廟宇(󰡔金史󰡕 「禮志」長白山神條)"라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요(遼)나라 때에도 요나라 황실은 장백산신(長白山神)을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 하여 황실(皇室)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장백산 하나만 보더라도 요(遼)나라, 금나라 그리고 한반도의 쥬신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요나라나 원나라를 동호(東胡) 계열로 보고 만주 쥬신을 숙신(肅愼) 계열로 서로 다르게 보았지요. 그러나 민족적인 고증을 해도 그렇고 신화나 장백산에 대한 신앙을 봐도 별 차이가 없죠?

지금도 장백산에는 이 선녀들이 목욕한 장소로 알려진 곳이 있습니다. 소천지(小天池)가 그 곳이죠. 그림을 보세요.

[그림 ⑥] 장백산 소천지의 모습

어떻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지 않습니까?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선녀들이 물을 뚝뚝 흘리며 사진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노총각들의 마음이 설레겠군요. 다시 만주 쥬신의 신화로 돌아갑시다.

"삼형제가 선녀들의 옷을 감추어버리자 목욕이 끝난 선녀는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냥꾼 큰 형은 자신의 옷을 벗어 언꾸륜의 몸에 걸쳐주었고, 둘째는 정꾸륜의 몸에 걸쳐주었으며, 막내는 뿌꾸륜의 몸에 걸쳐주었다. 그래서 세 형제는 세 자매를 데리고 각자 자신의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다. 세 자매는 인간 생활이 즐거워 아예 눌러 앉아 살게 되었고 그 사이 2년이 흘렀다. 그러자 선녀 세 자매는 하늘의 벌이 두려워 남편이 숨겨놓은 옷을 찾아 각자 어린 핏덩이(세 아이)를 놓아둔 채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이 세 아이들은 자라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목단강(牡丹江)과 만나는 곳까지 가서 정착했고 후손들이 번성하여 모두 자신의 성(姓)이 있어 세 가지 성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지방을 '삼성[三姓 :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이란현(依蘭縣)]'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와 거의 같은 내용인데 이 세 아이가 헤이룽강(黑龍江 : 아무르강) 쪽으로 이동해 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헤이룽강이 주요 근거지였다는 말인데요. 즉 하늘의 피를 이어받은 어린 아이가 북으로 이동하여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이죠. 그러나 좀 깊이 생각해보면 망국의 백성들이 다시 뿔뿔이 흩어져 부족 상태로 돌아간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조선이 망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동했지요?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나 발해(渤海) 등이 망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겠죠. 계속 보시죠.

"한편 하늘로 간 세 선녀는 땅에 두고 온 아기와 인간세상의 생활이 그리워 신장(神將)의 수비가 삼엄하지 않을 때를 틈타 구름으로 깃털을 만들어 세 마리 백조가 되어 궤리만싸엔아린(장백산) 위에 도착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를 찾았으나 모두 보이지 않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송화강(松花江)을 따라가다가 삼성(三姓)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후손(後孫)임을 알았다. 그런데 삼성의 후손들이 천성이 싸우는 걸 좋아해 칼부림이 나고 원한은 갈수록 깊어져 있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중 선녀들은 목욕을 했는데 막내 선녀는 까치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와 천지의 상공 위로 날아와서는 입안에 물고 있던 것을 그녀의 옷에 뱉는 것을 보고 올라왔다. 옷소매 위에 잘 익은 붉은 열매가 놓여 있어 입에 물고 있다가 그만 삼켜버렸다. 그러자 막내는 몸이 무거워져 날 수가 없었고 나머지 선녀들은 먼저 하늘로 가버렸다. 막내 선녀는 목마르면 천지의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짐승을 잡아먹고 열매를 따먹었으며, 추우면 불을 피우고 하여 12개월이 지나 눈썹이 짙고 눈이 큰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낳자마자 바로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나자 17~8세의 아이처럼 되었다."

신화만으로 본다면 선녀들이 2차로 강림(降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선녀들의 1차 강림으로 주류 만주 쥬신이 형성되었지만 다시 이 나라는 멸망하고 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민족의 장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2차 강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분열된 민족을 새롭게 통일하는 자의 등장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렇지만 신화에서 같은 선녀들이 내려온다는 것은 1차 강림 때의 천손족이나 2차 강림 때의 천손족이 그 근본(ethnic entity)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흔히 알듯이 똑똑하고 문명화된 천손족이 무지랭이에 가까운 만주족을 규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천손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만주 쥬신들을 같은 천손의 아들이 와서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단군(檀君)과 웅녀(熊女)의 결혼과는 분명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타나는 은(殷)나라 시조인 설(契, 또는 卨)의 탄생신화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기>에는 설의 어머니가 두 사람과 같이 목욕하러 갔다가 현조(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주워 삼켜 임신을 해서 설을 낳았다(<史記>「殷本紀」)고 합니다. 이 은나라는 쥬신의 국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殷曰夷周曰華 :『史記』). 이렇게 본다면 만주 쥬신은 쥬신 신화의 원형을 매우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은(殷)나라는 수도인 은허(殷墟)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은허의 위치가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허는 현재의 뤄양(洛陽)에 가까운 곳으로 중국 중부지역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쥬신은 은나라 때인 대략 기원전(B. C.) 10세기 이전에 뤄양[낙양(洛陽)] 부근에서 터전을 잡았다는 말이 되지요. 그런데 이 신화의 원형을 가진 만주 쥬신들은 이미 헤이룽강(아무르강)과 장백산으로 광범위 퍼져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쥬신이 대체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 있죠. 이것은 제가 이전에 분석해드린 쥬신의 이동 경로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위의 글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민족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관된 정치조직이나 통치 질서가 없이 부족 연합처럼 살아가는 만주 쥬신들은 부족 간에 많은 분쟁들이 발생하고 그것이 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이들은 서로들 간에 이해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족(漢族)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항상 놀아날 수밖에 없지요. 제가 보기엔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나 만주와 반도의 갈등을 중국이 부추기는 경우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이내 아시게 될 테니까요. 계속 보시죠.

"그래서 막내 선녀는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네 성은 아이신자오뤄(愛新覺羅 : 만주어로 금)로 하렴.' 선녀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금(金)인 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또 눈앞에 펼쳐진 뿌꾸리(布庫里)산을 보며 말했다. '네 이름은 뿌꾸리 융순(布庫里雍順)이라고 하자.'[여기서 융순은 용손(龍孫), 즉 용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온종일 싸우고 있는 삼성(三姓)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들에게 '하늘이 너를 낳은 것은 네가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을 중지시켜 백성들을 통솔해 평화롭게 살게 만드는 거야. 알겠니?'라고 하였다. 선녀 엄마는 아들에게 송화강을 가리키며 '이 강을 따라 내려가거라!'라고 하더니 그녀는 한 마리 백조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아이신자오뤄라는 성, 즉 '김씨(金氏)' 성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이 김씨라는 성은 박씨(朴氏), 고씨(高氏), 해씨(解氏) 등과 더불어 쥬신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성씨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아이신자오뤄는 금(金)나라나 후금(後金), 즉 청나라의 황제의 성(姓)인 '아이신자오뤄(愛新覺羅)'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신라(新羅)를 사랑하고(愛) 잊지 말라(覺)'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원래 우리가 보아온 '아이신', 즉 금(金)을 뜻하는 알타이어이지만 그 말을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자'라는 한자음을 빌려서 표현 한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의 음과 뜻을 합해서 해석해 보면'경주 김(金)씨'라는 의미이죠.

금나라의 시조에 대한 기록은 금나라의 실록인 『금사(金史)』에서는 "금나라 시조는 그 이름이 함보이다. 처음 고려에서 나왔다(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 : 『金史』本紀第一「世紀」)"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이 남송(南宋) 때 저술된 북방사(北方史)인 서몽신(徐夢莘)의『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여진의 시조 건푸는 신라로부터 달아 나와 아촉호에 이르렀다"] 에도 있고 남송 때 금나라 견문록인 홍호(洪皓)의『송막기문(松漠紀聞)』에는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인데 완안씨라고 불렀다. 완안이란 중국어로 왕이라는 뜻(女眞酋長乃新羅人號完顔氏 完顔猶漢言王也)"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측의 자료인 『고려사(高麗史)』에서도 같은 내용을 전합니다.

1778년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황명(皇命)으로 펴낸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는 "금나라의 시조 합부[哈富 : 또는 힘보(函普)]께서는 원래 고려에서 오셨다. 『통고(通考)』와 『대금국지(大金國志)』를 살펴보건대 모두 이르기를 시조께서는 본래 신라로부터 왔고 성은 완안씨라고 한다. 고찰하건대 신라와 고려의 옛 땅이 서로 섞여 있어 요(遼)와 금의 역사를 보면 이 두 나라가 종종 분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 初從高麗來[按通考及大金國志 皆云本自新羅來姓完顔氏考新羅與高麗舊地相錯遼金史中往 往二國呼稱不爲分別 : 『欽定滿洲源流考』卷7, 部族 7 完顔)"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금(金)일까요? 물론 쥬신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금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죠. 일단 당사자이신 금나라 태조(아골타)의 말씀을 직접 들어봅시다.

"(태조께서 말하시기를) 요(遼)나라는 쇠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쇠가 단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쇠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삭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세상에 오직 애신(금 : 金)은 변하지도 않고 빛도 밝습니다. 우리는 밝은 빛[白]을 숭상하는 겨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이름을 아이신[金]이라고 합니다(遼 以賓鐵爲號 取其堅也 賓鐵雖堅 終亦變壤 惟金不變不壤 金之色白 完顔部色尙白 於是國號大金 : 『金史』2卷 太祖紀)."

즉 금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국가(만주의 '영원한 신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로시터(Rossiter)나 포콕(Pocock)의 지적처럼 미국인들이 '영원한 영국(England)'을 건설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듯이 말입니다.

금ㆍ후금의 황실이 신라를 유난히 강조하면서 신라왕의 성을 족성(族姓)으로 삼은 데에는 천년왕국 신라의 부활을 꿈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록에는 때로는 고려, 때로는 신라로 나타나있는데 그것은 신라는 이미 망해 없어졌고 고려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혼동일 뿐입니다. 따라서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의 망국민(亡國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문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가 세워지면 대체로 적응하면서 살아갑니다. 특히 같은 민족이 건국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요. 신라에서 고려로 바뀐들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함보라는 분은 굳이 고려를 떠나고 그 후손들은 나라 이름을 또 금(경주 김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분이 신라의 왕성(王姓)과 그 원형을 지켜야만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가진 듯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이 분이 신라의 왕족이었거나 아니면 신라의 귀족계층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의 일대기에 나타난 것으로 봐서 상당한 학식의 소유자인 듯한데 당시의 상황에서 본다면 귀족 이상의 계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만약 귀족이라면 왜 고려를 떠나야 했겠는가 하는 문제도 남아있습니다. 신라의 귀족들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고려의 호족화(豪族化)되는 과정에서도 굳이 고려를 떠나야할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분의 형님은 중이 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김함보의 신분이 높고 고려에는 적응하여 살아가기 힘든 상태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요.

비슷한 시대의 기록인 홍호(洪皓)의『송막기문(松漠紀聞)』에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인데 완안씨라고 불렀다. 완안이란 중국어로 왕이라는 뜻(女眞酋長乃新羅人號完顔氏 完顔猶漢言王也)"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김함보가 신라 왕족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만주 쥬신은 반도 쥬신과도 강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금나라의 태조가 고려에 보낸 국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있습니다.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皇帝)는 아우인 고려 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 과거 우리의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여 공손히 하였다(『고려사(高麗史)』)."

여기서 말하는 여진(女眞)이 바로 쥬신에 가까운 발음이 나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만주 쥬신은 '영원한 신라의 꿈(Millennium Shilla)'을 꾸고 있는 것이지요. 즉 처음에 천년의 제국 신라가 망할 때 정처 없이 떠도는 유민들은 영원한 신라를 꿈꾸었겠지요. 마치 스사노오가 '영원한 가야(Millennium Kaya)'의 꿈을 꾸었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만주 쥬신들은 유달리 자기들은 신라와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거부하고 중국만을 짝사랑하는 반도 쥬신이 문제지요. 일단 계속 신화를 봅시다.

"아이신자오뤄ㆍ뿌꾸리융순(愛新覺羅ㆍ布庫里雍順)은 99일의 표류를 거쳐 삼성 지방에 도착했다. 뿌꾸리융순은 마을사람들에게 '나는 선녀가 낳은 천동(天童)인데 당신들을 다스리러 왔소' 하고 자기를 가장 먼저 발견한 물 긷던 처녀와 결혼하였다. 몇 명의 목곤달(穆昆達 : 만주어로 족장)의 주도로 그날로 혼례를 치르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예를 올리고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이때 이후로 다시는 싸우지 않았다. 뿌꾸리융순은 삼성 지방에 정착하여 살면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씨족끼리 분쟁이 발생하면 그를 통해 화해하여 모두들 화목하고 즐겁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추대하여 부락의 우두머리로 추천하였다. 뿌꾸리융순은 삼성지방의 사람들을 인솔하여 어뚜리성(鄂多哩城)을 건설했다."

바로 이 아이신자오뤄ㆍ뿌꾸리융순(愛新覺羅ㆍ布庫里雍順)이란 분은 만주족의 조상이 되는 분입니다. 먼 훗날 청나라를 건설한 태조 아이신자오뤄누루하치는 이 분의 직계 후손이라고 합니다. 즉 『청조실록』에는 뿌구리융순이 "너희는 내게 복종하라. 나는 천녀의 아들이고 성은 아이씬자오뤄, 이름은 뿌꾸리융순이다. 하늘이 나를 낳게 한 것은 그대들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부족들의 난을 평정하고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만주라 했고 누루하치는 바로 그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지요[『청실록(淸實錄 : 中華書局 影印本)』태조실록(太祖實錄)].

이 내용은 『청사고(淸史稿)』의 내용(姓愛新覺羅氏,諱努爾哈齊.其先蓋金遺部.始祖布庫里雍順母曰佛庫倫相傳感朱果而孕.稍長,定三姓之亂,衆奉爲貝勒,居長白山東俄漠惠之野俄染里城,號其部族曰滿洲.滿洲自此始)과도 대동소이합니다. 즉 이들 기록들이 청 태조의 선조들은 모두 금나라가 남긴 부족이라는 것이지요. 만주 쥬신들에게 있어서 장백산(백두산)은 야루(鴨綠 : 압록강), 훈퉁(混同), 아이후(愛滹) 등 세 무렌(江 : 강)의 근원이며 만주 구룬(國 : 나라)의 선조는 장백산(백두산) 동쪽 보구리의 볼후리 호수가에서 나셨다고 합니다. 뿌구런 이라는 이름의 압캐 살간(하늘의 여인 : 天女)의 자손들이죠.

만주 쥬신의 시조는 특이하게도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다기보다는 부족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고 화합을 도모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화는 단지 신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건국 시조이신 김함보의 일대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시죠.

"금나라 시조는 휘(황제, 또는 왕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가 함보(函普)이고 원래는 고려로부터 왔는데 나이가 이미 60세였다. 시조(함보)의 형님인 아고내(阿古迺)는 불교에 심취하여 고려에 남으려고 하면서 '먼 훗날 자손들이 다시 만나는 자리가 있을 것이니 나는 가기가 어렵겠네.'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조는 아우인 보활리(保活里)와 함께 갔다. 시조는 혼돈강[混同江 : 지금의 헤이룽강(黑龍江)]의 완안부(完顔府)로 들어가 복간수(僕幹水)에 자리를 잡으시고 보활리는 야라에서 살았다. 그 후 호십문(쥬신의 10여 부족)이 갈소관으로써 태조(아골타)에게 귀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 선조 세 분이 서로 이별하여 떠났는데 자신은 대략 아고내의 후손이고 석토문(부족명)과 적고내(부족명)는 보활리의 후손'이라고 하였다.(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余矣。兄阿古乃好佛,留高麗不肯從曰 后世子孫必有能相聚者,吾不能去也 獨與弟保活里俱 始祖居完顔部僕幹水之涯,保活里居耶懶 其后胡十門以曷蘇館太祖,自言其祖兄弟三人相別而去,盖自謂阿古乃之后 石土門迪古乃 保活里之裔也 : 『金史』本紀第一 世紀)."

여기서 보면 금나라의 시조이신 김함보의 형제가 세 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신화에서는 하늘로 올라갔던 세 선녀들이 다시 내려왔다가 두 언니는 그대로 올라가고 막내 선녀만 아이신자오뤄 뿌꾸리융순을 낳는 장면만 나오지요. 이것은 김함보의 형제들 가운데 김함보만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삼성(三姓)의 땅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화라는 것이 현실을 자로 잰 듯이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신화에서는 시간의 압축이나 변형도 자주 일어나죠.

여기서 다시 "아이신자오뤄ㆍ뿌꾸리융순(愛新覺羅ㆍ布庫里雍順)은 자기를 가장 먼저 발견한 물 긷던 처녀와 결혼하였다."는 대목을 봅시다. 이것은 금나라의 시조 김함보가 혼돈강[混同江 : 지금의 黑龍江]의 완안부(完顔府)로 들어가 그 지역의 현녀와 결혼한 것과 부합됩니다. 물론 신화에서 결혼한 사람은 물 긷는 처녀인데 역사서에 나타난 실제의 사실은 환갑(60세)이 넘은 노처녀와 결혼합니다. 『금사』에는 "부족에 한 현숙한 여인이 있어 나이가 60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마땅히 서로 배필을 삼아서 같은 부족이 되겠다고 하니 시조가 좋다고 허락하였다(部有賢女 年六十而未嫁 嘗以相配 仍爲同部 始祖曰諾 : 『金史』本紀第一 世紀)."라고 되어있죠.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한 면이 있긴 합니다.

과거에 민족적 영웅의 그릇을 가진 사람은 어린 처녀와 결혼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미 60이 넘은 노파와 결혼을 하다니요? 그래서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말하는 현녀(賢女)라는 것은 샤먼이자 강력한 정치세력을 가진 분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김함보는 이 세력을 발판으로 하여 흩어진 부족을 통합해내는 힘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녀와의 결혼 후 김함보는 드디어 여러 부족들의 염원대로 부족들의 현안 문제인 부족간의 갈등을 수습하기 시작합니다. 삼성의 사람들이 비록 용감하지만 화목하지 못하여 그 전쟁이 매우 처절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은 전투력이 강하여 어느 한 부족이 압도적으로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피해가 날로 커갈 수밖에요. 이 과정에서 부족 통합의 분위기가 일어나있게 되고 이 시기에 김함보가 송화강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신화에서는 같은 형제들 간의 싸움을 안타까이 여긴 만주 쥬신의 성모(聖母) 뿌구런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자 천손인 아이신자오뤄ㆍ뿌꾸리융순을 보내어 이 문제를 수습하려 합니다.

실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금사(金史)』에서는 이 과정이 매우 상세히 묘사되어있습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상세히 보도록 하죠.

"시조가 완안부에 이르러 거처한 지 오래되었는데 그 부족 사람이 서로 죽였고 이로 말미암아 두 부족이 서로 미워하여 싸움이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부족에 한 현숙한 여인이 있어 나이가 60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마땅히 서로 배필을 삼아서 같은 부족이 되겠다고 하니 시조가 좋다고 허락하였다. 이에 스스로 가서 깨우쳐 말하기를 '한 사람을 죽여서 싸움이 풀리지 않는다면 손상이 더욱 클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 한 사람을 죽이는데 그치고 부내에 있는 재물로서 보상을 하면 싸움도 없이 득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설득하니 피해자 집에서도 이에 따랐다. 그래서 '무릇 사람을 살상한 자는 그 집에서 사람 1명, 말과 소 각 10마리씩 황금 6량을 징발하여 피해자 집에다 보상하면 이내 양측은 화해해야 하고 사사로이 싸워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여진의 풍속에서 살인하면 말 30마리로 보상하는 것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始祖至完顔部,居久之,其部人嘗殺它族之人,由是兩族交惡,哄斗不能解。完顔部人謂始祖曰 若能爲部人解此怨,使兩族不相殺,部有賢女,年六十而未嫁,嘗以相配,仍爲同部。始祖曰諾 乃自往諭之曰 殺一人而斗不解,損傷益多。曷若止誅首亂者一人,部內以物納償汝,可以无斗 而且獲利焉怨家從之。乃爲約曰 凡有殺傷人者,徵其家人口一、馬十偶、牸牛十、黃金六兩,與所殺傷之家,卽兩解,不得私鬪。曰謹如約。女直之俗,殺人償馬牛三十,自此始 : 『金史』本紀第一 世紀)."

그래서 금나라 시조가 살인 사건으로 깊어진 부족간의 갈등을 물질적인 보상을 통하여 해결함으로써 비로소 부족 통합의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 금나라의 시조이신 김함보는 쥬신의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평화(平和)의 중재자로서 부족 통합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위대하고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남성신(男性神)보다는 부드러운 여성신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 과정은 신화에서 말하는 "뿌꾸리융순은 삼성 지방에 정착하여 살면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씨족끼리 분쟁이 발생하면 그를 통해 화해하여 모두들 화목하고 즐겁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추대하여 부락의 우두머리로 추천하였다."라는 말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들에서 만주 쥬신은 매우 신라적(新羅的)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대적으로 익숙한 편인 데다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신라의 신화나 역사를 보거나 각기 다른 성의 왕들이 평화롭게 정권교체를 한다든가 가야 세력과 쉽게 융합하는 등의 과정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합니다. 일단 하나의 민족으로 융합되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차별이 거의 없어집니다(이것은 유목민의 특성이죠).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金庾信) 장군도 그 근본은 가야세력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유신 장군은 백제 정벌군ㆍ고구려 정벌군 총사령관에 임명되기도 합니다(참고로 청나라 황제들은 몽골 왕공의 딸을 후비로 삼고 공주와 왕자들은 몽골 왕공의 자제들과 결혼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유신 장군의 조카(김법민 : 문무왕 - 김유신 장군의 누이인 문명왕후의 소생)가 바로 신라왕이 되지요. 그리고 김유신 장군은 흥덕왕 때 흥무대왕으로 추존됩니다. 이와 같이 외부에서 온 사람을 이만큼 출세시켜주는 왕조가 달리 있겠습니까? 이런 점들은 한마디로 유목민적인 특성입니다. 물론 같은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의식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 같은 현상이 농경민인 중국에서는 결코 나타나기 힘듭니다. 오히려 오랑캐로 찍혀서 경계 대상 1호가 될 뿐만 아니라 고선지 장군과 같이 여차하면 모함하여 죽여 버릴 것입니다. 뒤에 몽골 쥬신이나 만주 쥬신, 환국(桓國)과 한국(韓國 : 汗國) 등을 분석할 때 좀 더 상세히 말씀드리죠.

그러므로 북위 - 금나라 - 후금(청) 의 신화에 이르는 과정이 쥬신이라는 민족적 특성을 가지면서 확장ㆍ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나라와 후금의 황제들은 영원한 금의 제국, 즉'영원한 신라(Millennium Shilla)'를 꿈꾸고 있었고 그것이 금나라·청나라의 건국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금나라는 신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중시하는 유목민의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사실 당시 삼국(고구려ㆍ백제ㆍ신라) 가운데 여왕(女王)이 나라를 다스린 곳은 신라뿐이죠].

***(3) 신라인 김함보에서 청태조(아이신자오뤄누루하치)까지**

만주 쥬신의 시조이신 김함보는 금나라 태조(阿骨打)의 조상으로 『대금국지(大金國志)』,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는 신라(新羅)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주 김씨이자 안동(安東) 김씨의 시조인 경순왕(敬順王 : 김부)의 후예라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후손들이 일부는 금강산으로(마의태자 이야기), 또는 강원도 철원 땅으로, 일부는 장백산(백두산)으로 들어가서 후일을 기약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시기적으로 봐서는 신라 부흥운동이 실패하자 잔여세력들이 장백산으로 만주로 이동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요.

결국 금나라와 후금(청)의 건국신화는 신라에서 장백산을 거쳐 만주로 들어간 김함보라는 신라의 왕손(?), 또는 신라 귀족(?)의 일대기와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세 선녀는 결국 김함보의 형제분들을 말하고 아이신자오뤄뿌꾸리융순이 만난 물 긷는 처녀는 바로 환갑(60)이 넘은 현녀(賢女)였던 것이지요.

신화에 따르면 이 처녀는 김함보의 배(작은 뗏목)가 좌초된 것을 가장 먼저 보고 마을로 달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던 분입니다. 그리고 김함보는 무력(武力)이나 카리스마보다는 깊은 학식으로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화합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 삼성 지역의 만주 쥬신들은 김함보를 부족장으로 모시게 됩니다(衆奉爲貝勒 : 『淸史稿』本紀一). 이러한 화합의 힘이 이 분을 만주 쥬신의 시조로 만든 것이지요.

즉 이 김함보라는 분은 12세기 초 금나라를 건국(1115)하신 금나라 태조[아골타(阿骨打)]의 직계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금나라 태조는 완안부(完顔部)를 중심으로 만주 쥬신을 규합하여 금(金)나라를 세웠고 세력을 확장하여 한족(漢族)과 가까웠던 요(遼)나라와 북송(北宋)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남송(南宋)과 대치합니다. 13세기 초에 원나라가 금을 멸망시키지만 그들의 풍속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15세기 초에는 명나라가 만주쥬신의 분포지역에 384개의 위소(衛所)를 설립합니다. 금나라가 멸망(1234)한 이후 청나라가 건국(1616)될 때까지 상당한 시련이 이들 만주 쥬신을 엄습합니다. 명나라 때 만주 쥬신은 크게 건주(建州 - 건주여진), 해서(海西 - 해서여진), 동해(東海 - 동해여진) 등의 3부로 나누어졌고 이 가운데서 백두산 주변을 근거지로 삼은 건주여진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합니다. 그러나 16세기 중엽까지도 이들 사이에는 참혹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만주 쥬신들 사이에는 또 다시 민족 통합의 염원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신화는 어떻게 묘사할까요? 계속해서 만주 쥬신의 신화를 보시죠. 이마니시 하루아끼(今西春秋)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뿌꾸리융순은 장백산 동쪽 밝은 벌판의 어뚜리(鄂多理)라는 성을 서울로 삼았다. 그러나 여러 대가 지나자 한[王]들이 백성을 학대하므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족을 모두 죽였다. 그런데 오직 반차라는 한 아이만이 까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이 때 이후 만주 구룬의 한[王]은 까치를 수호신이라고 보호하여 죽이지 않는다. 그 후 반차의 후손인 아이신자오뤄누루하치가 한[王]이 되어 구룬(나라)의 이름을 아이신(금)이라고 했다[今西春秋『滿和對譯滿洲實錄』(최학근 대역)(서울 : 1975) 1권]." 여기서 말하는 금나라는 흔히 뒤에 나왔다고 해서 후금(後金)이라고 합니다.

즉 후금을 건국(1616)하신 청나라 태조(아이신자오뤄누루하치)는 금나라의 멸망(1234) 이후 4백여 년간의 민족 분열과 한족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이겨내고 마침내 통일 대업을 완수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쥬신 신화의 일반적인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살펴봅시다.

청나라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쥬신 신화의 일반적인 특성은 ① 땅의 지배자와 하늘과의 연계, 즉 천손사상(天孫思想)과 ② 새 토템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손사상은 다만 남성과 여성이 역할이 바뀌고 있는데 이것은 앞서 분석해 드린 천녀(선녀) 신화로 충분히 이해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새 토템 사상으로 나타나는 까치는 만주와 한국 어느 곳에서도 길조(吉鳥)입니다.

청나라(만주 쥬신 : 만주족)의 건국신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동안 동호계열의 몽골과 숙신계열인 만주족은 결코 같을 수가 없는 민족으로 배우고 가르쳐왔는데 신화를 보면 북위(동호계)의 신화와 몽골의 신화가 융합하여 만주 쥬신의 신화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달리 만주쥬신의 신화가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 만큼 통합하기 힘든 것이 유목민족이기 때문이겠지요. 유목민들은 (삶 자체가 훈련이라고 하듯이) 농경민과는 달리 바로 무장군인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물리력으로 복종시킨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유목민들의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하여 한족(漢族)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민족으로 보이게 됩니다. 나라가 되었다가 이내 해체되기도 하고 또 서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되풀이하기도 하니 이해가 될 리 없겠죠.

유목민들이 통합을 강조하는 측면은 만주 쥬신의 창세신화(創世神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만주 쥬신의 창세기를 한번 요약해봅시다.

"태초에 물거품 속에서 아부카허허가 탄생한 후, 그의 몸으로부터 땅의 신 바나무허허와 태양의 신 와러두허허가 생겨났다. 두 번에 걸쳐 인간 세상에 대홍수가 일어나고 이어 남신인 아부카언두리가 등장하는데 그는 사람을 만들어 지상(地上)에 가서 살도록 보내었다. 날씨가 매우 추웠기에 인간들이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브카언두리는 그 도제들에게 4개의 태양을 만들게 했으나 그들이 9개를 만들어 대지가 메마르게 되었다. 이 때 와지부(窩集部)의 산인베이지가 있었다. 그는 장백산 주인(長白山主)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아브카언두리가 하늘제사 때에 아름다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지상의 인간과 관계하여 난 아들이다. 산인베이지는 9개의 태양에게 1개만 남고 가라고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이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고 장백산 부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산인베이지는 부왕이 일러 준대로 물의 신(河神)과 땅의 신의 도움을 얻어 드디어 여러 태양을 없앤다."
[傅英仁 搜集整理, 󰡔滿族神話故事󰡕(北方文藝出版社 : 1985) 95~99족]

이 신화는 천신(天神) 예(羿)의 신화와 동이족의 조상으로 알려지고 있는 유궁국(有窮國) 군주 활의 명인 후예(后羿)의 신화와 대부분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태양을 활로 떨어뜨린다는 내용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주 쥬신의 창세 신화에 나타난 여러 개의 태양으로 인하여 서로 다친다는 말은 하나의 민족이 여러 개의 부족으로 난립하여 서로 싸우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산인베이지가 이들을 통일한다는 내용이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늘과 닿아있는 장백산신(長白山神)의 도움, 물의 신, 즉 하백(河伯)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만주쥬신은 하늘 - 장백산 - 하백의 도움 - 여러 부족이 통합과 화합 등의 형태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늘과 장백산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바로 선녀(천녀)입니다. 그 선녀(천녀)의 후손이 바로 아이신자오뤄, 즉 경주 김씨 집안입니다. 이 경주 김씨는 후에 금태조(아골타) - 후금태조(누루하치)로 이어져서 중국을 정벌하여 쥬신 천하를 열게 됩니다.

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은 유난히도 정신적으로 신라와 가까웠습니다. 마치 금나라 시조이신 김함보가 꿈꾸던 '신라(新羅) 영생(永生)의 꿈[Millennium Shilla]'을 끝없이 현실에서 이루려했다는 하나의 뚜렷한 증거로 볼 수 있죠(자손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성장하잖아요). 마치 일본의 스사노오가 '영원한 가야(伽倻)[Millennium Kaya]'를 꿈꾸고 아마테라스가 '영원한 부여(夫餘)의 꿈[Millennium Puyou]'을 꾸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만주 지역에서는 한족과 만주족의 구분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거의 호적을 봐야만 '만인(滿人)'이라는 표시가 있을 뿐이지요. 만주 말과 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만주의 말이나 글은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배울 수도 없지요. 그러나 중국 정부는 외부적으로는 만주어를 보존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만주어를 가르치는 곳은 단 한 곳뿐입니다. 그것도 만주 시골 벽촌에 낡고 초라한 초등학교에서 너덜너덜한 시험지 교재로 열 명 남짓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수준입니다[2004 KBS 특별기획『위대한 여정 한국어』(2004)]. 그러면서 중국정부는 만주 문화를 보존한다고 떠들어 댑니다. 쥬신의 말과 글, 그리고 문화 전체를 말살하려는 이 같은 만행(蠻行)은 세상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장차 이 일을 어찌 해야 합니까? 만주 쥬신이 꿈꾸어 온 찬란한 '천년 신라'의 꿈도 사라져갑니다. 수천 년을 지켜온 전통이 어찌하여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져갑니까? 현대의 황제(黃帝) 모택동과 그가 이끈 현대 중국 공산당 정부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다는 작자들은 침묵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 같은 역사의 문외한(門外漢)들이 전공 공부는 안 하고 역사 문제에 대해 핏대를 높이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잠시, 거란(契丹)의 시조 신화도 한번 간단히 보고 넘어갑시다.

"옛날에 한 신인(神人)이 백마(白馬)를 타고 마우산(馬盂山)에서 토하(土河)를 따라 동으로 내려가고 아가씨 하나는 청우차(靑牛車)를 타고 황하를 따라 내려왔다. 목엽산(木葉山) 아래, 두 강이 만나는 곳에서 신인과 아가씨는 만나서 부부가 되었고 이들은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후 이 자손들이 번성하여 거란의 8부가 되었다. 거란 사람들이 전쟁이나 봄과 가을의 제사 때 백마와 청우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간직하기 위함이다(『遼史』37卷「地理志」)"

이상이 거란의 시조신화인데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결혼 이야기 같지만 백마(白馬)와 청우(靑牛)라는 코드(code)가 숨어있습니다. 알타이와 우리 민족의 시원에 관한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박시인 선생(1921~1990)에 따르면, 백마와 청우는 오랜 옛날부터 알타이 어족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마는 신남(神男), 청우차(靑牛車)는 천녀(天女)가 탔다는 것이지요(박시인, 『알타이 신화』344쪽).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거란(契丹)이란 이 분야의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바로 쇠[철(鐵)]를 의미한다고 합니다[愛宕松男,『契丹古代史の硏究』(京都大 : 1959)].

이상의 신화들을 보면 고구려ㆍ몽골 - 북위ㆍ거란 - 금ㆍ후금 등의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분리하기조차도 힘든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들의 신화를 보더라도 숙신(만주) - 예맥(요동 만주) - 동호(몽골)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연계성을 가진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위의 신화와 몽골의 신화가 융합하여 만주 쥬신의 신화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바탕에는 고구려ㆍ부여ㆍ신라는 물론이고 단군신화가 흐르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리국 -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 - 거란 - 일본 등에 이르는 여러 쥬신들의 신화가 결국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으며 신화를 통해서 봐도 이들(몽골쥬신ㆍ만주쥬신ㆍ반도쥬신ㆍ열도쥬신)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화를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민족(쥬신)이라는 범주로 끌어들이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족(漢族)이 중심이 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동아시아 역사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고조선ㆍ부여ㆍ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종족을 범쥬신(Pan-Jüsin)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는 데 무리는 없는 것이지요.

이제 기나긴 쥬신 신화의 분석도 끝이 났습니다. 원래 이 부분은 역사학계나 국문학계 모두에서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사학계는 신화적인 특성에 대한 분석이 불충분하고 국문학계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신화의 참모습과 묘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새로이 분석을 시도하였습니다. 쥬신 신화에 대한 많은 이해가 있으셨기를 기대해봅니다.

다음에는 고구려·백제·일본·몽골·만주 신라 등의 구체적인 사실 분석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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