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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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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가족

김민웅의 세상읽기 <81>

영화 <굿바이 레닌(Goodbye, Lenin)>이 통일된 독일에서 동독 사회주의의 건재와 승리를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현실을 조작해내는 아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그렸다면, 우리 영화 <간 큰 가족>은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환상을 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회한, 그리고 갈망과 적절하게 잘 어우러진 희극적 요소가 통일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분단관련 영화들의 무거운 비장미를 뛰어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냉전의 시대착오적 현실을 풍자한 <간첩 리철진>과는 또 다른, 통일의 인간적 서막을 예상하도록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쉬리>, 또는 <공동경비구역 JSA>나 <이중간첩>,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등의 영화가 분단으로 인한 남과 북의 대치상황, 전쟁, 격돌 등의 비극적 현실을 잡아내고, 권력의 일방적 결정으로 인한 인간적 희생을 부각시켰다면, <간 큰 가족>은 민간차원의 통일 꿈꾸기가 가져오는 영화적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북에 가족을 둔 아버지가 숙환으로 돌아가시게 된다는 의사의 진단, 그 아버지가 수십억대의 재산을 유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유서. 이 모든 사태 앞에서 큰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유산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도록 일종의 가상 통일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삼류 포르노 감독인 동생을 동원해서, 졸지에 엉터리 TV 뉴스와 남북 단일탁구팀, 평양 교예단 공연 등의 온갖 통일된 남과 북의 환영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노력은 한편 우습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현실의 비극성이 대조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은 결국 들통이 나고 맙니다. 빚에 쫓겨 압박을 받던 큰 아들, 제작비 타령을 하던 동생 등은 애초에 유산 받아내기 목적으로 일을 꾸며대지만, 이산가족인 아버지의 진정한 슬픔과 소원에 그 마음의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세월이 더 흐르기 전, 이산의 경계선을 넘고자 하는 이들의 아픔을 담아낸 영화 <간 큰 가족>이 보여주는 소망은 그리하여 어느 특정 가족의 염원이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갑니다.

영화는 우리 사회 안에 투영된 북한의 모습, 그리고 돈으로 좌우되는 통일의식, 여전히 남아 있는 냉전의 실정법적 한계,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의 무관심 등도 함께 포착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과거처럼 우리 사회에 위협적 요소로 각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경제적 부담과 문화적 엇갈림이 보다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낯선 체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질감과 차이를 넘어서서, 본래 아니 애초부터 우리 민족 사이에 존재해왔던 정감 깊은 인간관계로 서로를 보자는 노력은 기존의 체제대결과 체제비교론이 가진 한계를 하나하나 교정해나고 있는 듯 합니다. 분단의 아픔과 이로 인한 힘겨운 개인사의 내적 체험을 문학화 한 소설가 이호철은, 우리 겨레가 이전부터 지니고 있던 인정 많은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오늘의 북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우리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보다 본질적인 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간 큰 가족>도 그런 인간관을 토대로 펼쳐지고 있는 우리시대의 통일 단막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의 결정이나, 이념의 테두리 또는 법의 굴레를 결국 초월하는 인간적 만남과 소통에 그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평양에서 남북통일 대축전이 시작됩니다. 각 정부 차원에서는 여러 가지 고려와 목적이 있겠지만, 결국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가슴을 터놓고 벗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고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감동적 충격을 체험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굳이 간이 크지 않아도, 아니 간이 붓지 않아도 통일의 미래에 대한 순수한 갈망과 꿈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하루하루의 일상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책이 모두 거두어지고, 멈추어 섰던 철마가 다시 달리며 서울과 평양을 자유롭게 오가는 일이 하등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대, 어느 새 당연히 오는 소리가 벌써 저만치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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