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성향이 짙었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12일 "정부는 북한에 무조건적으로 비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용갑 의원은 "비료 지원은 북핵 개발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족 문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에서 분화 양상이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정형근 "비료와 당국간 대화 연계는 옹졸한 선택"**
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 '정책토론장' 코너에 올린 글을 통해 "비료와 당국간 대화를 연결한 것은 옹졸한 선택"이라며 "정부는 움켜쥐고 있는 비료를 즉각 북한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햇볕정책 등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대북 유화정책을 펴왔던 DJ정권 이래 지금까지 대북문제와 관련한 인도적인 지원은 정치ㆍ군사적인 협상과 별개로 구분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고 2002년 2차핵위기 발발로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도 비료와 식량 등 인도적인 지원은 계속해왔다"면서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북한을 상대로 느닷없이 당국자간 회담 재개를 요구하며 비료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건부 대북비료지원 방침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국자간 대화재개의 조건이 '비료'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너무 궁색하다"며 "대화재개를 위한 대북 압박이 필요하더라도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은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동안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지원 요구를 무시하고 북한에 대해 '조건 없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온 현 정권의 입장과도 맞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생뚱맞게 들고 나온 비료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인해 오히려 북한 당국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면서 "이런 식의 무원칙하고 일관성 없는 대응이 남북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했던 예년 수준의 비료와 식량을 즉각 북한에 지원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식량사정과 관련해 '수요량이 6백45만t인데 반해 공급량은 4백80만t으로 약 1백65만t이 부족한 실정'임에도 '핵과 일본인 납치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원도 중단된 상태'라고 국정원 자료는 밝히고 있다"며 "올해 북한의 식량은 2백만t 정도 부족한 형편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던 70~80만t 식량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남한의 비료공급마저 중단되면 사상 최대의 아사자가 발생한 1997년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며 식량지원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정 의원의 이같은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비료 지원 재개' 주장은 이날 김대중 전대통령이 한신대 강연에서 정부의 최근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한 주문과 일치하는 것이다.
정 의원은 그대신 "인도적인 지원을 제외한 대북 지원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차원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면 비료가 아니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에 막대한 재원이 투자되는 남북경협 사업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마땅하다"며 3대 경협사업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ㆍ도로 연결을 그 대상으로 지적했다.
***김용갑 "비료지원, 진성 친북파라도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것"**
반면에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김용갑 의원은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여권에서 북한에 비료를 보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간신문의 기사를 지적하며 "정신나간 짓"이라고 맹성토했다.
김 의원은 "북한이 폐연료봉 8천개를 추출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태평스럽게 북한의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비료까지 갖다 바치자고 하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공조로 위기를 해결하려는 6자회담 참가국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현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정 의원과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김 의원은 "아무리 진성 친북파라고 해도 이 정도 되면 아예 북핵개발을 도와주자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노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아니냐"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인도주의라는 말도 참 그럴싸하지만, 그것이 정작 자기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는 도외시했던 중국 송나라 양공의 아둔함이 되버린다면 참으로 잔혹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초나라 군대에게 참패를 당한 송나라 양공의 고사를 인용하며 여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한나라 지지자들도 '민족가치' 우선시 징후**
대북 인도지원을 둘러싼 정형근 의원과 김용갑 의원간의 뚜렷한 시각차는 최근 한나라당 및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민족문제를 놓고 나타나는 균열상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고 있다.
민족문제에서 요근래 가장 전향적 변화 모습을 보인 것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 대표는 올초 미국방문 기간동안에 미국의 대북 강경대책을 비판하며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북핵위기 해결과, 필요하다면 자신이 대북특사로 갈 용의가 있음을 밝혀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박 대표를 초청했던 미극우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측은 박 대표의 이같은 연설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족문제에 관한 한 주체적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다수 의견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문화일보가 지난 10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TNS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2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7%)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정부의 동의없이 북한을 폭격할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편'보다 '북한편'에 서야 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보수 성향의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미국편(38.6%)보다는 북한편(41.1%)에 서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타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와 관련, 정치분석가들 사이에서는 "보수란 원래 민족가치를 최우선하는 이데올로기"라며 "한나라당 및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종전의 외세의존적 수구에서 탈피, 민족중심적 보수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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