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ㆍ러관계, 21세기 전략적 협력을 위한 조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ㆍ러관계, 21세기 전략적 협력을 위한 조건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12> 푸틴 하의 러시아 5

***1. 한·러관계의 회고: 롤러 코스터의 경험**

2005년 9월이면 한국과 소련/러시아가 수교한 지 15년이 된다. 그 사이에 양국은 정상은 1990년 12월 노태우-고르바초프 로스앤젤레스 회담, 1994년 6월 김영삼-옐친 모스크바 회담, 1999년 김대중-옐친 모스크바 회담, 2004년 9월 노무현-푸틴 모스크바 회담 등 총 8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노태우의 회동은 양국수교로 결실되었고, 이는 상대국의 역할에 대한 상당한 기대와 함께 양국관계는 실제적 결실보다는 과도한 낙관론에 기반한 희망사항의 피력으로 치장되었다. 일종의 양국관계의 "성급한 과열기"였다. 하지만 한ㆍ소 수교 이후 한국이 견지한 대러 관계의 기본 노선은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적절히 조율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한ㆍ소 수교 이후 대러 관계에서 러시아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로만 간주하는 안이한 태도로 인해 한ㆍ러 양국의 독자적 상호 이해관계에 기초한 포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한·러관계에서 자국의 경제난 극복을 위해 한국과의 통상 및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었다. 특히 아ㆍ태지역, 보다 좁게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위상 회복 및 강화를 위해 한국으로부터 대러 경제지원, 시베리아와 극동지방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 등을 기대했지만 한국의 대러 정책에서 주된 위치를 점했던 것은 대북한정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ㆍ안보적 이익이었고 경제적 이익은 항상 부차적인 요소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관계는 당초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계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러시아의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투자환경의 미비로 인해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ㆍ강화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객관적인' 요인, 또 서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충분한 이해를 구축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이 과도할 정도로 컸었고, 또 서로가 양국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지나친 기대감 속에서 무리한 계획을 남발하여 결국 상호 좌절감과 실망감을 부추겼다는 주관적ㆍ심리적 요인이 존재한다.

더구나 러시아의 대외정책의 실패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약화(대표적인 예는 4자회담에서의 관련국들의 러시아에 대한 냉대나 한국의 러시아 부채에 대한 압박적인 변제요구 등이다)와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투자부진 등과 같은 조건은 양국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기대에 못 미치는 역할에 대해 실망하게 만들었고, 양국관계는1994년을 전후하여 "급속한 냉각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옐친-김영삼 회동은 이와 같은 양국관계의 열기감소의 추세를 바로잡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 외교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른 러·북관계의 회복과 러시아의 대한반도 등거리외교정책은 양국관계를 다소 불편하게 만들며 급기야 1997년의 외교관 맞추방 사건으로 상징되는 갈등국면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옐친-김대중 회담은 상대에 대한 현실적 판단을 근거하여 양국관계를 관리하며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모색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방러 이후에도 양국관계는 과거의 과도한 흥분과 급속한 냉각으로 인한 "롤러코스터 효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소강상태의 저조기"를 유지하게 되었다. 특히,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양국 간의 교역은 크게 위축되었고, 이는 양국관계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저해하고 위축시키는 기본 조건으로 작용하여 왔다.

21세기의 초입에 들어선 양국은 성급한 과열기와 급속한 냉각기를 거친 "롤러코스터 효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 발전을 위한 조건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건설적인 한ㆍ러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입장에서부터 러시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재평가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1999년 러시아의 GDP가 1992년의 1/2로 줄어들었다 할지라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5~6% 이상의 꾸준한 GDP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BRICs 보고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러시아는 중국, 브라질, 인도와 함께 세계최대의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는 물적, 인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러시아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데 있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변수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러시아가 한반도 주변 4강중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장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하여 향후 중국과 일본이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초로 동북아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요구하며 벌이게 될 각축전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러시아의 젊은 대통령 푸틴의 등장은 러시아의 혼란기를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였고, 국제무대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와 러시아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지닌 그 가능성에 비하여 양국의 협력관계는 사실 그 현실화정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 이제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현실적·전향적 접근을 통해 러시아를 우리 국가전략의 유용한 자산(resource)으로 충분히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처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2004년 9월 있었던 노무현-푸틴 회담에서 합의된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공동선언은 최소한 한-러관계를 소강상태 저조기로부터 "건설적 협력기"로 도약하게 만드는 질적 발전의 계기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2. 양국간 건설적 협력을 위한 조건**

그렇다면 한·러관계를 건설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크게 보아 대러시아 외교는 단기적으로는 현안들을 중심으로 양국간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교역을 확대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교역 잠재력에 비해 그간 양국의 교역액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교 후 꾸준히 증가하던 교역액은 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급속하게 감소된 이후 최근 러시아의 경제회복에 힘입어 다시 조금씩 증가되어 2003년에 4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양국의 교역 잠재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양국은 현실적인 교역의 증대를 위해서 양국 정상의 임기 기간 동안에 양국 교역액을 100억달러(가능하다면 150억달러)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방안을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지난 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시 주변 4강중에서는 처음으로 재계의 "Big 4"를 비롯한 많은 기업인들이 동행하였고, 40억불 상당의 가치추정이 가능한 상담과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잠재력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양국의 교류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는 "교역의 증대"에 초점을 가지고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양국 관계는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못하고 불신 요소가 아직도 잔존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15년간의 있었던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내실없는 풍성한 계획과 말잔치는 이제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까지 양국관계를 몰아왔다. 러시아는 체제전환의 혼란을 서서히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강대국의 입지를 확보할 여건들을 확보해 가고 있으며, 점차 고압적인 강대국 외교로 전환해 가는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간 양국간에 논의되어 왔던 나홋드까 공단건설, 한·러 무역센터 건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 등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들은 물론이고 여타 다양한 투자 및 협력계획들이 모두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양국관계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희석시키고 '상호 신뢰의 문제'를 양국관계 속에 착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양국관계가 미래지향적인 상호관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양국간의 신뢰회복 문제는 중요한 과제인데, 이 해결을 위해 양국간의 "성공사례"(success story)를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 이러한 성공사례를 위한 모델 프로젝트의 선정 및 그 성공적 수행을 위한 양국의 노력이 요청된다.

나아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틀을 강화하고 실질적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는 이제 유럽과의 관계를 안정화시키고, 자신의 취약점인 시베리아와 극동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굳이 'BRICs 리포트'를 거론하지 않아도 러시아의 경제상황은 꾸준하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이라는 이 국가적 과제를 위한 파트너로서 과거에 인식하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한국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한국 이외에도 강력한 경제력과 적극적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의 정책을 협조의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파트너들이 러시아에 대한 진출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앙가르스크 유전개발 계획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각축에서 보이듯이 러시아는 현재 중국과 일본의 이런 "러브 콜"을 한껏 즐기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중국이나 일본보다 러시아를 통한 이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정부의 대러접근의 인식전환과 그에 따르는 공세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양국간의 단기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게 될 경우 비로소 양국은 동북아 협력틀을 구상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한국의 장기적 국가발전전략의 자주적 역량강화를 위한 중대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도 있다는 점에서 한국 대러외교는 신중히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3. 6자회담과 동북아 균형자론: 러시아의 기대와 한국의 희망**

북러관계의 개선으로 인한 러시아의 "중재자 역할"은 6자회담의 성립에 큰 기여를 하였고, 동북아에서 안보문제와 관련된 다자회담 형식의 시도는 러시아의 오랜 구상이 실현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6자회담의 성패가 북·미간의 합의도출 여부에 있음을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양측에 대한 중재자의 역할을 지속하는 선에서 자국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 양자합의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실무자 그룹 회의를 제안하는 등 세밀한 부분에서의 역할도 주의를 기울여 왔다. 러시아가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에 비하여 얻은 성과는 미미하지만,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중재적 역할의 가능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꾸준히 증대되고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동안 러시아가 조심스럽게 쌓아 온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평판과 더불어 러시아의 국내적 안정으로 인한 대외적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이 함께 빚어내는 러시아 외교력의 증대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 섣부른 친서방주의 정책에 입각한 동맹포기나 일방 편향화의 정책의 실수를 다시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남북한 등거리 정책과 같은 영향력 회복의 실리적인 정책을 강화하면서 동북아에서의 당사자 입지를 강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가지는 이해가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하여 우호적이며 호의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데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동북아 협력의 문제나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된 해법에서 러시아는 한국의 입장과 상당히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대외정책이 잘 활용할 수 있는 우군으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 동안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는 6자회담의 표류는 북핵위기 해결을 난망하게 하고 있는 현실에서 최근의 변화는 관찰자들의 우려를 증대시키고 있다. 한때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6자회담은 이제 한반도 위기의 새로운 국면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그 효용을 지속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돌파구로 기능하게 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미국 대선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끝나고 부시 2기 행정부는 반테러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자유의 성전(聖戰)"을 선언했다. 부시 1기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6자회담과 확산안보구상(PSI)의 틀 속에서 풀어보려고 했다면 부시 2기 행정부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폭정의 종식"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부시 2기 행정부의 입장에 북한에 불리한 전향적인 변화가 있다고 판단 하에 역공전략으로 자국의 핵보유를 선언하는 한편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고수하면서 유엔 안보리 회부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의 핵심은 미-일 신동맹 질서의 강화, 중국의 지속적 발전 속의 자기 역할 찾기, 일본의 보통국가로의 시도 그리고 한반도의 불안정화로 요약될 수 있다. 동북아 안보질서의 3가지 가능한 대안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 대안,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따른 세력균형질서 대안 그리고 규범·계약적 구상에 따른 다자적 평화질서 대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둘째 대안에서는 동맹의 의미가 중요하고, 셋째 대안에서는 다자주의 협력이 중요하다. 많은 관측자들이 6자회담의 다자주의 협력 기제로의 발전 전망에 대해 희망적인 기대를 피력해 왔다. 하지만 다자주의 협력은 역내 강대국들의 합의 없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과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기적인 목표로 세 번째 질서를 추구할 수 있지만 중·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도리어 6자회담의 효용도 다자주의적 협력의 관점이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세력균형질서의 달성을 위한 조정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가령, 중국이 6자회담의 성립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으며, 강력하고 국제적 공익을 창출하는 지역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지역안보에 대하여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새로 출범한 신 지도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부각되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적극적인 지역안보에 대한 진출은 궁극적으로는 북핵위기를 해결하여 동북아시아의 안정화를 통하여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개입의 빌미를 줄여나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지역안보 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구상을 활성화 해보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중재적인 역할이 주도적인 역할로 전환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지역 내 균형을 위하여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 간의 세력균형"이라는 고전적인 원리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의 의의는 일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균형자" 용어에 대한 오해의 가능성과 한국의 동원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에서 좀 더 신중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북핵문제의 해결과 동북아 질서와 관련된 우리의 고민은 Post-6자회담 이후의 질서를 포괄하는 단기(북핵 2차위기의 해결), 중기(동북아 세력균형화), 장기(동북아 다자안보질서 수립)에 따른 전략적 목표 및 방향의 설정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고, 러시아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단기적으로 북핵위기 해결과정을 넘어서서 중·장기적으로는 러시아를 어떻게 동북아의 세력균형화와 다자안보질서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 전략의 수립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남·북한 이외에도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세계적 행위자들과 함께 만나고 있다. 관측자들은 유럽에서 유라시아의 패권변동을 위한 대규모 전쟁은 최소한 한 세대 동안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리어, "지정학적 수압"(hydraulic pressure of geopolitics)이라 불릴 수 있는 잠재적 안보위협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지역은 지난 세기 중요한 전쟁이 발발한 지역으로, 현재 지역안보제도가 부재하고, 가시적으로 제도화된 협력의 틀이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경쟁적으로 각축하는 강대국들의 이해가 대립되는 지역이기에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하여 특별한 관리가 요청되는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견제와 협력이라는 이중적 관계설정을 상정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안정자 내지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며 기대를 키워가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한반도에 대한 어느 일방의 절대적 우위는 자국의 동북아 지역 내에서의 입지에 유리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의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러시아 활용 내지 협력 외교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까지 한국정부의 대러정책의 틀을 넘어 다각적 차원에서 러시아의 가치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주성을 고양하는 외교정책의 구현을 위해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원천으로서 러시아를 활용하는 전략의 개발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전략의 기본적인 방향으로는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의 행사를 통해 북한을 안정시키고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전략,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미국을 움직이는 통로로서 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유럽의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켜 유럽을 동아시아에 개입시키는 수단으로서 러시아를 활용하는 전략, 동아시아의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경제적 및 지역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조력자로서 러시아를 활용하는 전략, 장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균형자로서 러시아를 활용하는 전략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근 6자회담을 통하여 동북아 역내 당사자로서의 입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둔 러시아는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동북아에서의 균형자 역할을 현실적으로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과 러시아는 많은 이해의 수렴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렵사리 6자회담의 참가국이 된 러시아가 북핵위기의 해결에서 미국과 북한의 합의를 강조하고, 그를 기반으로 동북아의 안보문제를 다자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점은 러시아의 현실적이며 단계적인 전략적 사고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기대"는 동북아 균형자를 "꿈꾸는" 한국의 입장에서 활용 가능한 가능성의 자산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4. 다가오는 허들: 관심, 신뢰의 단계를 넘어서**

한국과 러시아는 현재 양국관계를 "전략적 차원의 협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현실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현실 속에서 찾아지기보다는 양국 정부와 민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관계의 긍정적 미래를 창출하기 위해서 양국은 교역의 증대로 표출되는 실질적 협력의 강화함으로써 양국간의 '관심'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국가 간 대형프로젝트 중 가장 실현성 있는 모델 프로젝트를 선정하여 이를 성사시킴으로써 양국 간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심과 신뢰의 단계를 거쳐 양국 간의 건실한 파트너십이 구축되어야 비로소 "전략적인 파트너"로서 상대를 인식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구상 속에서 한국의 러시아 활용 및 협력외교는 비로소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택의 대안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