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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링컨: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국과 계승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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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링컨: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국과 계승 발전

CEO출신 역술인 김남용이 본 '역사의 라이벌' <50ㆍ끝>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겠으나 필자가 추천하는 두 분은 바로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과 남북전쟁의 해결사 링컨을 들겠습니다. 워싱턴은 그가 대통령 재직시 주위에서 종신 국왕으로 추대하겠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를 단호히 배격하고 은퇴함으로써 민주주의 대통령의 기틀을 마련한 영웅입니다.

링컨은 사실 실패를 많이 한 정치가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의 그 모든 실패에서 진정한 승리의 뜻을, 성공의 소중함을 알고 그 뜻을 깊이 새겨 삶을 영위한 진실한 영웅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과 북은 계속 투쟁과 미움과 시새움으로 국내 내분이 장기회되어 오늘날의 미국이 존재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미국을 한 틀에 넣고 단합시킨 위대한 공로자입니다.

이 두 분을 소개합니다.

***워싱턴 [Washington, George, 1732.2.22~1799.12.14]**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지니아주 출생.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토지측량관이 되었다. 1752년 이복형이 죽자 광대한 마운트버넌의 토지와 버지니아 민병대(民兵隊)의 부대장직을 이어받고 1754년 7년전쟁, 즉 프렌치인디언전쟁에 참가하였다.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땅이 프랑스인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반대한 때문이었다. 그후 본국과 식민지와의 항쟁이 일어나자 서부의 토지문제를 놓고 본국의 정책에 크게 반발하였다.

버지니아의회 의원으로서 1765년 P.헨리를 지지, 인지조례(印紙條例)의 반대를 관철시켰으며, 1769년 타운센드법을 반대하다 의회가 해산당하게 되자 영국상품 불매동맹을 결성하였다. 1774년 제1회 대륙회의에, 1775년 제2회 대륙회의에 버지니아의 대표로 참석하고, 이 회의에서 무력항쟁이 결의되자 그는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총사령관으로 있으면서 피로에 지친 식민지군을 격려, 역경을 극복해나갔다. 1781년 10월 프랑스군의 원조를 받아 요크타운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1783년 강화조약이 체결되자 군대를 해산시킨 뒤 연합회의에 군의 통수권을 반환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연합회의가 무력하여 미국의 독립이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자 1787년 헌법제정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의장직을 맡아 새로운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이 헌법에 의하여 1789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같은 해 4월 30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는 국내 여러 세력의 단합에 노력하고, 헌법을 실제 정치에 반영시키는 한편, 여러 나라와의 국교를 조정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정견을 달리한 A.해밀턴과 T.제퍼슨을 각각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으로 기용하여 국내 재정정책의 수립과 외교정책의 정비를 담당하게 하였다.

1793년에 발발한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해밀턴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중립을 선언하고, 유럽의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주주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하였다. 신생(新生) 미국의 기반을 굳게 다진 데 대한 그의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링컨 [Lincoln, Abraham, 1809.2.12~1865.4.15]**

켄터키주(州) 호젠빌 출생.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여 1837년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에서 개업하였으며, 1834~1841년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847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미국멕시코전쟁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져 하원의원직은 1기로 끝나고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 1850년대를 통하여 노예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크게 고조되자 정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하고, 1856년 노예반대를 표방하여 결성된 미국 공화당에 입당하여, 그해 대통령선거전의 공화당후보 플레먼트를 응원함으로써 자신의 웅변이 알려지게 되었다.

1858년 일리노이주(州) 선출의 상원의원선거에 입후보하여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S.A.더글러스와 치열한 논전을 전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더글러스와의 공개논전에서 행한 “갈려서 싸운 집은 설 수가 없다.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는 유명한 말을 하여 더글러스의 인민주권론을 비판하였다. 선거결과에서는 패하였으나, 7회에 걸친 공개토론으로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것은 노예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과히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 쪽에서 노예제 유지의 브리켄리지와 인민주권의 더글러스의 두 명의 후보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링컨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과 함께 남부 제주(諸州)는 잇달아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결성하였다. 링컨은 이미 노예제를 가지고 있는 남부 제주의 노예를 즉시 무조건 해방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앞으로 만들어질 준주(準州)나 주(州)는 자유주의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섬터 요새에 대한 남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중 그는 의회에 대하여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요청하고,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여 인신보호령장의 정지, 언론집회의 자유의 제한을 강행, 반대당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여러 세력을 조정하여, 북부의 강경론자들을 누르면서 노예해방을 점진적으로 단행하는 것이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전쟁 중인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재선 전망이 불투명하였으나, U.S.그랜트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승리가 계속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1865년 4월 9일 남군사령관 R.E.리가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함으로써 남북전쟁은 종막을 고하였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남군 항복 2일 후인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남부인 배우 J.부스에게 피격, 이튿날 아침 사망하였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① 워싱턴

생년월일 : 1732년 2월 22일 사시
운명요소 : 임자년 임인월 을유일 신사시(壬子年 壬寅月 乙酉日 辛巳時)

② 링컨

생년월일 : 1809년 2월 12일 해시
운명요소 : 기사년 병인월 기미일 을해시 ( 己巳年 丙寅月 己未日 乙亥時 )

***1. 소질 검색**

① 워싱턴 (壬ㆍ壬->乙<-辛)

을과 임(乙<-壬)의 관계는 천재감별법에서 자료수집 아이디어형의 영재에 속합니다. 별칭 인자선량지략가이며 지혜총명노련자입니다. 처세가 원만하고 인격을 중시하는 점잖은 소질이며 지식과 사람 이용에 요령이 있는 소질입니다.

두 번째는 을과 신(乙<-辛)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매우 신중한, 남보기에는 너무 망설이고 겁이 많은 듯 보이기도 하는 소질입니다.

그 다음 임과 을(壬->乙)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창조 기능이 돋보이는 소질이며 위의 자료수집아이디어형과 함께 전략전술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아집니다.

② 링컨 (己<-丙->己<-乙)

워싱턴과 매우 비슷한 소질입니다.
우선 기와 병(己<-丙)의 관계는 천재감별법에서 자료수집아이디어형의 천재에 속합니다. 매우 인격적이면서 지성적이며 지식과 사람 이용에 요령이 있는 소질입니다. 이 점 워싱턴보다는 한수 위의 소질이죠.

두 번째는 기와 을(己<-乙)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상사에게 매우 공손한 소질입니다. 워싱턴이 신중한데 비해서 공손하지만 당당하고 겁이 없는 소질이죠.

③ 소질 종합 판단

두분 다 관인사주라고 해서 왕조시대에는 영의정 등의 최고위직까지 오르는 사주입니다. 행정 능력과 인사관리 능력과 공공의 일에 적합한 최고의 사주이죠. 결국 이런 분들이 사적인 일을 버리고 공공을 위해서, 사회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소질표**

***2. 욕망 검색**

① 워싱턴 (乙일에 寅월)

자기 확립 주체 욕망, 모험 욕망, 자기 표현 욕망이 있습니다.
자기 표현 욕망, 개혁 욕망은 천간에 화(丙,丁)로써 투출되지 않아 끝까지 만족 모르고 욕망 달성을 위해 몸부림 칩니다.

② 링컨 (己일에 寅월)

리더 욕망이 있습니다. 천간에 목(乙)으로 투출되어 충분한 동기부여로 작용합니다.
명예욕, 지식욕이 있습니다. 천간에 화(丙)로 투출되어 충분한 동기부여와 달성에 의한 만족도로 작용합니다.

***3. 본능검색**

***본능표**

***4. 개성 검색*****개성표** 오늘로써 당초 약속된 50회분의 ‘역사의 라이벌’ 편을 마칩니다.

그동안 딱딱하고도 어려운 사주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내보냈습니다만 독자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매우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개인에 관한 소질, 욕망을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학문이 없는 한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면서 앞으로 더욱 연구ㆍ정진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졸고를 마다하지 않고 연재해 주신 프레시안에 감사의 념을 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프로그램, 이를테면 ‘한국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대지도자들’, ‘한국의 경제계를 주름잡은 대기업 창업주들과 그 후계자 2세, 3세들’, ‘한국의 연예계, 체육 스포츠계를 석권한 대스타들’ 등등의 알찬 제목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졸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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