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을 담당해온 한 업체 대표는 지난 수 년 동안 마산의 모고교에서 5억~6억원대에 이르는 학교급식비를 빼돌려오다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난 27일 경남 창원시에서 적발된 한 학교급식업체의 비리행위다. 경찰은 이 업체가 마산뿐만 아니라 창원·진해지역의 일부 고교 위탁급식도 함께 해왔던 터라 착복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업체가 학교급식비를 빼돌린 수법은 간단했다. 지난 2002년 9월부터 지금까지 전체 급식비의 65% 이상을 식자재비로 사용키로 돼 있는 도교육청의 ‘학교급식 기본방안’을 어긴 채 15% 이상 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왔던 것이었다. 도교육청은 이 사건 직후 부랴부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위탁급식을 시행하는 각 학교에 월간 식단표와 사용 식자재에 대한 긴급 점검을 지시했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게 지역 교육계의 촌평이다.
위탁급식업체가 이윤을 남기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학교 또는 학부모가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업체들은 학생들의 건강권은 무시한 채 싼 재료, 특히 수입산을 구입해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따라서 ‘학교급식법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www.geubsik.org) 등 많은 교육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우리 농수산물을 학교급식의 식재료로 사용토록 명문화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우리 농수산물 사용은 위기에 처한 국내 농·어촌을 활성화시키는 좋은 방편이기도 하다.
***식재료 46% 수입산이 ‘점령’, 아이들 건강 ‘위협’**
정부는 우리 농·수산물 사용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선 학교현장의 급식에 사용되는 우리 농·수산물의 사용비율이 그리 낮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2003년 6월 부산시내 64개 초·중·고를 조사한 결과, 농산물의 경우 국산 사용비율은 92.3%, 수입은 7.7%였으며, 수산물은 56.6%(국산) 대 43.4%(수입), 축산물은 78.1%(국산) 대 21.9%(수입), 공산품은 12.1%(국산) 대 87.9%(수입)였다고 제시하고 있다. 또, 교육인적자원부는 위탁급식의 문제점이 속속 제기되자 최근 자료에서 직영급식은 97%, 위탁급식은 91%가 국산 농·수·축산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 식량 자급률이 26.9%를 밑돌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불가능한 통계수치일뿐더러 외국산 유전자변형 농산물과 저급한 수입식품의 견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일한 생각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교육·교원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빈파 학교급식법개정 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28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가 개최한 학교급식법개정 공청회 자리에서 “교육부가 주장한 것과는 달리 전국주부교실중앙회와 식생활국민운동본부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급식에서 수입산 식재료 사용비율은 46%에 달하고 있었고, 또 농식품 신유통연구원에 개최한 신유통 토론회에서도 우리 농산물 사용비율이 50~90% 미만인 학교가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표 참조).
이 집행위원장은 또, “수입농산물은 안정성 확인이 용이치 않은데다가 추적관리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이런 이유로 미국, EU, 일본 등은 학교급식 식재료 만큼은 자국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농산물을 가능한 우리 것으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의 농촌’ 구원병, 우리농산물 사용**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하자는 주장에는 식량안보와 농업보호를 위한 측면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26.9%에 불과하고, 농업총생산액이 연간 30조원 규모인 국내 농업 현실에서 연간 3조원 규모인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게 되면 ‘위기의 농촌’을 구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미국의 학교급식법은 그 목적으로 △적절한 영양 공급 △바람직한 식습관 형성 △교육균등 보장과 양극화 방지 등을 명문화하면서 ‘국내 농산물의 수급안정 도모’라는 조항을 넣어 학교급식 식재료 만큼은 미국산 농산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어느 국가보다 다른 국가에 농업개방 압력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미국의 이러한 이중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도 학교급식의 목표를 “식량의 생산, 분배 및 소비와 연계한다”고 명시한 뒤 지난 94년 우르과이라운드(UR) 협상 때 학교급식은 국내 농산물로만 조달할 수 있도록 양허를 얻어 대부분의 급식재료를 협동조합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학교급식의 우리농산물 사용 현실은 초라하다 못해 굴욕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국내 농업을 보호해야 할 외교통상부 등 정부부처가 오히려 학교급식조례안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명시했다는 이유로 서울, 경기, 경남, 전북지역의 조례를 WTO 정부조달협정 위반으로 대법원에 제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미국, EU, 일본 등은 WTO 정부조달협정이 체결될 당시 학교급식을 예외조항에 포함시켜 학교급식 재료농산물에 대해서는 내국인대우 원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한국은 이를 명시하지 않아 우리 농산물 사용을 명문화할 경우 다른 국가들의 제소가 잇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장경호 민주노동당 농업담당 정책연구원은 “WTO 정부조달협정은 이 협정을 승인한 30개국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다자간 협정으로, 상호주의에 따라 상대방이 정부조달시장을 열어주는 범위만큼 자신의 시장도 열어주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이미 학교급식을 예외조항으로 하고 있는 미국 EU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런 이유로 한국을 제소할 수 없고, 나머지 싱가폴 이스라엘 홍콩 등은 한국에 학교급식 농산물을 수출한 실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할 수 없으므로 제소 또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 연구원은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 도하개발아젠다회의(DDA)에는 이같은 정부조달협정이 포함돼 있는 만큼 학교급식을 예외조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히려 ‘우리농산물 사용’을 명문화해 개정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같은 이유로 학교급식법에 ‘우리농산물 사용 의무화’ 조항을 넣기 힘들다면 정부예산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 WTO 정부조달협정에서 한국이 예외로 인정받고 있는 양곡관리법, 농안법, 축산법 등 관련 법률의 보완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농산물 사용, 21C 국가경쟁력 향상의 시작”**
학교급식법 개정운동에 나선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하게 되면 우리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중시해왔던 ‘밥상머리 교육’을 부활시킬 수 있고, 더군다나 풀뿌리 지역공동체의 기초도 다지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말해 고유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먹거리’를 교육과 연계해 우리 사회의 문화와 가치를 가르치고, 한편으로 △생산과 소비 △환경과 농업 △지역과 국가 등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교육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 먹거리와 교육, 그리고 건강과 안전, 환경과 농업 등은 전국 어디에 사는 누구이건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에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지역 주민운동의 활성화와 나아가 풀뿌리 지역공동체 발전에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원각 학교급식법개정 국민운동본부 공동 집행위원장은 “성장기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먹는 교육인 학교급식은 무엇보다도 식재료가 중요하다”며 “안전한 우리농산물, 지역산 농산물, 나아가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은 물론 국내 농업의 발전과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 환경보전,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국가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학교급식법개정을 위한 범국민 온라인 서명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랍니다(www.geubsi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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