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일선 학교 현장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옵니다. 바로 식중독입니다. 경북대 기숙사에서는 지난 11일 무려 2백63명이나 되는 대학생들이 식사 뒤 집단 식중독으로 1주일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인인 대학생들이 그토록 고생을 했는데 아직 나이 어린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국내에서 학교급식이 시작된 것은 지난 81년. 그러나 학교급식에 따른 집단 식중독 사고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부당국과 학교당국이 학교급식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위탁급식업체에 이를 맡겨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탁급식업체는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아이들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재료들을 수입농산물로 채우고 있고, 더군다나 장기보관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식중독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근본 원인입니다.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급식은 또 어떻습니까.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확대됐지만 지금도 일부 아이들은 급식비조차 내지 못해 밥을 굶어야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소득층 자녀들이 밀집해 있는 실업계 고교에서부터 급식지원 대상자를 줄여 나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민들의 공분을 산 바 있기도 합니다.
학교급식은 분명 '교육'입니다. 이에 <프레시안>은 '학교급식법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www.geubsik.org)'와 함께 현행 학교급식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캠페인을 벌여나가기로 했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급식법 개정 1백만인 국민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 편집자주
***식중독 '제로', 직영급식에서부터 시작하자**
국내 학교급식의 역사는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53년 유니세프의 구호급식에서부터 비롯돼 지난 81년 1월 21일 학교급식법 제정으로 이른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학교급식 전담직원(당시는 일용직 영양사였음)이 일선 학교 현장에 배치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혼돈으로 어렵던 시기,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 또한 뻔하던 시절에 이같은 학교급식의 도입은 '혁신'적인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당시 학교급식은 공교육 강화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공립학교에서는 우유배식 정도가 고작이었고, 비용도 올곧이 학부모들의 부담이었다. 반면 이른바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서는 80년대 들어 제법 그럴싸한 급식이 시행됐다.
그러던 학교급식은 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전국 초등학교로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을 외쳤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불도저' 마냥 이를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여기다가 98년 15대 대선 직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또다시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2000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의무적으로 학교급식을 시행하도록 했다. 학교급식을 위한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았던 학교 현장은 대통령들의 말 한마디에 온통 공사판이 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대통령 선거가 한번 치러질 때마다 부랴부랴 급조되다 보니 학교급식의 질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양적 확대 속에서 학교 현장은 급한 대로 정부 시책을 따라가느라 위탁급식업체들에게 아이들의 건강권을 떠넘겼고, 이러한 어른들의 잘못은 아이들에게 식중독이라는 '재앙'으로 닥쳐왔다. 실제로 98년 1천3백85명이었던 식중독 사고자는 2000년 3천5백46명으로 늘어났고, 이 가운데 2천2백47명은 이처럼 급조됐던 위탁급식 시설에서 발생했다.
학교급식은 2004년 말 현재 전국 1만3백43개교 7백4만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 지금은 식중독 사고에 따른 학부모들의 운영개선 요구로 전국 8천4백13개교가 직영급식을 실시하는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된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찌감치 학교급식에 들어갔던 초등학교의 직영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이 교육현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의 학교급식 직영률은 81.3%로, 거의 대부분이 직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초등학교 직영률은 98.7%인 반면 중학교는 0.3%, 고등학교는 3.3%에 불과하다. 부산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초등학교의 직영률이 99.6%인 반면 중학교는 73.4%, 고등학교는 30.1% 정도만이 직영급식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비싸면서 질 낮은 식재료가 건강 위협**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지난 2003년 조사에 따르면, 직영급식은 급식 단가가 평균 1천6백60원이었던데 비해 위탁급식은 평균 2천2백70원으로 6백원이상 비싸 학부모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식재료비는 오히려 직영급식에 비해 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예로 직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 W중학교는 2천3백원의 급식비 가운데 1천6백40원(71.3%)을 식재료비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위탁급식은 서울시교육청 표본조사 결과 같은 2천3백원 가운데 1천2백83원(55.7%)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위탁급식 업체들은 관련법에 '급식비의 65%이상 식재료비 등으로 사용'이라고 적시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학교에 투자한 시설비와 이윤 등을 고려해 버젓이 불법·편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위탁급식 업체들이 이윤을 좀더 남기는 방법은 또 한가지 있다. 수입농산물을 싼 가격에 대량 구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수입농산물은 대량구입 뒤 장기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화학물질이 첨가될 수밖에 없고, 여기다가 국내 수입농산물 검역체계가 문제 발생시에만 회수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매일 지대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탁급식의 문제점은 한 업체가 여럿 학교와 계약해 동일한 식단을 사용하거나 동일한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중독 사고가 가히 폭발적으로 대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업체들은 한 학교만을 위탁운영해서는 손익분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 학교와 무리하게 계약을 유지하려 학교장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도 해 교육부패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학교급식에 대한 불신은 이미 학생·학부모 모두의 마음 속에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회장 박경양)가 지난 2003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학부모·학생 각각 2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부모의 88%, 학생의 64%는 위탁급식보다 직영급식을 원했고, 그 이유로는 △철저한 위생의식(42.7%) △안전한 식재료 사용(27.2%) 등을 꼽았다.
'학교급식법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이빈파 공동집행위원장은 "직영급식은 우선 시설비와 운영비, 인건비 등을 국가가 지원하게 돼 급식비에 대한 학부모의 부담이 경감될뿐더러 식재료비 적정사용비율 확보 또한 가능해져 양질의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며 "특히 직영급식은 설령 급식비를 내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가정까지 찾아가 급식비 납부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반드시 관련법을 개정해 이를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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