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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고양이’와 단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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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똥고양이’와 단군신화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5>

이십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유명한 카페를 들어서니 프론트(front) 위에 크고 멋있는 판넬(액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위에는 금박으로 쓴 영어 글씨가 있었죠. 이 판넬이 뭐냐고 물으니 주인이 그 카페에 단골로 오는 미국인 병사가 주고 간 것이라서 걸어두었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글들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니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미국의 욕설들로 가득했습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그저 미국의 욕이 ‘God damn(천벌 받을 놈)’ 정도만 알던 시절이니 그 말뜻을 잘 알 리도 없었겠지요. 무슨 말이 적혀 있었는지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불러서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내용은 몰랐다고 하면서 당장 떼어내겠다고 합디다.

그리고 난 후 6개월 뒤에 다시 그 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 판넬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꺼내니 주인이 제게 짜증을 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꾸 잔소리하는 듯도 하여 저도 그냥 그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하나의 코미디로 넘겨버리기엔 너무 자주 발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맥(濊貊)이 그런 경우죠.

한족(漢族)들은 과거 쥬신족들을 불러 ‘예맥’이라고 했지요. 예맥은 쥬신이 스스로 부르는 것을 한자로 표현한 것인데 그것이 가관이죠. 중국인들이 쓴 말 즉 예맥(濊貊)의 한자 뜻 그대로는 ‘똥오줌이 붙은 표범이나 삵괭이 같은 짐승’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와 가장 가까운 식으로 표현하면 ‘똥고양이’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오랑캐라도 좀 좋은 말로 표현해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미국(USA)은 미국(美國)이라 하여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만약 예맥이라는 말이 이 민족 스스로가 불렀던 이름이면 예맥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이 민족의 가장 고귀한 어떤 내용을 담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즉 쥬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의도적으로 ‘똥고양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니 기가 찹니다.

만약 이 ‘똥고양이’라는 말 안에 쥬신의 단군신화(檀君神話)가 숨어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이 ‘똥고양이’라는 말을 쓴 행위 하나만으로도 이 말을 쓰고 통용을 시킨 한족(漢族, 또는 화하족)의 통치자나 사가(史家)는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부화뇌동한 소중화주의자(小中華主義者)들도 용서할 수 없죠. 비유하자면 우리의 고귀한 어머니를 ‘행실이 좋지 않은 길거리의 암캐’에 비유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1) 단군신화**

쥬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신화(神話)의 세계를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쥬신의 이야기를 한다면서 왜 이리 사설이 길어? 단군(檀君)의 계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온통 민족의 체질이니 중화사상(中華思想)이니 하더니 이제는 또 신화야? 한(漢)나라 이전에는 민족이고 뭐고 분별하기가 어렵다면서? 그러면 예맥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

진정하시고 제 말을 일단 들어보세요. 신화(神話)는 언어가 모호하니 분석해 보았자 얻을 것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화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신화란 기나긴 역사적 사실을 간단하고 가벼운 설화로 윤색한 것일 수도 있고 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표현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를 잘 아시죠? 그래서 저도 새삼스럽게 단군신화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똥고양이’ 이야기를 하려니 단군신화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일단 『삼국유사(권1)』의 내용을 간략히 봅시다.

“옛 기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하느님[환인(桓因)]의 여러 아들[서자(庶者)] 가운데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가장 큰 산들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그 가운데 태백산(太伯山)을 택하여 천부인[天符印 : 하늘의 위력과 영험(靈驗)을 상징하는 부적과 도장]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이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이상의 내용은 『고기(古記)』에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삼국유사』를 저술할 당시에는 『삼한고기(三韓古記)』나 『단군고기(檀君古記)』와 같은 책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일단은 위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만 간단히 봅시다.

단군신화의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의 요점은 천손족(天孫族)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천손족이라고 믿을 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고귀한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특정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는 민족 즉 유목민(遊牧民)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실증적으로 많은 동북아시아 유목민들이 이 같은 신화를 가지고 있지요.

[그림 ①] 단군신화가 표현된 것으로 알려진 무씨사당벽화

그런데 단군신화에서 특이한 것은 흔히 농경문화(農耕文化)를 상징한다는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라는 말이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 등은 치우(蚩尤)의 신하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한 말일 수 있습니다. 치우는 중국에서도 자신의 조상의 하나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구려(句麗)의 왕’이라고 하여 쥬신과 관계가 깊은 분으로 봅니다(물론 고유명사는 아니겠지요?). 중국의 쉬슈성(徐旭生) 교수는 1940년대에 이미 『중국고대사의 전통시대(中國古代史的傳統時代)』에서 “치우는 동이족”이라고 철저히 고증하였습니다.『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중 황제(黃帝) 조에는 황제가 신농씨(神農氏)와 싸워 이기고 천하를 제패할 당시에 치우는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를 보내어 황제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후일 황제는 치우와 탁록(涿鹿)의 들에서 결전하여 승리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치우는 맥족(貊族)의 수장(首長)으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치우(蚩尤[chīyóu])라는 말도 욕설이니 앞으로 다른 명칭을 찾아봐야 합니다. 치우라는 말만 봐도 치우는 한족(漢族)의 조상이 아니죠.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입을 열면 예의니 도덕이니 하는 중화백성이 자기 조상을‘버러지 같은 놈(치우)’이라고 했겠습니까?

둘째, 단군신화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접점 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제 2장에서 보았듯이 베이징(北京) - 요동(遼東) - 중부 만주 - 한반도 - 일본에 이르는 지역은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융합현상이 나타나지요 ? 따라서 단군신화는 주로 베이징(北京)과 요동지역이나 중부 만주 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부여(夫餘)는 반농반목(半農半牧) 국가이지요.

[그림 ②]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접합(제2장 참고)

셋째, 설령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가 농경과 관계 있다 하더라도 유목민들은 동아시아에서 철기를 가장 먼저 사용한 민족들이기 때문에 이 말들은 철기와 깊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농경(農耕)은 유목민들이 전달해 준 철제가 농기구로 만들어져서 보급된 이후라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철제 농기구의 보급이야말로 대규모 농경이 시작된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이 글 후반부에 나오겠지만 불의 신 염제(炎帝)는 황제(黃帝)에 패배하여 중국의 변방으로 밀려나 ‘농업(農業)의 신(神)’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주지역은 철기가 아니면 사실상 농경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부여(夫餘)는 농경을 발달시켰죠? 그 기반이 바로 발달된 철기문화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도 농경에 적합한 지역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동안 제가 본 연구자들은 모두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를 농경문화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데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가 반드시 농경문화(農耕文化)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서 보더라도 환웅의 경우 농경을 지도하거나 가르쳤다거나 하는 말들이 전혀 없지요?

그리고 중국의 신화를 보면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가 농경보다는 주로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치우는 “황제가 우리를 물로써 공격하려 하니 풍백과 우사는 비와 바람을 일으켜 적을 공격하라.”고 합니다[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황금부엉이 : 2004) 185쪽]. 이것은 치우 또는 치우족들이 변화무쌍한 기후를 잘 알고 이용했다는 말이겠지요. 치우의 라이벌이었던 황제(黃帝), 또는 황제족은 주로 물[水]로 공격하였다고 하니 그들은 치수(治水)에 능했다는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그 동안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 = 농경’이라는 등식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유목민만큼이나 기후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바람을 풍백(風伯)으로 가장 높이 칭한 것도 유목사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목생활은 바람에 영향을 심하게 받습니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축들이 얼어 죽고 겔(천막)도 날아갑니다. 그러나 농경민족일 경우에는 겨울에는 농사가 끝나서 가족끼리 모여서 여가(餘暇)를 즐깁니다.

오늘날에도 내몽골이나 몽골지역에서는 바람이 심하면 물가나 다른 안전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번개도 유목민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주변에 큰 건물이 없으니 초원이나 겔(천막)에 바로 내리꽂히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농경인들처럼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할 수 없는 유목민들은 천재지변(天災地變)에 매우 취약합니다.『삼국지』(「위서」오환전)에서 조조(曹操)가 답돈(蹋頓)을 죽이고 요동의 정벌을 쉽게 한 것도 이 천재지변과 관련이 있습니다(김운회 『삼국지 바로읽기』참고).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들의 시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좋고, ‘바람에서 묻어오는 비의 냄새’도 맡을 정도로 기상현상에 민감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환웅은 농경문화 그 자체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웅은 씨앗[種]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죠? 다만 의술(醫術)과 금속문화(후반에서 설명함)를 가지고 간 것입니다.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라는 말은 고도의 문명(文明)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요. 그리고 이들이 무력만으로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죠.

이 문명은 황제(黃帝) 시대 이후 고도의 농경문화가 중원에서 꽃필 때까지 중국을 지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은(殷)은 동이(東夷)의 국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사기(史記)』에 말하기를 “은(殷) 나라는 오랑캐[이(夷 : 쥬신족)]가 세운 국가이고 주(周)나라는 우리 화하족(華夏族 : 중국인의 조상)이 세운 국가[殷曰夷周曰華]”라고 기록되어 있죠?

다시 다음 내용을 봅시다.

“때 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사람이 되기를 빌자 신(神)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달래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 곰이 삼칠일(三七日) 동안 몸을 삼가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檀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빌었다. 환웅은 이에 잠시 몸을 바꿔 결혼해 주었더니,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 … 단군 왕검은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여기서도 몇 가지의 중요한 상징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① 쑥(wormwood)과 달래(wild garlic), ② 곰(bear), ③ 조선·아사달 등이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단군신화의 주인공들의 속성이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됩니다. 즉 초기 쥬신의 역사를 밝히는 단서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고 넘어갑시다.

첫째. 쑥과 달래는 의약품이므로 보다 발달된 의료기술을 의미합니다. 쑥은 현대에서도 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복통 · 토사(吐瀉) · 지혈제로 쓰이고, 냉(冷)으로 인한 생리불순이나 자궁출혈 등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여름에 모기를 쫓는 재료로 사용하여 들판에서 잠을 쉽게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쑥찜, 또는 쑥뜸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사람이면 다른 의약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림 ③] 쑥과 달래 (원 안의 그림이 달래)

달래는 역시 약재로 여름철 토사나 복통을 치료하고, 지혈제는 물론 종기와 벌레에 물렸을 때 쓰이며, 협심통에도 좋다고 합니다.

쑥과 마늘의 현대적 의미는 바로 의료 기술이죠. 그리고 샤먼(단군)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병에 대한 치료입니다. 사실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문화적 감응은 없습니다. 만약 곰 토템 부족들이 천손족에 반했다면 의료기술 때문일 겁니다. 여기서 치우천왕이 염제(炎帝)의 후계자였다는 점 생각해야 합니다. 염제는 신농(神農)으로도 부르는데 그는 직접 모든 풀들을 먹어보면서까지 그 약성(藥性)과 독성(毒性)을 시험했다고 합니다.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나 오늘날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Bio) 공학과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저 된 것이 아니지요.

둘째, 곰[熊]이 등장한 문제입니다. 이 곰은 당연히 곰 토템의 부족을 말하겠지요. 만주에는 곰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이 부분은 다시 검토합시다). 그런데 위의 내용으로 보면 유목민들이 보다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와서 토착민들과 융합했다는 말이 되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무식한 유목민들이 문화를 알기나 하겠어? 김 선생, 당신은 유목민을 대단하게만 생각해. 유목민이 제대로 된 책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무슨 정보를 얻는다고 그래?”

허어, 제가 유목민을 대단하게 생각한다든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말합시다. 세상에 유목민 보다 정보(information)를 중시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정보는 바로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인사도 ‘니하오(你好 : 잘 지내셨어요?)’식이 아니죠. “(당신이 온 곳에서) 뭐 새로운 소식 있습니까?[Сонин сайхан юу байна?(소닝 새항 요 밴?)]”라는 형태로 주로 다른 곳의 정보를 물어보는 식입니다. 지평선 너머 적(enemy)이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야지요. 아니면 새로운 목초지(牧草地)가 있는지도 봐야죠.

그리고 이들은 상업(商業)을 중시합니다. ‘중농주의(重農主義)’와 ‘쇄국(鎖國)’의 원칙을 고수한 한족(漢族)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원(몽골) 제국은 교역 루트를 철저히 보호한 대표적인 왕조였지요. 세계적인 무역대국과 정보통신(IT, 또는 ICT) 강국 가운데 동양에서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지요? 이것도 그저 나온 것이 아니죠. 다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도 상업을 중시할 때만이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맙시다.

셋째, 아사달·조선·평양 등에 관한 것입니다. 아사달과 조선은 앞으로 지겹도록 나올 것이니 평양만을 간단히 보고 넘어가죠.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평양이란 현재 북한의 평양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평양은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하는데 이 지명은 양주동 선생이나 박시인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베이징(北京) 지방의 옛 이름이라고 합니다(박시인『알타이 신화』132쪽). 놀랐죠? 더욱 놀라운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평양성을 맥국(貊國)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명은 국내성(만주 즙안현) - 평양(현재의 평양)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평양이라는 지명이 베이징 → 만주 즙안 → 평양(평안도)에서 계속 나타난다는 얘기죠.

이것은 유목민들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어떤 곳에 살다가 불가피하게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의 경우에는 땅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자신의 뿌리나 토템과 관련된 신성(神聖)한 지명(地名)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죠. 즉 민족의 세계를 들고 다니는 것이죠. 언제 다시 돌아올 수도 없잖아요. 땅에 대한 집착도 없지요. 앞으로 이런 경우는 자주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과 일본인들은 세계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쥬신, 참 많이도 변했군요.

그런데 이것도 알아둡시다. 이렇게 유목민 같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닐수록 동족(同族)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날라리 한국인이라도 인종전시장인 미국에 가서‘한국인’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유전자 분석법의 견지에서도 A 지역에서 하나의 민족이 B·C·D 등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경우, A 지역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유전적인 변이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자, 다시 돌아갑시다.

단군조선이 처음으로 도읍한 곳이 베이징(北京) 인근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재의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首都)이지만 아주 오랜 옛날 베이징은 탁록(涿鹿), 탁군(涿郡)으로 모든 동부 알타이권의 문화나 민족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쥬신의 뿌리들은 알타이를 거쳐 허뻬이(河北)로 들어가서 황하의 중류에 터전을 잡는가 하더니 화하족(華夏族 : 漢族의 뿌리)에게 밀려서 베이징(北京) → 요동(遼東) → 만주 → 한반도ㆍ일본 등으로 지속적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떤가요? 태평양 바다 밖에 없어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데요.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한반도 북부(북한)도 이제는 위태롭지요? 정말이지 쥬신의 위기가 이처럼 심각한 적도 없네요. 고구려가 왜 고토(故土)를 회복하자는 국시(國是)를 가졌는지 짐작이 가지요?

『삼국사기』에 고추모(高雛牟)가 북부여에서 일어나 해모수를 제사하여 일부 새로 편입된 영토를 ‘다물도(多勿都)’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다물’은 고구려어로는 옛 땅을 되찾는다는 의미입니다(麗語謂復古舊土). 여기서 말하는‘구토(舊土)’, 즉 이들의 옛 땅은 과연 어디인가를 이제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겠죠?

단군신화에 대한 것은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다시 우리 갈 길을 가봅시다. 누군가 이렇게 불평할 겁니다.

“에이, 너무 뻔하잖아? 다 아는 내용이고. 당신 빨리 예맥(濊貊)이나 이야기하자고.”

글쎄요. 정말 여러분은 단군신화를 다 아실까요? 어쩌면 너무 뻔한 말들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2) 예맥과 치우천왕(蚩尤天王)**

한족(漢族)들은 과거 쥬신족들을 불러 ‘예맥’이라고 했지요. 예맥은 쥬신이 스스로 부르는 것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단지 한자음(漢字音)을 빌어 표현한 말이죠. 그런데 그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오물을 의미하는 예(濊)와 이상한 짐승(貊)으로만 이해했다는 것이지요.

우스운 말이지만 의서(醫書)로 유명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나 『설문(說文)』, 『남중지(南中志)』 등에 이 맥(貊)이라는 짐승에 대해서 상세히 나와 있어 우리 민족이 이 맥이라는 짐승(상상의 동물)과 무슨 큰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지요.

이제부터 이 예맥이라는 말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분석해 봅시다. 예맥이라는 말을 접근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예맥의 원래 발음을 추적해 가는 것이 급하겠죠? 그래서 일단은 한어(漢語 : 중국어) 발음을 알아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또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현대 중국어의 발음으로 과거의 발음이 추정되는가?’라고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일단은 이런 분석, 저런 분석을 다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표준어(만다린어)는 요동지역의 한어(漢語)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청(淸)나라가 중국을 통치하면서 요동의 한족들을 파트너로 삼았던 것입니다. 요동지역의 중국어는 만주어와 교류도 많았고 만주 쥬신(청)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언어가 비교적 이해가 쉬워서 청나라의 상용어가 된 것이죠.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만다린어를 만주어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중국 표준어에는 만주어들의 발음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한자음은 중국의 옛날 발음에 상당히 가깝지요? 그래서 이 둘을 적당히 비교해보면 말의 근원들은 어느 정도 알 수도 있습니다.

먼저 맥(貊)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맥(貊)은 중국어로 하오[h󰐁o]·허[hè]·모[mò] 등으로 발음이 되는데 듣기에 따라서 예(濊)의 발음(훠[huò]·휘[huì], 또는 웨이[wèi])과도 유사합니다. 그런데 알타이어에서는 ‘ㅎ’과 ‘ㅅ’ 의 교환현상이 자주 일어납니다(『춘향전』에도 ‘향단이’를 아예 ‘샹단이’라고 적힌 판본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나 맥이나 모두 [쉬]·[쇠이]·[쇠]·[서] 등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 또는 ‘쇠’, ‘서’에 가까운 소리가 됩니다.

‘’, 또는 ‘쇠’(‘서’)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죠. 그 가운데 중요한 것만 우선 정리해봅시다.

① 금속, 즉 구리·쇠[鐵 : iron] 등의 여러 가지 금속
② 하늘을 나는 새(鳥 : bird)
③ 해 뜨는 곳 동(東 : east) 예를 들면 새파람.
④ ‘’(해), 즉 태양(太陽)

맥(貊)의 발음 가운데 하오[h󰐁o], 허[hè] 등에 주목해 보면 일단 맥이라는 말은 쇠[鐵], 또는 태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제가 이렇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맥(貊)을 불러서 『관자(管子)』에서는 ‘하오(毫 : [h󰐁o])’라고 하고 있고, 『춘추(春秋)』·『좌전(左傳)』·『사기(史記)』등에는 ‘’ ,또는 ‘밝(發 : [b󰐃k] 또는 [f󰐀])’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해(태양)의 밝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여[불(해) + 여(무리, 민족) : 부여(夫餘)]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죠? 이제 아시겠죠?

그래도 맥(貊)이라는 말에서 맥[mæk], 또는 모[mò]라고 하는 발음도 신경이 쓰입니다. 북방민족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돌궐의 쿨테긴(Kül Tegin) 비문(碑文)에 나오는 복엘리(BӦkli)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일본의 모리마사오(護雅夫)는 비문(碑文)에 남아있는 돌궐 카한 시조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신 가운데 ‘해 뜨는 곳’으로부터 파견된 복클리(BӦkli) 초원의 사절을 고증하였습니다. 모리마사오에 따르면 이 복클리(BӦkli)는 맥의 나라라는 것입니다[護雅夫 “いわゆるBӦkliについて - 民族學と歷史學と間 - 『江上波夫敎授古稀記念論文集』(民族․文化篇) 東京. 1977, 229~324쪽].

여기서 복엘리(BӦkli)는 ‘복(Bok = Mok : 종족명) + 엘리(eli : 나라)’로 분석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 Bok(Mok)이 맥(貊)의 음역이라는 것이죠. 즉 이 맥이라는 게 복[bòk], 또는 [b󰐃k]으로 발음된다는 말이지요. 어떤가요? 이 말이 결국 ‘’ ,또는 ‘밝(發 : [b󰐃k], 또는 [f󰐀])’이지요? 이젠 좀 시원하십니까?

전설적으로 보더라도 맥(貊)이라는 동물은 철(鐵)이나 구리(銅)를 먹고 산다고 합니다. 따라서 맥이란 똥고양이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철기를 사용하는 힘이 센 민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족들은 이들을 이처럼 비하했을까요?

그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이 철기로 무장한 유목민들에게 큰 고통을 당했거나 오랫동안 지배받았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맥(貊)은 치우천왕(蚩尤天王)과도 깊은 관련이 있겠지요.

치우천왕은 ‘태양(불)의 신’인 염제(炎帝)의 후계자로 현재 중국의 산동성 일대에 거주하던 구려의 임금인데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와 쇠 가루를 먹고 산다고 하지요? 그리고 과거의 화하족(한족의 전신)을 크게 괴롭힌 사람으로 알려져 있죠.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쇠와 구리입니다. 쇠는 예맥의 예나 맥과 발음이 비슷하고 구리는 고구려(高句麗), 또는 구려(句麗)와 비슷하죠? (이 부분은 고구려 편에서 다시 상세히 다룹시다.)

[그림 ④] 치우천왕(한국 응원단인 붉은 악마의 상징물 )

『서경』에 “구려족의 임금을 치우라고 한다.” (「孔傳」)라고 하고 있으며 『사기(史記)』에서는 “구려(九黎) 임금의 호가 치우(蚩尤)이다.”고 합니다.

『사기(史記)』에는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고 따랐기 때문에 치우는 지극히 횡포하였지만 천하에 이를 벌할 자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죠. 이것은 철기를 바탕으로 한 신무기체계를 기존의 제후들이 이길 수 없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맥족들은 쇠를 숭배할 수밖에요. 물론 이 내용은 전설적인 내용입니다. 다만 이 전설 안에 녹아있는 의미를 맥(貊)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죠.

치우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치우가 당시 중국의 변방에 살던 대장장이 집단이고 치우는 그 우두머리 샤먼(무당 : 박시무당)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무당이 대장장이를 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을 다루어 금속을 정련하는 기술은 무당의 특별한 능력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황금부엉이 : 2004) 179쪽]

현재에도 칭기즈칸의 종족으로 알려진 부리야트족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은 샤먼이고 그 다음이 대장장이랍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알아봅시다. 정재승(봉우사상연구소장) 선생의 『바이칼 여행기』에는 특이한 내용이 있죠.

“겨울 바이칼 곳곳에서 보이는 자작나무숲과 부리야트 원주민의 전통적인 말 숭배관념, 그리고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자작나무 위에 그려진 하늘로 솟구치는 말 그림 등 … 부리야트인들의 전통풍속을 보면 어릴 때 이름을 개똥이·소똥이 등으로 비천하게 부른다는데, 이는 오래 살라고 하는 기원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옛적에는 똑같았다. 좀 특이한 얘기는 전통 부리야트 마을의 제일 웃어른은 샤만(무당, 영적 지도자)이었고, 그 다음은 대장장이였다 한다.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전통 샤만은 정말로 도력이 뛰어났는데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술이 매우 높았고, 한번 사람을 보면 무슨 병이 있는지, 무엇하는 사람인지를 단숨에 알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특이한 내용은 아닙니다. 철기 제련기술은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신기술입니다. 그 비밀을 종족의 우두머리가 관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요즘도 세계 최고의 음료회사인 코카콜라의 제조법도 그 상속자들에게만 전수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공학(工學)을 천시하는 오늘날 한국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모든 문제를 정치적인 역학관계로만 해결하려는 풍조(조선 왕조가 대표적인 경우죠)는 주로 한족(漢族)에서 배워온 것인데 이것은 쥬신의 장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보면 단군신화란 치우가 황제에게 패배한 이후 민족적 이동이 일어난 상황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화하족[한족(漢族)]의 시조로 간주되는 젊은 황제(黃帝)는 불[火]의 신 염제(炎帝)에 대항하여 판천(阪泉 : 베이징 근방)에서 큰 전쟁을 일으켜 염제를 격파합니다. 이에 염제의 후계자인 치우(蚩尤)는 염제의 복수를 위해 모든 군대를 동원하여 황제와 탁록(涿鹿)에서 결전을 벌입니다. 황제는 아홉 번이나 졌지만 마지막에 가서 지남차(指南車)라는 수레를 만들어 치우천왕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황제는 치우를 즉각 처형하고 그 주검조차도 따로 떼어 묻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컸던 것이죠. 이 판천ㆍ탁록 대전의 패배로 이들 동방의 신들의 후손들은 남방으로, 또는 중국의 동북방으로 옮겨갔다는 것이죠[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황금부엉이 : 2004) 186쪽].

그런데 중국의 신화는 자비로운 신농(神農)을 격하시키고 치우를 악신과 괴물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하족(華夏族)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죠. 쉽게 말해서 한족(漢族)의 조상인 황제가 야만족인 치우를 물리침으로써 위대한 중화문명이 탄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漢)나라 이후부터 특히 심해집니다. 제가 지난 강좌에서 한(漢)나라 이후부터 중화사상이 체계화되고 한족이 형성되었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마천의 『사기』나 중화사상(中華思想)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인 가의(賈誼)의 『신서(新書)』등에서는 염제가 제후들을 침략하고 나쁜 짓들을 저질러 황제가 징벌한 것이라고 합니다. 치우천왕이나 그의 형제들도 대부분 흉악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이 구리 머리에 쇠로 된 이마에 모래로 식사를 했다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 사람의 몸에 소의 발굽, 네 개의 손에 여섯 개의 손, 이마 양쪽에 쏟아난 뿔 등을 가진 형태로 묘사됩니다.

치우가 황제에게 패배한 탁록(涿鹿)은 현재의 베이징(北京) 서쪽 산 지역, 또는 텐진(天津) 지역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설상으로는 탁록대전이 B. C. 2000~3000년대의 사건이라고 하는데 이 시기를 믿기는 어렵겠죠.

이옥의 연구에 따르면, 맥족(貊族)이 중국 사서(史書)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B. C. 7세기경인데 이 때 이들의 거주지는 섬서(陝西)·하북(河北)이라고 합니다. 이후 이들은 B. C. 5세기경에 산서(山西), B. C. 3세기경에는 송화강 유역으로 이동한 뒤 다시 남하했다고 합니다(이옥, 『고구려민족형성과 사회』1984). 그러면 B. C. 7세기~B. C. 5세기경에 맥족은 탁록을 통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화하족(華夏族 : 중국인의 조상)과의 결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중국 본토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600~500년경부터 철기시대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 탁록 대전과도 관계가 있겠지요([그림 ⑤] 참조).

[그림 ⑤] 탁록대전 관련 예상 지형도

맥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해봅시다.

북방 민족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박원길 교수는 맥의 원래 명칭이 코리(Khori), 또는 꾸리(구리) 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고구려지요. 고구려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크게 보면 ‘(해가 비치는) 고을(나라)’ 또는 ‘구리(銅)’와 같은 금속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알타이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박시인 선생(1921~1990 : 서울대 교수)은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거란(契丹)이란 이름이 의미하는 쇠[빈철(賓鐵)]도, 금나라의 쇠[金]도 다같이 ‘새 아침’의 새[新]라는 말에서 온 것이며 몽골(蒙兀)이란 이름이 의미하는 은(銀)도 쇠의 일종이다(박시인『알타이 신화』232쪽).”

보세요. 고대의 역사에서 쥬신과 관련된 민족들은 하나같이 아침 해[태양]나 쇠[鐵] 또는 금속과 관련이 있지요? 이와 같은 것은 일종의 토템(Totem)입니다(무생물과 자연 현상 토템은 토템문화 후기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토템은 뛰르껭의 말처럼 ‘씨족의 상징과 표식(標式)이자 신(神)’으로 다른 씨족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상징이죠. 오늘날 태극기 등 국기(國旗)와 같은 것이죠.

그런데 이 토템도 부족이 분화될 때 다양한 형태로 분화됩니다만 가장 중요한 원형(原型)은 가지고 갑니다. 예를 들면 유서(劉恕)의 『통감외기(通鑒外紀)』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중국의 일부 부족의 재생(再生) 토템 가운데 청룡(靑龍)·적룡(赤龍)·백룡(白龍)·흑룡(黑龍)·황룡(黃龍) 등이 나오는데 이것도 일종의 토템의 분화로 원형인 용(龍)이 색으로 나눠진 경우지요. 또 인디언 모히칸 가운데 칠면조족은 칠면조·병아리·학(鶴)등으로 나눠지기도 하죠. 쥬신의 경우, 해[太陽]·구리[銅]·쇠[鐵]·은(銀)·금(金)·불[火] 등으로 나눠지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토템은 구성원들을 단단히 결합시키는 기능을 하여 부족의 역량이 흩어지거나 감소되는 것을 방지하게 됩니다. 만약 같은 토템이면 서로 친척, 또는 형제로 간주하는 것이죠.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문명화되어도 토템 표식은 어딘가 남아있다는 거죠. 한국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이 봉황(鳳凰)이죠? 중국 황제는 용(龍)이죠?

결국 해[ : 太陽]에서 쇠(금속 : 금ㆍ철ㆍ은ㆍ구리)와 불[火]이 나오고, 또 그 해[ : 太陽]에서 아침[朝]이나 동쪽[東]·밝음[明] 등이 나온 것이죠. 이제 이 맥에 대해서 이해가 되시죠?

다음으로 예(濊)라는 말을 분석해 봅시다.

예(濊)라는 말은 한자의 뜻 그대로 똥물의 뜻인가요? 천만에요. 세상 어떤 바보가 스스로를 똥물에 비유하겠습니까?

하기는 이상하기는 합니다. 수천 년에 걸쳐서 예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꾸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제가 유난히 별나서 일까요? 알 수가 없군요.

예(濊)의 발음은 훠[huò]·휘[huì], 또는 웨이[wèi] 등으로 나타나 맥(貊)보다는 오히려 더 ‘’나 ‘쇠’(‘서’)에 가까운 소리가 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웨이[wèi] 보다는 훠[huò]·휘[huì]가 고대 발음에 가깝다고 합니다(유 엠 부찐 『고조선』67쪽). 그 동안의 연구들을 토대로 보면 예(濊)는 크게 ① 쇠[金], 또는 관련된 금속(구리· 은·금), ② 해 뜨는 곳, ③ 부족의 중심지인 나라[國]라는 뜻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점들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예(濊)라는 말은 ‘’(‘쇠’ 또는 ‘서’)라는 말을 한자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쇠[鐵]라는 말이라면 우리가 맥을 분석한 것과 같은 결론이 나오므로 더 말할 것이 없지요. 만약 그렇다면 예와 맥은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 됩니다.

둘째, 예(濊)라는 말은 ‘’라는 말로 동쪽, 또는 ‘태양이 뜨는 곳’을 나타내는 말로도 볼 수 있죠. 즉 ‘’라는 말은 아사달·아사다라·서라벌·벌·서울(Seoul)·도쿄(東京 : 신라의 수도이자 현대 일본의 수도)·일본(日本 : 해 뜨는 나라)이나 조선(朝鮮 : 태양의 첫 빛이 비치는 나라)과 같은 말이죠. 아사달(阿斯達)은 몽골어나 거란어로 ‘확 트인 밝은 벌판이나 장소(나라)’를 뜻하는 ‘아사다라(Asa-tala)’와 일치합니다.

셋째, 언어적으로 보면 이 ‘예(濊)’로부터 카라(kala)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이 말이 나라[國]를 의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구려, 또는 고려나 가라(加羅)· 가야(伽倻)·한(韓 : 일본의 훈음 ガラ), 그리고 열하·요령성 일대에 널려 있는 카라(喀喇)·카사(喀佐)등의 지명도 모두 이 카라(kala : 濊)가 변형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카라(kala)는 ‘부족의 중심지’로 이 말에서 나라[Nkla : 國]가 나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죠[곽창권 『한국고대사 탐색』(일선출판사 : 1987)].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행 되는대로 다시 소개하도록 하지요.

여기서 첫째 항목과 둘째 항목을 한반도에 국한시켜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地理志」江陵條)에 “강릉(江陵)은 본래 예(濊)의 옛 나라로 철국(鐵國)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죠. 예(濊)를 철국이라고 한 것은 철(鐵)의 훈(訓)이 ‘쇠’ 또는 ‘서’이기 때문이죠. 같은 책(鐵原條)에 “철원(鐵原)은 원래 고구려의 철원군(鐵原郡)인데 고려 태조가 동주(東州)라 하였다”는 것이죠. 즉 철원(쇠의 벌판)이 동주(해 뜨는 곳)로 둔갑한 것은 이제는 쉽게 이해가 되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철(鐵)의 훈이 ‘’나 ‘쇠’(‘서’)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쇠와 해, 동쪽이 서로 구별 없이 섞여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뒷날 반도 쥬신의 국가 이름이 된 조선(朝鮮)은 만주족들이 스스로를 부르던 ‘쥬선(Jusen)’, 또는 ‘쥬신(Jüsin)’이나 아사달·아사다라·서라벌·벌·서울(Seoul), 도쿄(東京)·일본(日本) 등과 그 뜻이 일치합니다[이 쥬신, 또는 조선에 대한 명칭 분석은 숙신(肅愼)편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 일단 넘어갑시다].

결국 이 예(濊)라는 말은 ‘태양이 비치는 나라’, 또는 ‘태양의 아들[天孫族]들이 사는 곳’, 또는 ‘쇠를 잘 다루고 태양을 숭상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맥과 마찬가지로 철기(鐵器)와 해[太陽]가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맥이라는 민족은 철기로 무장하여 전투력이 강성하고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天孫族]이라고 믿는 민족이라고 일단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분명히 해 두어야할 것은 해(또는 불)와 아침, 쇠[鐵]가 함께 따라다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말들은 전설적인 제왕이자 쥬신(동이족)의 영웅이었던 치우천왕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분석만 가지고는 좀 부족한 듯합니다. 철기와 천손(天孫)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에는 다소 단순한 감이 있죠.

***(3) 단군신화의 본질**

지금까지 저는 예맥을 분석함에 있어서 ‘예’와 ‘맥’을 따로따로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나 ‘맥’이나 ‘철기로 무장한 강력한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의미가 되었지요. 그 말로 봐서 이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새[鳥]를 중시하는 민족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나 ‘맥’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알 수가 있죠. 이제는 이 예맥을 동시에 두고 분석해 볼까요?

고증학자인 이병도는 ‘예’와 ‘맥’을 따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예맥을 합쳐서 중국말로 ‘휘마[Houei-mai]’의 고대음 ‘ㅋ휘마[Khouei-mai]’를 따서 곰 토템, 신성을 의미하는 ‘고마’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일부 타당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베리아 지역이나 한국어·일본어에 이 어휘가 아직 살아있습니다. 즉 시베리아의 에벤키족은 곰을 ‘호모뜨이’라고 하고 한국어에서는 ‘곰’, 일본어에서는 쿠마(くま)는 곰[熊]을 의미하고 코마(こま)는 말[馬 또는 망아지(駒)]를 의미합니다. 말이나 곰은 모두 예맥과 깊은 관계가 있는 말이죠.

일반적으로 위[上] · 크다[大] · 신(神) · 신성(神聖)을 뜻하는 고어인 (감) · 검 · 금, 일본어의 가미(かみ : 神) · 가무(かむ), 곰[熊] · 신(神)을 뜻하는 아이누어(語)의 ‘카무(Kamui)’ 등은 모두 비슷한 뜻으로 곰[熊]에서 유래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려 · 고구려를 고마(コマ)라고 합니다[곽창권 『한국고대사 탐색』(일선출판사 : 1987) ; 『두산 대백과 사전』]. 검다[黑]는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일 수도 있죠. 일본어로는 구로(くろ), 몽골어로는 카르(kar), 터키어로는 카라(kara)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있는 곰과 관련된 고대 유적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쿠마’는 ‘크고 신성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만주 일대는 곰 토템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흑룡강 주변에 살아가는 종족으로 울치족(ульчи)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울치족은 어린 곰을 잡아다가 고이 기르고 나중에 자라면 곰을 강변까지 끌고 가서 죽여서 그 고기로 잔치를 벌입니다. 이 곰을 죽일 때는 궁수(弓手)는 단 한발에 아무런 고통 없이 죽여야 하고 그 광경을 보면서 울치족의 여인들은 한없이 슬피 웁니다. 그리고 난 뒤 곰의 머리뼈는 땅에 묻고 나머지 고기들은 전 부족들이 나눠먹고 잔치를 벌이지요. 울치족들은 이 과정을 마치 자신의 조상인 곰이 죽으면서 자신의 살을 후손들에게 먹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들에게는 곰은 가장 가까운 동물로서 단지 짐승 가죽을 쓰고 있을 뿐 과거에는 인간이었다는 것이죠(곽진석 「시베리아 오로치족의 신화와 신앙에 대한 연구」참고).

그런데 이들 울치족의 유적과 한반도 남동 해안 지대에서 발견되는 일부 유적들(암각화)이 거의 같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곰 토템은 주로 만주지역과 연해주 태평양 연안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분석해 보면 예맥이란 대체로 ① ‘곰을 신성시하는 민족으로 철기나 구리를 사용하여 강한 전투력을 지닌 민족’ 또는 ② ‘해 뜨는 동쪽의 밝은 나라(또는 그 나라 사람)’ 또는 ‘태양 또는 하늘의 자손[천손족(天孫族)]’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예맥이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한정 되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융합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기에는 예와 맥이 따로 쓰이다가 어느 시기에는 다시 합쳐지다가 또 따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예맥은 『한서(漢書)』ㆍ『삼국지(三國志)』ㆍ『후한서(後漢書)』에 이르면 예(濊)와 맥(貊)으로 따로 불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예맥으로 불리어졌다 말이죠]. 그래서 따로 사용될 때는 앞의 항목에서 분석한 것으로 봐야 하고 같이 사용될 때는 이병도식으로 합쳐서 분석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결국 단군신화(檀君神話)입니다.

따라서 단군신화란 철기(iron)를 잘 다루는 민족[예(濊) 나 맥(貊)]이 시베리아에 흩어져 사는 광범위한 곰 토템 부족과의 융합과정[예맥(濊貊)의 등장]을 신화로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찾아가는 고대 쥬신의 실체이죠.

환웅(桓雄)이라는 말도 그런 말이 아닐까요? 환웅을 한번 다시 써볼까요 ? ‘환(桓 : 하늘족 - 천손족) + 웅[熊 : 곰토템 부족]’ 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만은 알아둡시다. 아침·쇠(금속제련 : 금·은·철·구리 등)·해(태양)라는 말이 쥬신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속의 제련과 세공은 농경에 비교하여 상당한 손재주(섬세한 기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인·일본인들이 세계 최고의 손재주(섬세한 기술)를 가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급 반도체 기술이나 IT기술을 가진 것이겠지요. 그래서 아직도 치우와 황제(黃帝)의 싸움은 끝나지 않은 것이죠.

이상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중국인들이 쥬신의 뿌리를 ‘똥고양이’이라고 부른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 수많은 비밀들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이 예맥이라는 민족과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다른 민족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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