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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아직도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행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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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아직도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행세인가

[김주언의 '언터처블'] 박근혜 임무는 '아부지' 복권?

새누리당의 국가관은 무엇인가. 지난 16일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이 5.16쿠데타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미화해 국가관을 의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같은 날 이한구 원내대표는 국회대표 연설에서 '신 매카시즘'을 되살리려는 듯 '종북 척결론'을 주장하며 일부 야당 의원의 국가관을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은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한 군사쿠데타를 옹호하고 '반공'을 앞세워 국민을 윽박지르는 것이다.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압하던 유신독재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것만 같다. 대통령을 꿈꾸는 박 의원의 꿈이 이뤄져 새누리당이 정권을 유지한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의원은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해서는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라고 되풀이했다.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찬양했던 과거의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부지'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 곳곳에 배어 있다. "피해를 보고 고통 받은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했지만, 진정성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의원에게 반성과 성찰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는 민주통합당의 논평은 정곡을 찔렀다.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5.16쿠데타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전두환의 12.12쿠데타도 '최선의 선택'이었고, 일제의 식민지지배도 근대화 혁명이 될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은 아직도 '아부지' 박정희가 1인 영구집권을 획책하던 유신독재 체제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대통령의 부인'을 일컫는 말.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사망 후, 당시 22살이었던 박근혜 의원이 사실상 박정희 전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수행했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유신 공주'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의원의 역사인식은 그 당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의 비틀린 역사인식에 대해 '헌법 모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며 국민으로서는 치욕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자신을 희생했던 민주열사들이 무덤에서 통곡할 일이다. 트위터에 올라온 "5.16을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지 딸의 판단이 옳다고 보는가!", "군인이 총칼로 정권탈취해서 독재한 것이 최선이었다니", "이 나라의 초석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총칼 앞에서도 가슴속에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민"과 같은 촌평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박 의원이 '퍼스트레이디'였던 시절의 유신헌법 전문에는 '5.16혁명'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1987년 6.10시민항쟁으로 개정된 헌법에는 삭제됐다. 유신헌법에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로 되어 있었다. 현행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개정됐다. 헌법 전문은 건국이념과 역사, 정통성, 국가존립 이유와 목적을 명시한 '국가의 바이블'이다. 전문에서 '5.16혁명'이 삭제된 것을 박 의원이 모르는 것은 아닐까.

박 의원의 역사인식은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한 찬양과 옹호로 일관돼왔다. 박 위원은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발표에 대해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법살인' 당한 8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법원에서 정반대의 두 가지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뭐가 진실인가. 역사적 진실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인혁당 사건은 또다시 '진실'로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부지'를 복권하는 것이 박 의원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 박근혜 의원이 1979년 쓴 <새마음의 길>. 좌측 상단, 여학생들로 부터 군대식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새마음의 길

박 의원의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한 인식은 "과연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라는 질문으로 압축된다.

"그때 상황이 너무나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우리가 흡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혁명규약에 보면 '기아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하고'.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기아선상에 헤맸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구국을 위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1989년 MBC 인터뷰에서 주장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는 명제는 박 의원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신독재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한겨레>가 공개한 그의 일기 몇 구절을 보자.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1981년 10월 28일)

이한구 원내대표의 '종북척결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화염병을 던지며 반항하고, 선배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온통 도덕, 질서, 가치관 등을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은 오늘의 이 현실은 그동안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이 사회는 지금 단단히 치르고 있는 것.' (1990년 5월 15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에 대한 얄팍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의원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박 의원을 둘러싼 인사들의 면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5.16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한 교과서를 편찬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경선 캠프 일원으로 참여했다.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포은에게 물으면 역성혁명이라고 하겠지만 세종대왕에게 물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박 전 위원장도 세종대왕과 같은 입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에 갇힌 세종대왕의 꾸짖음이 들리는 것 같다. 이 밖에도 박근혜 캠프 주변에는 비슷한 인물들이 많다. 만약 이들이 권력 주변에 포진한다면 헌법 전문에 '5.16혁명'이 다시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과거의 거울이다. 박 의원의 역사관을 보면 그의 미래 구상에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총칼로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행위를 옹호하는 역사인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이다. 국민 탄압과 철권 폭압 정치도 결과만 좋으면 정당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박 의원은 '5·16옹호'를 넘어 '5.16 계승·발전'을 소명으로 여긴다. 그는 대선공약을 발표하면서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말했다. 5.16쿠데타는 이제 단순히 '구국의 혁명'에서 '국민복지를 위한 위대한 혁명'으로 격상된 셈이다. 박 의원은 '아부지의 유업'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충실한 '친박계열'로 알려져 있다. '종북주의자'가 아닌 '종박(從朴)주의자'인 셈이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진출해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왜곡된 국가관,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은 이 말을 박 의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어 한다.

"대선을 앞두고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미화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모독하고 인혁당사건 조작에 대해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부인하는 사람이 국회에 진출해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왜곡된 국가관,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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