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사업 개발 의혹과 관련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15일 국회 법사위에서 혼쭐이 났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연루 의혹과 감사원의 부실감사 의혹을 집중 추궁했지만, 전 원장은 이 의원의 관련성을 모두 부인하고 "미흡한 것을 인정하지만 열심히 했다"고 강변했다.
***한나라 "전대월 1백20억 사례비, 여권 인사들이 갈라먹으려 한 것"**
이날 법사위의 최대 쟁점은 단연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었다. 감사원은 11일 이 의원을 전격 조사했음에도 12일 중간발표에서 검찰 수사요청 대상에 이 의원을 제외시켜 야당은 이날 이 의원의 관여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에 대해선 수사를 요청하면서 의혹정도가 훨씬 짙고 문서에 물증으로 나와 있는 이광재 의원에 대해선 관련 사실을 부인하며 수사요청을 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감사원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정란에서 병아리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며 "이 사건은 '이광재 게이트'로 갈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성조 의원은 "이광재 의원을 감사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11일에 전격 감사를 했다"며 "감사를 한 것 자체가 혐의가 있거나 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닌가"라고 질의해, 이 의원을 직접 감사했던 감사원 국장에게 "전대월과 허문석을 알게 된 경위, 전대월에게 허문석을 소개한 이유, 철도청장에 연락한 사실 여부, 유전사업을 최초로 알게 된 경위 등에 대한 여러 사항을 확인차 조사한 것"이라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주호영 의원도 "이 의원을 감사하면서 핵심인사들의 대질 심문이나 증언 내용 녹취를 했나"고 물었고 이에 감사원측에서 "대질심문은 없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녹취를 하지 않는다. 증언내용에 문답을 받고 사인을 했다"고 답하자, 주 의원이 "그게 조사를 한 것이냐. 이 의원의 주장을 들은 것이지"라고 비꼬았다.
주 의원은 이어 "이기명씨와 허문석은 고교 동창이고 이광재 의원과 전대월은 같은 고향의 중학교 동기"라며 "철도청이 전대월에게 '사례비'로 1백20억을 주기로 했는데, 이 돈이 제대로 건네졌다면 누가 썼겠나. 관련 인사들이 갈라 쓰기로 한 것 아니었겠나"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공무원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보신을 할 텐데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했겠나"고 철도청의 사업 참여 배경을 이 의원과 관련지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권광진은 철도청에 사업참여를 제의하기 전, 석유공사에 사업을 제안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당시 큰 힘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따라서 전대월과 이광재 의원과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전대월을 찾은 것 아니냐. 이광재 의원을 소개 받고 힘을 빌리기 위해 찾은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전윤철 "외압의혹 검찰 조사로 밝혀질 것"**
이같은 야당 의원들의 집중적인 공세에 전윤철 감사원장은 "이광재 의원의 관여 여부는 검찰이 추가 조사를 하면 밝혀질 텐데 몇 가지 외압에 대해선 감사원도 상당히 고심을 했다"면서도 이 사건과 이 의원과의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다.
전 원장은 "회의록에 이광재 의원이 제의했다는 부분은 허문석의 입을 빌려서 나왔다는 게 왕영용 본부장을 통해 확인됐다"며 "이광재 의원의 직접적인 제의는 아니었다"고 이 의원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한 배경을 밝혔다.
전 원장은 권광진이 '전대월을 찾은 이유가 이 의원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도 "권광진이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전대월을 찾았는지 의심스러워 물어봤더니 권광진은 '전대월이 부동산 업자라 돈(현금)이 많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의 대출과정에서 이 의원의 압력행사 사실이 발견됐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발견이 안됐다"며 "주거래 은행이 철도청장의 확약서를 받고 대출한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원장은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기자회견과 대정부질문을 통해 제기했던 여러 의혹들을 모두 부인했다. 전 원장은 "외교안보위가 철도청에 유전사업을 제안했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얘기이고, 한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전의 인수협정을 추진했다는 것도 근거가 없다"면서 "사할린 6광구가 8백억원에 인수가 가능하다는 것도 전대월의 자료를 인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전 원장은 "이 사건은 철도청 관련 직원들의 행정, 사업 결정 미스와 일부 사람들의 사기 내지는 배임에 의한 공모로 막연하게 보고 있다"며 "이 문제는 검찰이 명명백백하게 파헤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 원장은 철도청의 사업참여 배경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한 사실 파악 여부가 미흡한 것은 솔직히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한나라 "감사원이 핵심인사 도주, 조장-방조"에 전윤철 "과하다"**
감사원 감사 도중 이 사건의 핵심인사인 허문석씨가 출국한 것 등을 들어 감사원의 감사 의지에 대해서도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이 사건의 핵심은 철도청 간부들이 정상적인 사람임에도 왜 사업목적에 맞지 않는 곳에 투자했나는 것으로, 이것만 밝히면 된다"며 "그런데 감사원은 핵심인사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의 시간을 주기 위해 감사를 했다"고 맹비난했다.
김 의원은 "핵심인물인 허문석씨가 외국으로 도망가도록 방조한 것이 감사원의 가장 큰 실수고, 이광재 의원에겐 면죄부를 줬고, 전대월은 숨었다"며 "결국 감사 대상원들에게 무서운 감사원으로 느껴지는 게 '감사합니다'할 때의 감사원, 땡큐원"이라고 비꼬았다.
김 의원은 "감사원이 11월20일부터 우리은행에 자료요구를 해서 감사원의 감사 착수 사실이 철도청과 KCO에 알려 졌다"며 "감사에 대한 증거 조작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먼저 철도청장에게 전화 한통해서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감사원측에선 "우리은행부터 감사를 시작한 경위는 통상적으로 감찰활동 수행 시 가급적이면 철도청이 내용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철도청이 알게 되면 여러 가지로 핵심을 파악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어서 외곽부터 조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감사원장도 "전대월은 감사원 시작 전부터 도망을 다니는 자였고, 허문석은 상당한 시간을 외국에서 사는 사람이다. 외국인에 대해선 출금을 시키는 법적 요건에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해명한 뒤, "물론 의원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다. 공개석상에서 도주를 조장-방조했다는 말은 과하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부정확한 수치 보고에 답변하며 허둥대기도**
그러나 감사원은 현황 보고 자료의 수치가 맞지 않아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고 자료 3페이지에는 '철도교통진흥재단이 우리은행에 대출신청을 한 액수가 2백70억원이고 그 가운데서 1백20억원을 전대월씨에게 사례비로 지급하려 했다'고 적혀있던 반면, 15페이지에는 '재단이 우리은행에 3백90억원의 대출을 요구하고 그 가운데 2백70억원이 투자지분, 1백20억원이 사례금'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에 기획관리실장이 "15페이지의 3백90억원이 맞다"고 밝혔고, 전 감사원장은 "처음에 2백70억원의 대출을 요구하고 뒤에 추가로 대출을 더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명 과정에서 전 원장이 뒷줄에 앉아있던 국장급 인사들을 질책하는 등 당황한 모습이 역력히 배어났고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뒷줄에 앉아있던 국장급 관계자들이 종종 답변을 해 최연희 위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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