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중국 대륙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면 도대체 어떤 소질의 사람이어야 할까? 더구나 극도의 혼란기에 군웅이 할거하고 정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모든 인생을 걸어야 하는 그런 판국에 어떤 배포, 배짱을 가져야 황제의 자리에 등극할까? 여기 빈농의 출신으로 탁발승이 되어 전국을 떠돌던 한 사나이가 드디어 중국을 통일하고 명(明)이라는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군주독재권을 확립하고 공포정치를 실현하며 무수한 개국공신, 새로운 나라를 위해 필요한 수많은 인재를 왕권의 잠재적 도발자로 간주하여 죽였습니다. 그중엔는 사주팔자명리학의 대가, 투파명리학을 전수한 적천수의 저자 유백온도 예외일 수는 없었죠.
이와는 대조적으로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누르하치는 처음에는 공손하게, 차츰차츰 야금야금 명나라를 공략하다가 드디어는 대국인 중국 본토를 집어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극도의 혼란기에 나라를 세운 두 인물의 배포와 소질을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주원장 [朱元璋]**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초명(初名) 흥종(興宗). 재위연호(在位年號)에 의해 홍무제(洪武帝)라고도 한다. 호주(濠州:安徽省 鳳陽縣)의 빈농 출신으로, 17세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托鉢僧)으로 지내다가 홍건적(紅巾賊)의 부장 곽자흥(郭子興)의 부하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어 원(元)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난징[南京]을 점령하였다. 그뒤 각지의 군웅들을 모두 굴복시켜 명나라를 세우고 연호를 홍무(洪武)라 하였다.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한민족(漢民族)의 왕조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의 확립을 꾀하였다. 중앙에는 1380년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하여 육부(六部)를 독립시키고 도찰원(都察院)·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를 설치하여 이들 기관을 황제 직속하에 두었다.
지방에도 포정사사(布政使司:行政)·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軍事)·안찰사사(按察使司:檢察)를 병립시키고 이들을 중앙에 직결시켜 황제는 이 통치기구 위에 군림하여 절대권력을 장악하였다. 또, 24인의 황자(皇子)를 전국의 요지에 분봉(分封)하여 제실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한편, 농민통치에도 힘을 기울여 전국의 농촌에 이갑제(里甲制)를 설치하고 부역황책(賦役黃冊)과 어린도책(魚鱗圖冊)을 만들도록 하여 조세·부역의 징수를 공평히 하고 정책의 침투를 꾀하였다. 그러나 그가 꾀했던 군주독재권의 강화는 공포정치에 의해 실현되었기 때문에 만년에 고독하게 살다 병사하였다.
***누르하치 [奴兒哈赤, Nurhachi]**
성 아이신줴뤄[愛新覺羅]. 시호 처음에는 무황제(武皇帝), 나중에는 고황제(高皇帝). 묘호 태조(太祖). 만주의 푸순[撫順] 동쪽 훈허강[渾河], 싱징[興京] 분지의 한 곳에 위치한 건주여진(建州女眞)의 한 추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1583년 처음으로 독립을 위한 군사를 일으켜 수 년 사이에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1587년 쑤쯔허[蘇子河] 상류에 최초의 성(城)인 싱징라오청(興京老城)을 구축하였다.
명에 대해서는 공손한 태도를 취하여 1589년 명으로부터 도독첨사(都督僉事)로 임명되었으며, 1595년 용호장군(龍虎將軍)의 칭호가 수여되었다. 1599년에 해서여진(海西女眞)의 하다[哈達]를 멸망시키고, 이어 1607년에는 후이파[輝發], 1613년에는 우라[烏拉] 등을 병합하여 여진의 대부분을 통일하였고, 1616년 한(汗)의 지위에 올라 국호를 후금(後金), 연호를 천명(天命)이라 하였다. 그 동안 여진문자를 발명하고 팔기제도(八旗制度)를 제정하였으며, 도성을 혁도아랍(赫圖阿拉)으로 옮겼다.
후금의 성립은 명에 커다란 위협이 되어 마침내 명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1618년에 명의 푸순[撫順]을 급습하여 취하고, 이어 칭허[淸河]를 공략하여 빼앗았다. 1619년에는 명과 일대 결전을 각오하여 진격, 푸순 관외의 사르프전투에서 명군 10만을 격멸하여 대승하였고, 1621년에는 랴오둥[遠東]을 공략하여 랴오허강[遼河] 이동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랴오양[遼陽]에 천도하였다가, 1625년에 다시 선양[瀋陽]으로 도읍을 옮겼다. 1626년에 명의 영원성(寧遠城)을 공격하였으나 명장 원숭환(袁崇煥)의 고수로 실패, 부상만 입고 후퇴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 해 4월 몽고의 파림(巴林)부를 직접 공략하다가, 도중 9월에 병사하였다. 그가 확립한 청조(淸朝)의 기초 위에 그의 아들들이 그 대업을 완수하였다.
<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
자, 운명요소로 이 두 인물을 비교합니다.
① 주원장
운명요소 : 무진년 임술월 정축일 정미시 ( 戊辰年 壬戌月 丁丑日 丁未時 )
② 누르하치
운명요소 : 갑오년 무진월 무신일 정사시 ( 甲午年 戊辰月 戊申日 丁巳時 )
***1. 소질 검색**
① 주원장(戊->壬->丁ㆍ丁)
먼저 정과 임(丁<-壬)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극히 법도를 따지는 소질입니다. 그 자신 기존의 법대로 지키고 그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다가 결국 자기가 세운 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극히 교만한 소질입니다.
두 번째는 정과 무(丁<-戊, 戊->丁)의 관계입니다. 천재감별법에서 이 성질은 기술창조개발형의 특A급 천재형입니다. 개혁과 창조가 특징이며 더구나 위의 임(壬)을 제압하므로써 기존의 법을 자기의 법으로 대체, 개혁하여 자기의 왕국을 세우는 대단한 소질입니다. 사주용어로 상관견관이라는 이 사주는 왕조 시대에는 극히 꺼리는 사주죠. 왜냐하면 기존의 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그런 사주는 결국 반역을 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② 누르하치(甲->戊ㆍ戊->丁)
여기서는 무와 갑(戊<-甲, 甲->戊)의 관계가 특이합니다. 이 관계는 상사에게 대하여 매우 불복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무례한 소질입니다. 그리고 갑->무의 태도는 간섭해서는 안될 일이나 인사에 무리하게 끼어들어서 간섭하는 소질입니다. 결국 겉으로 공손한 척하는 것은 하나의 계략이고 원래 속마음은 이렇게 불복종, 저항적인 성격이 있어서 대명나라를 공략하게 된 것이죠.
③ 소질 종합 판단
주원장은 자기의 법으로 기존의 법을 깨부수는 소질이며 누르하치는 기존의 법에 공손하게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자기의 불복종, 간섭하는 저항적인 성격으로 큰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소질표**
***2. 욕망 검색**
① 주원장(丁일에 戌월)
창의 개혁 욕망이 있습니다. 천간에 토(戊)로 투사되어 훌륭한 동기 부여로 작용합니다. 사업욕, 교유욕이 있습니다. 천간에 금(庚,辛)으로 투사되지 못하여 잠재 의식 속에 들어가므로써 일평생 만족 모르는 사업욕으로 시달립니다.
② 누르하치 (戊일에 辰월)
자기주체욕과 보스 리더 욕망이 있습니다. 천간에 목(甲)으로 투사되어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3. 본능 검색**
***본능표**
***4. 개성 검색**
***개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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