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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와 키신저: 미ㆍ중 화해의 위대한 두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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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와 키신저: 미ㆍ중 화해의 위대한 두 주역

CEO출신 역술인 김남용이 본 '역사의 라이벌' <46>

중국은 패권국가들 중 유일하게 실리를 잘 따지는 국가입니다. 동서가 한창 힘자랑을 하고 있을 때, 특히 소련이 별 소득 없는 이념과 공산주의 종주국이라는 허명에 붙들려 있을 때 중국은 슬며시 미국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밥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더 이상 굶고 사는 백성의 저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중국이 만약 70년대 초에 미국과 화해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 즉 공산주의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는 절묘한 공존을 택할 수도 없었겠죠. 이렇게 개인이나 국가나 시기를 잘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그 시기를 60년대에 일찌감치 놓쳐서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일의 최적기는 자기가 힘을 갖고 있을 때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행할 수 있어야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은래, 만년 2인자. 그러나 막후에서는 유일한 실력자. 언제나 조용하게, 냉철하게,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의 틀 속에서 그의 교섭은 늘 현실성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남과 자기를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필요성과 중국의 필요성이 빅딜의 성공 가능성을 예고하였으므로 이를 간파한 주은래가 움직이고 따라서 모택동이 움직이고 따라서 중국이 움직인 것입니다. 실로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한 위대한 공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편의 막후 실려자 키신저, 나폴레옹 실각 후 유럽 외교가를 석권한 오스트리아의 대외교가 메테르니히를 존경한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 투쟁, 전쟁보다는 평화의 정착을 염원한 그의 신념과 정책의 실효성이 맞아 떨어져 기어코 이 두 주역은 세계 평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우언라이 [周恩來(주은래), 1898~1976.1.8]**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에서 출생하였다. 지주·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1913년 톈진[天津]의 난카이[南開]중학에 입학하였으며 졸업한 뒤에도 계속 공부하기 위하여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등에서 청강하기도 하였다. 톈진의 난카이대학 재학 중 5·4운동에 참가하여 투옥, 퇴학당하였고 1920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1922년 중국공산당 파리지부(支部)를 창설하였고,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를 거쳐 귀국하였다. 1924년 황푸[黃織]군관학교 정치부 대리에 발탁되었고, 1927년 북벌군에 호응하는 상하이[上海] 봉기를 지도하였다.

그 후 장제스[蔣介石]의 반공 쿠데타를 피하여 우한[武漢]으로 가서 노동자의 무장규찰대(武裝糾察隊)를 조직, 난창[南昌]폭동을 지도하고, 광저우[廣州] 코뮌을 조직하였다. 1931년 말 광시성[廣西省]의 소비에트구(區)에 들어가 군사부장·제1방면군 정치위원으로서 정보공작과 국민당군의 포위에 대한 전략을 지도하였다. 1936년 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서 장정(長征)에 참가하였고, 시안[西安] 사건 때에는 국공(國共)내전의 중단과 항일연합전선의 결성에 힘썼다.

항일전이 발발한 후에는 우한·충칭[重慶]에서 공산당의 대표로서 국민정부의 국방위원회·군사위원회 위원 등 요직에 있으면서 국공관계의 처리를 맡아 탁월한 정치적·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1949년 4월 공산정권 수립 후 문화대혁명을 거쳐 최후까지 공산당에서 지도적 위치를 유지하면서 27년간 총리(1958년까지 외교부장 겸임)로서 국내외의 중요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였다.

***키신저 [Kissinger, Henry Alfred, 1923.5.27~]**

독일 퓌르트 출생. 1938년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고, 1943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1954년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62년 같은 대학 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저서 《핵무기와 외교정책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1956)으로 대량보복전략을 비판하면서, 전술핵무기의 한정적 사용에 의한 유연대응전략을 제창함으로써 전략연구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69년 R.M.닉슨 행정부 발족과 함께 대통령보좌관 겸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여 국무부의 통상적인 외교경로를 무시하고, 이른바 ‘키신저외교’를 전개하였다.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닉슨 방중(訪中)의 길을 열었고, 이어서 국무장관에 취임, 1972년 중동평화조정에 힘썼으며,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접촉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그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워터게이트사건 후 G.R.포드 행정부에도 유임되었으나, 1975년 대통령보좌관직을 그만두고, 1977년 국무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은퇴 후에도 국제정치의 연구와 평론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73·1974·1979·1983년 내한한 바 있다. 저서에 《선택의 필요성 : 미국외교정책 전망 The Necessity for Choice:Prospects of American Foreign Policy》(1961) 《미국의 외교정책 American Foreign Policy》(1969) 《백악관 시절 The White House Years》(1979) 등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

자, 이 두 주역을 운명 요소로 비교합니다.

① 주은래
생년월일 : 1898년 3월 5일 오시
운명요소 : 무술년 을묘월 정축일 병오시 ( 戊戌年 乙卯月 丁丑日 丙午時 )

② 헨리 키신저
생년월일 : 1923년 5월 27일 묘시
운명요소 : 계해년 정사월 경자일 기묘시 ( 癸亥年 丁巳月 庚子日 己卯時 )

***1. 소질 검색**

① 주은래 (戊->乙->丁<-丙)

먼저 정과 을(丁<-乙)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은 천재감별법에서 기발반짝아이디어형의 A급에 속합니다. 독창성과 관찰력, 감수성과 이해력이 모두 뛰어난 소질입니다.

두 번째는 정과 무(丁<-戊, 戊->丁)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은 기술창조개발형의 특A급에 속합니다. 다재다능,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특히 총명합니다.

이런 소질들이 총합되어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② 키신저 (癸->丁->庚<-己)

먼저 경과 기(庚<-己)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도 자료수집아이디어형의 A급에 속하는 소질입니다. 이 소질은 특히 지성이 있고 원만합니다. 모든 것을 무리하지 않고 순래대로 풀어가는데 술술 잘도 풀립니다.

두 번째는 경과 정(庚<-丁)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법대로 지키면서 당당하게 분수를 알고 처신합니다. 그 다음 경과 계(庚<-癸, 癸->庚)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별로 좋은 관계는 아닙니다. 호의를 가지고 남의 일을 추진해도 의외로 칭찬은 커녕 비난으로 돌아오는, 약간 손해보는 소질입니다.

***소질표**

***2. 욕망 검색**

① 주은래 (丁일에 卯월)

명예욕, 사람, 아이디어 활용욕이 있습니다. 천간에 목(甲,乙)으로 투출되었으므로 훌륭한 동기부여로 작용합니다.

② 키신저 (庚일에 巳월)

리더욕, 보스욕이 많습니다. 천간에 화(丁)로 투출되었으므로 훌륭한 동기부여로 작용합니다.

***3. 본능 검색**

***본능표**

***4. 개성 검색**

***개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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