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양국이 또다시 먹구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ㆍ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대인 일본의 반응은 지극히 밋밋하다. 일본의 매스컴은 2001년 '새로운 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교과서(이하 새역모) 때와는 달리 이 문제에 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질 않다. 이에 따라 일반 일본인들의 반응에는“한국이 또 병이 도졌군!”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번의 새역모 사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불을 지른 일본 우익과 일본정객들의 승리라 할 것이다. 조금만 휘저으면 이내 확 달아오르는 한국인의 속성을 잘 이용하고 있는 저들의 각본대로 우리는 또다시 저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지 않은가.
매년 1백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일본을 드나든다면서, 그 많은 일본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우리는 하찮은 몇몇 우익분자들의 술수에 휘말린 채 국가전체가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반복해야 하는가? 저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방법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대응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인가?
우선 과거 속에서 우리의 나아갈 지평을 고민해보도록 하자. 2001년 새역모가 처음 등장할 당시, 우리 매스컴은 온통 “일본이 또 일을 저질렀다!”는 보도로 일관하였다. 일본의 매스컴 또한 우익분자들의 일거수일투족 보도에 혈안이었으니 그 결과 얻어진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명의 한 출판사와 저급한 발상이 한일 언론덕에 12%의 채택률을 공언할 만큼 급속히 세상에 등장하질 않았던가. 그렇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0.03%라는 채택률은 우리의 향후 대응점 모색에 있어 중요한 분석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채택률이 저조했던 가장 주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일본인들이 이웃나라인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에 새역모에 대해 No!를 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당시 “일본열도의 총 우익화!”라는 비난 속에서도 함구하고 있던 일본인들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새역모에 대해 철저한 배척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분노에 붉게 물든 얼굴이 이제라도 터질듯 해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일본인들. 그들에게 있어 침묵은 분노해 날뛰는 것보다도 더욱 강한 분노의 의사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4년후인 2005년 현재, 새역모의 집요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 아니었던가. 4년동안 설욕전을 위해 분루의 칼을 갈아왔을 새역모. 그렇다면 그에 비해 우리의 준비는 과연? 이미 충분히 예견된 저들의 도발에 대해 우리가 미리부터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해 왔다면, 지금처럼 또다시 나라 전체가 온통 들썩이며 달아오르는 모습을 보였겠는가….
새역모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법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있지 않다. 결자해지라 하지 않았는가. 새역모 문제는 바로 일본인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 또한 그래야만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시대에 역행하는 치졸한 저들 일본 정계에 대해 결자해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선진국가 일본임을 자긍하는 일반 일본인들의 양식에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자국 정객들의 정치행태에 진저리를 내며 한국에서의‘낙선운동’등 국민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보며 부러워하는 일본인들. 하지만 그들은 웬만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이른바 ‘안보파동’이후, 사회문제에 대해 급속도로 무관심해진 일본사회는 현재 극심한 개인주의와 무기력증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각색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들 과연 뜻대로 될까? 대세적 정의(Justice)는 어디를 가도 정의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당연히 일본사회에도 적용된다. 즉 일본정부가 치졸해질수록, 정의에 반(反)할수록,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일본인들의 자국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감 또한 심화되어져 간다.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해서 일본인들의 건전한 사고력과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역모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여기, 이들 일본인들에게 크게 좌우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요구와 대응 외에, 바로 이들 일본인들이 스스로 전면에 나서게끔 그들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가? 먼저 우리의 타깃대상을 두 부류로 분류해보자.
먼저 일본의 행동하는 양식들. 일본에도 역사를 바로 알고, 또 바로 알도록 이끌려는 개인이나 단체가 적지 않은데 바로 이들이 최우선 대상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첫번째로 일본의 교육현장을 지키는 일선교사들. 2차대전 패전후, 일본진주 연합군 사령부(GHQ)에 의해 선조들의 만행에 대해 교육받아온 이들은 현재 일본정부에게는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설령 우익분자들과 정객에 의해 새역모가 채택되어진다 해도 일선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는 이들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본사회 전역에서 살아숨쉬는 다양한 시민단체와 개인활동가들. 비록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소규모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죽은 사회 일본 전역에서 맑은 숨을 뿜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의 학부모들.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이들 학부모들은 일선교사들 처럼 패전후 GHQ에 의한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이러한 그들이 자신들의 2세들에게 잘못된 사관을 주입시키려 함을 수수방관할 리 만무하다. 우리는 바로 일본의 이러한 세력들과 더욱 긴밀히 협력, 이들이 스스로 자국정부의 사악함을 질책하며 계도해 나가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다음 부류로는 일반 일본인들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일반 일본인들에게 직접 다가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어렴풋이나마 과거 선조들의 만행에 대해 알고 있는 일본인들, 그들도 우리들(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며 동정한다. 그러나 비열한 자들의 꼼수가 교묘해질수록 자신들의 국가, 일본의 어제와 오늘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는 마치 아무리 못난 내 자식이라도 남에게 이를 들을 때의 기분과 같다 할 것인데 바로 이 부류에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속해있다. 실제로 이들은 선조들의 죄과에 면목없어 하지만, 매스컴으로부터 반일시위를 접하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지 않는가!”,”나도 일본인이다!”라는 자세로 돌변하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포용함과 동시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게끔 더욱 각별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방법은? 일본인들의 일반정서와 감정에 호소해 들어가는 재치있는(tactfully) 접근방법이 주효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피해를 극구 꺼리며 주위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중요한 미덕으로 삼고 있는 일본사회임을 활용, 일본인들 스스로가 작금의 일본정부의 행태를 이에 비춰 생각해보도록 유도해나가는 것이다. 자신들의 도덕과 전통에 미뤄볼 때 자신들의 정부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주변국가들이 입는 피해와 고통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시정해 나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비해 차분하고 꼼꼼하게, 시간을 들여 꾸준히 가꿔나가는 치밀함이 부족하다. 이는 이번 새역모의 치밀한 준비와 우리의 허술한 대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새역모 사태를 포함, 과거사문제는 이미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비록 이번 일이 또 그럭저럭 마무리된다 해도 저들의 비열한 책동은 더욱 집요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후에 분통을 터트리며 감정에 편승하는 미숙함을 반복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씨를 뿌려 꾸준히 가꿔나가는 '농심(農心)을 견지해 나가야 마땅하다. 양국의 건전한 다수 세력들이 상시적이며 더욱 폭넓게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씨를 뿌리며 가꾸어나가야 한다.
요약하자면 일본사회의 침묵하는 대다수를 생각하자. 뚜껑이 열리기 전에 다각적인 준비는 하되, 너무 달아오르지는 말자. 오히려 그 에너지를 일본내 살아있는 양식들이 더욱 폭넓게 활동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데 활용하자. 아울러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반 일본인들이 우리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자국정부를 계도할 수 있게끔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자. 우리의 잦은 감정분출은 저들에게 쾌재를 안겨줄 뿐아니라 우리의 아군도 잃고 마는 참패를 초래하기 쉽다. 그보다는 일본의 양식을 지키려는 일본인들과 협력, 일본이라는 국가를 사물화하며 농간하는 저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도록 냉정하고 치밀, 꼼꼼하게 준비해 나가자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