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유럽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정치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나흘간에 걸친 이라크전 반전국가 순방은 더 이상 ‘Old Europe’과 ‘New Europe’을 구분하지 않고 손상된 대서양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일종의 상징정치였던 것 같다. 이는 오히려 지난 미 대선의 존 케리 후보를 연상시켰다.
부시 미 대통령은 유럽 순방 첫날 유럽연합(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국과 유럽은 합의의 시기에 있다”고 말했다. 또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프랑스, 독일 등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라크 문제로 냉각됐던 관계가 복원됐음을 강조했다. 이밖에 유럽과 미국의 협력은 21세기 안보의 기반이며 그 어떤 세력도 분리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4년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들을 수 없었던 말이다. 지난해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나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유럽과의 관계를 이처럼 칭송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집권 2기 들어 이라크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구체적인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를 제쳐두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던 지난 2003년의 부시 대통령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 집권 1기의 메시아적 군국주의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유럽이 놀라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이번 유럽순방은 유럽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상징정치를 향후 유럽연합이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이냐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은 상징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예컨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 공군기지 인근의 소도시인 마인츠에서 열린 독-미 정상회담에서 슈뢰더 총리는 “우리는… (서로) 연결된 지점에 집중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는데도 부시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다른 곳을 응시하고 등을 돌린 것으로 슈피겔은 보도했다. 이와 달리 슈뢰더 총리가 연설을 할 때 부시 대통령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상징적인 표현을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레바논 문제와 관련, 의견 일치를 보긴 했으나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도 브뤼셀에서 있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독일 언론은 전했다.
이와 달리 환경 보호와 팔레스타인 문제 등 유럽인들이 원하는 바를 부시 대통령은 이미 파악하고 언론을 활용하는 ‘세련된’ 상징정치를 보였다. 예컨대 브뤼셀의 콘서트 노블(Concert Noble) 연설장에 벨기에 측 안전요원은 전혀 없었고 백악관측 경호원들이 모든 방송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연설대 뒷편에 미국을 상징하는 붉은색 휘장을 둘러 유럽 한 복판에 백악관이 들어선 효과를 냈다고 슈피겔은 보도했다. 이 밖에 Fox와 CNN의 대통령 수행 기자단을 프랑스와 독일 정치권의 수뇌부보다 앞자리에 앉혀 부시 대통령을 위주로 화면을 구성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잘 짜여진 한편의 정치적 연극이었던 셈이다.
물론 유럽에 손을 내밀어 경의를 표하는 부시 대통령의 상징정치는 재정적인 이유로 유럽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 계산이라는 지적이다. 이라크 전후재건 문제외에도 초강대국 미국은 더 이상 제2의 전쟁을 치를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세계는 독재자나 서구 민주주의의 본산인 유럽이 반대하는 대통령을 세계 민주주의의 지도자로 인정하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라크전이 성공한 전쟁이고 옳은 전쟁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유럽의 변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한편, 부시 미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자신의 이름이 남을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토 방문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던 부시의 유럽 순방은 유럽의 위상이 변화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긴 하다. 집권 2기의 부시 대통령은 유럽의 도움 없이 외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초강대국 미국의 독선이 결말을 향해 치닫는 것 아니냐라는 이른 판단도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나토 개혁과 이란 핵문제 해법, 이라크 재건 참여, 대중국 무기 금수 해제 등에 대한 이견은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이란 핵문제를 협상으로 풀고 우라늄 농축 포기 대신에 재정지원을 하자는 슈뢰더 총리의 입장은 실질적으로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문제를 제외하고 주요 현안에서 유럽과 미국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섰다.
또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환경 공동선언문도 실질적인 효력은 없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미국은 온실가스가 기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했을 뿐, 공동선언문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의무조항도 두지 않아 사실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독일 킬 대학의 환경연구가 라티프 교수는 지적했다. 환경 보호는 석유를 대신할 만한 대체 에너지를 통해서만 가능한 바, 석유 로비스트들에 둘러싸인 부시 행정부는 실질적인 환경보호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동선언문에는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 활동 확대, 에너지 공급 보안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는 언급된 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대범한 민주주의 전도자’ 부시 대통령과 ‘까탈스런’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CNN의 화면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 상업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라는 정보 상품을 자국 방송 시장에 판매한 셈이다. 특히 브뤼셀에서는 미국의 편으로 돌아서는 유럽을, 마인츠로부터는 미국과 더욱 가까워진 독일을 그리고 브라티슬라바로부터는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동유럽 등 유럽 정치권이 부시의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점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라는 현지 언론학계의 지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현실은 미디어가 재구성한 현실이다’라는 다소 급진적인 논리를 펼친 바 있다. 아울러 상징정치를 통한 여론 확보와 권력의 정통성 유지 등 주요 정치 테마의 의미도 어쩌면 현실을 재구성하는 미디어의 관점에서 풀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유럽 정치권은 아직 이러한 미디어의 영향력을 정치연극쯤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향후 유럽 정치권은 상징정치의 이면을 보고 언론보도와 방송화면이 현실 정치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유럽이 미국의 독주에 대항하고 세계질서의 균형을 회복할 만한 정치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이미 정치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논리를 획득하고 이에 따라 움직이는 미디어의 현실적인 의미와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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