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월 3일과 4일 양일간 충북제천에서 의원 연찬회를 열기로 확정했다. 당내 노선 갈등이 불붙게 될 연찬회에서 최근 정부의 잇단 외교문서 공개에 따른 과거사 문제에 대한 대응 문제가 연찬회의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차기 대선 레이스, '과거사 들추기'로 시작됐다"**
당내 비주류 좌장격인 홍준표 의원은 정부의 외교문서 공개를 '현 정권의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하며 박근혜 대표를 향해 "박정희 전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23일 성명을 발표, "노무현 정권은 한국사회의 주류를 바꾸기 위한 대장정으로 과거 주류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작업을 시작했다"며 "그 대상으로 이 정권은 박정희 시대를 꼽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그들에겐 마지막 철옹성으로 남아 있는 박정희 시대를 부정의 시대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고 비꼰 뒤, "그래야 그들은 한국사회의 '메인 스트림'을 바꾸고 주류가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차기 정권을 향한 대선 레이스는 과거사 들추기, 과거역사 부정하기를 작업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며 "그에 따라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그들이 파놓은 과거사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정부의 문서 공개를 정치 공작으로 몰아 붙였다.
홍 의원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집요한 공작과 선동, 선전이 그들의 결정적인 대선승리의 요인이 됐듯, 이제 그들은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을 묶어 부정한 세력으로 몰아간 수법으로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도 한데 묶어 과거 부정한 집단이나 인권침해세력으로 재단해 버리려고 하는 엄청난 공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는 바뀔 수 있지만 한나라당은 영원해야 한다"**
홍 의원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공작에 넘어가선 안된다"며 "박 대표는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박 대표를 향해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절연을 주문했다.홍 의원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일체일 수 없다"며 "야박한 말일지 모르지만 대표는 바뀔 수 있지만 한나라당은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박 대표에게 권하고 싶다"며 "이제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야 한다"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박 대표 스스로 앞장서서 한나라당과 무관하게 자신의 문제로 국한하여 당당하게 맞서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 의원은 "아울러 한나라당은 과거와의 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5ㆍ6공 탈출이 3공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특위 구성 제대로 안될 수도..."**
박 대표는 홍 의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24일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홍 의원의 주장에 대해 당내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홍 의원이 이재오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 대권후보인 이명박 시장계로 알려져 있어 그 '의도의 순수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홍 의원이 너무 이 시장 쪽으로 줄을 대고 있어, 옳은 주장이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 박 대표를 둘러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연찬회에서 당내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세광 문서'가 공개된 후 박 대표가 "박정희의 딸은 잊어달라"며 정정당당한 대응을 주문했지만, 당 지도부를 중심으론 박 대표를 겨냥한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며 정면돌파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박 대표가 정정당당한 대응을 주문했지만, 당내에서 박 대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나"며 "한일협정 특위 등의 구성도 제대로 안될 수 있다"고 과거사 정국과 관련한 당내의 불편한 분위기를 전했다.
***김영선, "방송의 문세광 보도 너무나 놀라울 정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영선 최고위원은 24일 오전 비공개 상임운영위회의에서 과거사 관련한 방송보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방송의 문세광 사건 보도 태도는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라며 "4번째 총탄이 발견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문세광이 범인이 아니라는 식으로 본질을 왜곡했다"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박 대표가 박정희 딸을 잊어달라는 발언도 부모를 부정하고 인륜을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갔다"며 "이에 대해 당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일로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주류,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론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며 "그런 말로 넘어가려 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연찬회에서 격론이 예고된다.
***박세일 "오른쪽 등을 키고 왼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
한편 연찬회의 또 다른 쟁점인 당명개정과 노선 문제에 대해 박 대표와 박세일 정책위의장은 24일 분명한 선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상임운영위회의에서 당명 개정과 관련, "이름만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며 "구체적 당 쇄신 컨텐츠가 나와야 된다"고 박세일 정책위의장에게 당부하며 당명개정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의 노선과 관련해서 박세일 정책위의장은 "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 정책을 명확히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 문제를 2월 연찬회에서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 의장은 "당이 지키고 실천해야 될 이념과 가치가 무엇이고, 이념과 정책이 따로 놀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오른쪽 등을 키고 왼쪽으로 가는 것은 국민의 혼란을 유발해, 예측가능성을 떨어트린다"라고 보수 노선을 분명히 밝혀, 소장파들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과거사 문제와 당의 이념, 당명 개정 등 2월 연찬회가 2005년 한나라당의 모습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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