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서 죽으라면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 뿐인 내 생명, 내 꿈 내 욕망 모두 포기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을 위해서, 실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국가, 민족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면 그 심정 얼마나 착잡하겠습니까. 윤봉길 의사의 부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어느날 그 말없고 조용하시기만 하던 그 어려운 분이 부엌으로 슬그머니 들어오셔서 물 한 그릇 청해 맛있게 드시고 나가시더니 그것이 그 분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목숨 바치러 가는 사나이의 심정, 자기만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 부인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오로지 국가, 민족을 떠올리며 중국 상해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을 그의 속마음을 생각하자니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 분들이 살아서 자기의 욕망과 꿈을 펼쳤다면 그 분들이야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국가, 민족을 위한 그들의 뜻이 있었기에 진정한 민족 정기가 후세에까지 길이 전해진다고 볼 때 우리도 이 분들의 뜻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요즘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3.26]**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아명은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했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에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다.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년 그 돈으로 삼흥학교(후에 오학교로 개칭)를 세우고, 이어 남포의 돈의학교를 인수, 인재양성에 힘쓰다가 국운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전제덕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실패, 노에프스키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의 탐방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에게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 그 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동지 우덕순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고 동지 조도선과 통역 유동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유필(遺筆)이 있으며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윤봉길[尹奉吉, 1908~1932.12.19]**
본관 파평(坡平). 호 매헌(梅軒). 본명 우의(禹儀). 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 비운을 느끼고 자퇴, 성주록이 개설한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28년 부흥원, 1929년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같은 활동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자, 1930년 2월 만주로 망명, 다시 상하이로 갔다. 1931년 상하이에서 세탁소 회계원·모직공장 직공 등으로 전전하며, 김구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 김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및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駐中)일본공사 시게마쓰[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오사카[大阪]로 이송,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
운명 요소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① 안중근
생년월일 : 1879년 7월 16일 진시
운명요소 : 기묘년 임신월 무자일 병진시(己卯年 壬申月 戊子日 丙辰時)
② 윤봉길
생년월일 : 1908년 5월 23일 사시
운명요소 : 무신년 무오월 정미일 을사시(戊申年 戊午月 丁未日 乙巳時)
***1. 소질 검색**
① 안중근 (己->壬<-戊<-丙)
먼저 무와 임(戊->壬)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정정당당하게 대등한 태도로 교제하는 영업능력이 탁월한 소질입니다. 아마 사업을 해도 대성했을 대단한 소질이죠.
그 다음 무와 병(戊<-丙)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천재감별법에서 기발반짝 아이디어형의 준영재에 속하는 우수한 소질입니다. 그의 글재주나 독서 능력등은 바로 이 소질에 기인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와 기(戊->己, 己<-戊)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특히 기<-무의 관계는 사람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수완이 탁월합니다. 그가 동지들을 규합한 예가 이 소질에 기인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② 윤봉길 (戊ㆍ戊->丁<-乙)
이 사주는 정말 아까운 사주입니다.
먼저 정과 무(丁<-戊)의 관계는 기술창조개발형의 특A급인 최고 천재에 속합니다. 천부적 재능, 언어, 회화, 기술, 예술 모두에 대단한 재능이 인정되는 소질이죠.
또 하나 정과 을(丁<-乙)의 관계는 기발반짝아이디어형의 A급 천재에 속합니다.
이 두가지 소질로 볼때 요즘 세상에서 흔히 뜨는 벤쳐 기업가형의 최우수 소질이죠. 정말 아까운 분입니다.
③ 소질 종합 판단
두 분 모두 순국하지 않으셨다면 국가를 위해서나 개인적으로나 상당한 실적을 쌓으실 자질이 너무나 풍부한 아까운 분들입니다.
***소질표**
***2. 욕망 검색**
① 안중근(戊일에 申월)
자기 표현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더구나 금(庚,辛)이 천간에 투출되지 않아 끝없이 비평과 자기 표현에 목말라 합니다.
그 다음 사업 욕망, 교유 욕망이 강합니다. 이는 수(壬,癸)로 천간에 투출되어 훌륭한 동기 부여가 되며 사업과 교제에 큰 보탬이 됩니다.
② 윤봉길(丁일에 午월)
자기 주체욕, 자기 확신욕 등이 있습니다. 보통 이 욕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일, 자기가 주관하는 일에 매우 능숙합니다.
***3. 본능검색**
***본능표*****4. 개성 검색**
***개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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