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이 중국과 북한을 잠재적인 위협국가로 규정한 '신(新) 방위계획 대강'과 무기수출 금지 완화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중국의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하다. 중국의 대러시아 및 대EU 외교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중국 사회과학계의 한 권위자는 이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회심의 미소만 지어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서는 마치“올 것이 왔을 뿐 아닌가, 이미 예측하고 준비해왔다”는 태도가 역력히 느껴진다. 중국정부도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관영 신화사를 통해 일정 정도의 경계태도를 내비쳤을 뿐 아직까지 이에 대한 큰 반발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러한 ‘여유’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각종’ 유사시를 상정,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관한 미ㆍ중ㆍ일 3국의, 각 상대국에 대한 다음과 같은 ‘카드’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먼저 미국이 중국과 일본에 대해 지닌 카드를 보자. 미국은 대중관계에 있어 주로 일본과 대만카드를 제시할 수 있다. 대중관계에 대한 대만카드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이 중국에 언제든지 딴지를 걸 수 있는 보너스 카드가 아닌가. 아울러 일본카드도 현상황에선 중국에 대해 매우 효과적인 카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일본카드는 경계를 게을리 해선 안될 카드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변천외교’만 봐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키워주면’ 결국 은인에게 덤벼드는 전통이 있지 않은가. 일본은 실제로 미국에 대해서도 개국 및 근대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지 않았던가. 현재 미국과 미사일방어(MD) 공동연구 등을 통해 무기의 자급도를 실현하려는(현재 자위대 무기의 상당수가 미국제임) 일본의 저의와 35년간 유지해 온 무기수출 금지령을 완화함으로써 군사대국화를 서두르는 일본의 총구가 언제 다시 미국으로 향할지 모르는 일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대일관계에 대해 중국과 북한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배신의 전통을 지닌 일본에 대해 마음놓을 수 없는 미국은 유사시에 중국카드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 할 것이다. 중ㆍ일 관계가 어떠한 관계인가? 이미 6,7세기에도 중국의 수나라와 일본의 쇼토쿠 태자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등 양국의 대결구도는 뿌리깊지 않은가. 그런데 작금의 중ㆍ일 대립상황에서 미국이 중국 손을 들어주면 일본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북한카드 또한 일본에게는 적잖은 상처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필요하다면 미국은 언제든지 북한과의 관계를 급속히 강화, 현재 일본을 조종하듯 북한으로 하여금 일본을 효과적으로‘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안하무인 ‘무대포성’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고 버거워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북한을 사실상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로 곤란해 하는데 이를 십분 활용한 전략인게다.
두번 째로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중국의 카드. 중국은 대미 관계에 대해 북한, 러시아, 일본카드 등을 꺼내들 수 있다. 먼저 북한 카드. 유사시에는 전통적인 북ㆍ중 우호관계라는 명목으로 대북관계를 강화,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북한을 통한 일본 위협, 또 이를 통해 형성된 일본발 미국 압박과 중국 자신으로부터의 조치 등,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에 의한 대만카드라는 대응조치도 우려되므로 중국으로서도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더욱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러시아 카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유일패권에 대한 견제라는 공통목표하에 군사ㆍ정치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중ㆍ러 양국. 이들은 최근에는 수 십년 간에 걸친 국경분쟁을 매듭지음과 동시에 2005년에는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할 만큼 뜨거운 밀월관계를 구가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구애는 중국생활 여기저기서 현저히 감지되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푸틴도 국제사회에서의 미국독재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현 상태에서 중ㆍ러 양국이 미국에 대해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카드. 중ㆍ일이 힘을 합쳐 미국에 맞선다는 것은 현 상황하에서는 상정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사회라는 점과 일본의 시류편승 전략을 고려할 때, 양국의“국공합작”적 연합을 불가능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다음으로 중국이 대일관계에 대해 지닌 주요 카드. 우선 당장 미국, 북한, 아세안 카드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유사시 미국 카드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당장은 미ㆍ일이 중국을 겨누고 있지만 중국은 자신의 정치경제적 매력을 내세운 특유의 만만디 전략, 허허실실 전략으로 결국 미국에 의한 중ㆍ일 양국의 선택, 혹은 소극적 대일정책을 유도해내려 할 것이다. 이번에는 북한카드.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북중 양국의 공동협력에 의한, 북한을 통한 일본 국가안보 위협과 중국에 의한 일본 숨통 조이기 등이 상정될 수 있다. 세번째로 아세안 카드. 아세안은 현재 과거의 일본과는 비교하기 힘든 중국의 짜릿한 과실 맛에 흠뻑 취해 있다. 게다가 중국은 2010년 아세안과 무관세 협정체결을 목표로 할 만큼 아세안에 중국 맛 길들이기 고삐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역내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나날이 약화되고 있지 않은가. 현상황에서 아세안이 중ㆍ일 양국의 유사시에 일본쪽에 기운다는 것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대중관계 및 대미관계에 대해 지닐 수 있는 카드. 먼저 대중카드로는 현재 미국과 아세안 카드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카드는 현재의 미일관계에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 카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중국의 선심정책에 도취되고 있는 아세안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등을 돌리기는 힘들고 중립적 자세를 취한다는 것도 이미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대미관계에 대한 현재의 카드로서는 결국 경제카드 정도밖에 남지 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최대의 채권국가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성향을 고려할 때 과연 이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 것이며 활용한다 해도 그 영향력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상에서 보듯 현재 미ㆍ중ㆍ일 3국관계에서‘유사시’상대국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꺼내들 수 있는 카드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인 선택지를 지니고 있는 일본에 비해 중국은 최다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여유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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