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필자는 우리 주변의 나라들,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음양오행과 관련하여 살펴보았지만, 먼 나라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런데 독자들로부터 유럽의 선진국들도 우리와 중요한 연관이 있으니 살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기에 오늘은 먼저 독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간단한 연표부터 한번 살펴보자.
1870년 1월 독일 제2제국의 성립 --- 경오(庚午)년 기축(己丑)월
1930년 9월 나치스 히틀러의 발흥 --- 경오(庚午)년 을유(乙酉)
1990년 10월, 동ㆍ서독의 통일 ------ 경오(庚午)년 을유(乙酉)월
세 가지 일이 모두 경오(庚午)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로써 필자는 현대 독일의 음양오행 코드를 경오(庚午)라고 잠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일들이 일어난 간격은 60년이다. 즉 60 갑자(甲子)이고 세상이 변하는 사이클의 가장 기본 단위이기도 하다.
독일이란 곳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근대적 의미의 국가로 성립된 것은 사실상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창출된 ‘제2제국’을 근간으로 한다. 제2제국은 제1제국인 중세의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한다는 선언적 의미이고, 그 바람에 히틀러는 자신이 나치스 정권을 제3제국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 법통을 잇고자 했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히틀러를 이해하지 않고는 20세기 독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일의 근간이 된 제2제국, 프러시아의 주도로 일어난 독일 제국의 이전에는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라는 두 왕조국가의 치열한 각축과 경쟁 과정이 있었으며, 특히 1800년대 초반의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강렬한 국민의식이 형성되었다.
1807년 당시 프러시아가 예나(Yena)전역에서 나폴레옹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아야 했을 때,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으로 독일인들의 각성을 고취시켰으며, 그 뒤를 이은 헤겔(Hegel)은 ‘역사철학’을 통해 국가주의를 강조한 것이 독일인들의 정신세계를 결정지었다.
이어서 니체는 예언자의 말투로 써내려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전쟁과 용기는 자선보다 한층 더 위대한 일을 이루느니라’라고 하고 있으며, ‘권력에의 의지’에서는 ‘용감한 지배적 민족은 스스로를 훈련시킨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물론 피히테나 헤겔, 그리고 니체의 철학은 히틀러가 지녔던 정치철학과는 달랐을 것이지만, 국가가 최상의 것이라는 주장이나 권력에의 의지를 역설하고 지배민족과 초인의 출현을 선언하였던 그들 철학자들의 사상은 히틀러는 물론 나치스, 나아가서 1930년대를 살고 있었던 대다수의 독일인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겠다.
따라서 더러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을 히틀러 개인의 정신병리적 사고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본말을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현대 독일의 모태가 된 프러시아는 자원도 없고 지리적 이점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오로지 강한 규율과 훈련을 받은 군대를 기반으로 융성한 나라이기에 마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를 연상케 한다.
이처럼 기본 사상을 군국주의로 하는 프러시아의 전통,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이 있었기에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나치스)가 독일인들에게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이고 히틀러 역시 그런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 이전에 독일제국을 탄생시킨 비스마르크의 철혈 연설, 즉 “당대의 중대한 일들은 의회의 토론이 아니라, 쇠와 피에 의해서 결정이 나는 것이다”라는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독일인들의 생각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생겨난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국적 권위주의를 주조로 하고 있었기에 히틀러가 있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엄밀한 현실인식일 것이다.
따라서 만일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더라면 어쩌면 여전히 오늘날의 사상적 주류도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군국주의적 독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영미가 승리했고 또 다시 미국은 소련이라는 세력과의 냉전 형태의 제국전쟁을 통해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기에 지금과 같이 대중에 기반을 둔 민주자유주의의 물결이 대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돌아가서 처음에 제시된 세 가지 일들의 연표-60년 간격으로 일어난 일들-가 짐작하게 하듯이 히틀러와 나치스는 히틀러 개인의 과대망상적인 사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비스마르크가 만들어낸 제2제국의 법통을 잇고 있는 것이며 제3제국이라 하는 표현도 그들의 의지를 대단히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쇠와 피, 그리고 국가와 군사력에 바탕을 둔 지배민족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을 건설하겠다는 꿈은 2차 대전이라는 참화만을 뒤로 한 끝에 좌절되고 말았다.
그 이후 사실상 독일은 미소 양대 세력이 각축하는 유럽에서의 각축장이자 최전선이 되고 말았다. 나라로서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두 개의 독일은 실질적으로 미소 양국의 위성국이나 마찬가지였으며, 히틀러가 발흥한 1930년에서 30년이 지난 1960년, 경자(庚子)년부터는 미소간의 냉전이 치열해지면서 베를린 장벽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그런 아픔 속에서도 과거를 반성하고 뛰어난 산업기술과 근면한 생활 태도,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통해 마침내 히틀러 발흥과 패망 이후 60년만에 다시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되찾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독일의 코드는 경오(庚午)이니 경금(庚金)의 나라이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천간에 무토(戊土)나 기토(己土)가 오는 해에 부진하거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무토가 오는 해는 명리학상으로 편인(偏印)이라는 기운이 작용하여 독일의 힘인 수기(水氣)를 제압하기 때문이다.
무(戊)라는 글자가 붙는 해에 안 좋았던 일들을 몇 가지 찾아보기로 한다.
1618년 무오(戊午) -- 30년 전쟁이 발발로 전 국토의 황폐화
1848년 무신(戊申) -- 3월 혁명
1918년 무오(戊午) -- 1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혁명 발생
1948년 무술(戊戌) -- 베를린 봉쇄로 냉전 본격화
1988년 무진(戊辰) -- 동독 경제의 붕괴, 통일을 앞당김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독일은 특히 무오(戊午)라는 글자를 만나는 해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로 독일이 잘 나가는 해를 살펴본다. 독일의 힘은 물에 있으니 천간에 임수(壬水)나 계수(癸水)가 오는 해가 좋은 해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기운들이 한결 같지 않은 것은 천간(天干)에 물이 오더라도 지지(地支)에 무슨 글자가 오는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1813년 계유(癸酉) -- 대 프랑스 독일 해방전쟁
1923년 계해(癸亥) -- 파국적 인플레이션에서 극적인 반전
1933년 계유(癸酉) -- 독일 경제의 도약, 히틀러지지 기반 조성
1942년 임오(壬午) --2차 대전중 독일의 전력 절정에 달함
1962년 임인(壬寅) --경제의 급속한 발전 궤도 진입
1972년 임자(壬子) --뮌헨 올림픽 개최, 동서독 간 기본조약 체결
이 중에서 1813년의 프랑스에 대한 독일 해방전쟁과 1933년 히틀러와 나치스의 흥기는 1차 대전의 패배로 인한 굴욕적인 베르샤이유 체제와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독일의 산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독일의 코드인 경오(庚午)가 말해주듯이 천간에는 경금(庚金)이라 공작기계류 전반이 강하고, 지지에는 오화(午火)가 있어 화학과 화공, 그리고 그 응용인 제약산업, 광학기계가 강하다.
오늘날 세계에서 대표적인 무역 흑자국으로 독일과 일본을 들 수 있는데, 그 근본이유는 두 나라가 모두 공작기계와 화공산업에 강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와 같은 모든 후발공업국들이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생산설비를 들여와서 제품을 생산하여 주로 미국이나 유럽, 기타 시장으로의 수출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가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런 식으로 발전했다면 다음으로 중국과 인도, 러시아가 뒤를 잇는 것과 같으니 여전히 일독 양국의 설비제품들은 팔려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일본이 독일처럼 기계류가 강한 것은 일본은 을목(乙木)이라 경금(庚金)과 합(合)이 되기 때문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 지점에 왔는데, 마지막으로 얘기해두고 싶은 것은 엄격함과 강인함, 그리고 논리적이고 질서를 존중하는 독일인들의 심성으로 볼 때, 향후 세계가 미국이라는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나면 또 다시 독일이 군국주의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이 말은 앞으로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나라간의 평화와 우호의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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