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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와 소동파: 이니스프리와 적벽에서 만난 시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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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와 소동파: 이니스프리와 적벽에서 만난 시성들

CEO출신 역술인 김남용이 본 '역사의 라이벌' <28>

"나 이제 일어나서 가리라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거기 외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예이츠의 그 유명한 시 '이니스프리 호수섬'에 나오는 싯구입니다. 복잡하고도 살벌한 도시 런던, 산업화되어 인간성이 서서히 죽어가는 죽음의 도시를 떠나 아늑하고 편안한 자연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강렬한 욕망, 인간 본래의 자세를 꿈꾸는 아련한 시입니다. 필자가 고교 시절때부터 좋아하던 시입니다만 예이츠는 초기에 낭만적인 주제와 몽환적인 심상을 즐겨 표현하였고 후에는 신화적인 심령 연구에도 정열을 바쳤던 위대한 시인입니다.

소동파는 송나라 때의 대시인입니다. 예부상서라는 높은 벼슬까지도 역임하였던 대인물로서 당송팔대가( 당나라의 한유, 유종원, 송나라의 소순, 그 아들 소식, 소철 형제, 증공, 왕안석으로서 산문작가의 대가들임 )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지은 대작 '적벽부'에서 그는 적벽(삼국지의 적벽대전으로 유명한 곳)의 야경과 흥취를 정말 훌륭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조용했다오. 아, 흰 이슬 강에 비끼고 물빛을 하늘에 이었음이여. 한잎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이리 일렁 저리 일렁 아득한 물결을 헤쳐가나니 넓고도 넓은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 타고 그칠데 없이 떠 가는구나."

마치 신선이 도원경에 들어간 기분입니다.

여기 예이츠의 유명한 시 "이니스프리 호수섬"을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나 이제 일어나서 가리라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거기 외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밭 일구고 꿀벌 한통 치면서
벌떼 잉잉대는 숲속 빈터에 홀로 살리라

그러면 거기 평화가 깃들리니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신비로부터
귀또리 우는 밤으로 떨어져 내리느니
내 고향 이니스프리는 깊은 밤엔 아련한 빛
한낮에는 타오르는 자주빛
저녁에는 홍방울새 날갯 소리로 찬란하리라

나 이제 일어나서 가리라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호숫가에 찰랑이는 잔물결 소리 듣노니
나 이따금 한 길이나 잿빛 포장길에 서 있어도
가슴 속 깊이 그 물결소리 출렁이며 흘러들리라

***예이츠[Yeats, William Butler, 1865~1939]**

1865년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출생하였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더블린 및 런던에서 화가가 되려고 수업하였으나 전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시집 《오이진의 방랑기 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는 켈트 문학 특유의 유현하고 표묘한 정서를 풍겨, 당시의 세기말 시인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과의 교우로 '시인 클럽'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그는 라파엘 전파(前派)의 영향 아래, 낭만적인 주제와 몽환적인 심상을 즐겨 묘사하였다.

1891년 동지들과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어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1899년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더블린에 창립하였다. 이 동안 그는 환상적이며 시적인 《캐서린 백작부인》(1899년 초연)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 J.M.싱 등과 협력하여 아일랜드 극(劇) 발전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미모의 민족주의자 M.곤 등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1922∼1928).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극장 경영, 배우 훈련, 정치 참여 등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의 중기는 대체로 실천에 중점을 두었다.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그의 시상은 이 실천으로 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여전히 심령론 연구를 계속하였고, 1917년에는 무녀(巫女)와 결혼까지 하였다. 예이츠의 복잡한 후기의 시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1921) 《탑》(1928) 등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성적이고 우미하던 스타일은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환상적이던 심상은 금속적이라 할 만큼 구체성을 지닌 심상으로 전화하였다. 그와 동시에 주의의 초점은 그 근저에 깔린 세계관(그것은 그의 경우, 동시에 예술관이기도 하지만)의 심화이다.

그는 시초부터 라파엘 전파, 이어서 상징주의의 영향에서 자연과 대립하여, 자연보다 우월한 것으로서의 예술의 세계를 믿어 왔다. 그의 후기의 고투는 이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는 고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고뇌를 그는 W.블레이크의 《예언의 서》를 생각하게 하는, 독자적 신화로써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 기록이 난해한 산문집 《환상 A Vision》(1925) 이다. 예이츠의 과제가 현대시의 중추 과제에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며, 시인·비평가인 프레이저가 J.던, J.밀턴, W.워즈워스에 그를 비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소동파 [蘇東坡, 1036~1101]**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출생. 자 자첨, 호 동파거사(東坡居士), 파공(坡公) ·파선(坡仙), 이름 식(軾).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서울로 호송되어 어사대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湖北省]의 황주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 등의 대관을 역임하였다.

황태후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 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

① 예이츠

운명요소 : 을유년 신사월 을묘일 정해시(乙酉年 辛巳月 乙卯日 丁亥時)
② 소동파

운명요소 : 병진년 신축월 계해일 을묘시(丙辰年 辛丑月 癸亥日 乙卯時)

***1. 소질 검색**

① 예이츠 ( 乙<-辛->乙->丁 )

역사의 라이벌 13. 천재 감별법에서 을과 정(乙->丁)은 예술 창조 개발형의 A급 천재에 속합니다.

이 소질은 온화하고 상대 입장을 고려한 조화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소질입니다. 특히 예술적 감수성, 감정적 정서, 문필력이 아주 뛰어난 소질입니다. 또한 을과 정의 관계는 열성적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소질입니다.

그 다음 을과 신(乙<-辛)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굉장히 세심하고 신중하고 어찌 보면 소심, 겁쟁이로까지 분류되는 소질입니다만 그래도 보스나 관리 능력은 있는 소질이므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용기를 내어 앞장서는 소질입니다.

② 소동파 ( 丙->辛<-癸->乙 )

여기서도 계와 을 (癸->乙)은 천재감별법에서 예술창조개발형의 A급 천재에 속하는 소질입니다. 이 소질도 예이츠의 경우와 같이 인간적인 면이 많이 보이고 예술적 감수성, 문필력이 뛰어납니다. 예이츠가 예술에 열성적인 소질인 반면 소동파는 좀더 천부적 감수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소질입니다만 반면에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요령이 부족한 소질이죠.

두 번째 계와 신 (癸->辛)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은 극히 독자적 성향이 강하여 잘못하면 독선적이라 할 수 있는 소질입니다. 자기 추종 세력을 꾸려나가는데 이럴때는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도 같이 해를 입는 비실용적 소질이라 할 수 있죠. 이것 때문에 아마도 관운이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계와 병 (癸->丙, 丙<-癸 )의 관계입니다. 꼼꼼하고 현실적, 타산적이면서도 외면은 유순하지만 내심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야심만만한 소질이라 할 수 있죠. 그가 예부상서라는 고관대작으로 올라가는 데 이 소질이 많은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③ 소질 종합 판단

예이츠나 소동파나 그 천부적 예술 창조 능력, 감수성, 감정적 정서에서 큰 천재성을 발휘했으나 소동파가 좀더 현실적, 야심적인 면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소질표**

***2. 욕망검색**

① 예이츠(乙일 巳월)

자기 표현 욕망, 창조 욕망, 인기 욕망이 천재적으로 나타나는 욕망 (천재감별법의 욕망편 참조)이며 천간에 정(丁)으로 투출되어 훌륭한 동기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관리 리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도 천간에 신(辛)으로 투출되어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② 소동파(癸일에 丑월)

보스가 되고 싶은 욕망이 꽉 차 있습니다. 더구나 천간에 토( 戊, 己 )로 투출되지 않았으므로 끝까지 이 욕망 달성을 위하여 노력을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명예욕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 명예욕인데 천간에 신(辛)으로 투출되어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만 결국 파당을 이루는 선에서 마무리 될 전망이 큽니다.

세 번째는 자기 주체 욕망이 매우 큽니다. 자기가 한 일은 일일이 자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욕망입니다.

③ 욕망 종합 판단

예이츠가 예술가적 자기 표현이 매우 큰 반면 소동파는 좀더 정치적, 현실적 인간이라고 평가됩니다.

***3. 본능 검색**

***본능표**

***4. 개성 검색**

***개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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