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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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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69>

전격전(Blitzkrieg) (1) -음양오행으로 살펴본 전쟁사

이번 글부터 몇 차례에 나눠, 과거의 전쟁 사례를 음양오행을 통해 살펴보는 코너를 마련하고자 한다. 필자로서는 오랜 연구를 거쳐 상당히 자부하는 내용이기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사례로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이 끝나버린 독일의 프랑스 침공을 다루고자 한다.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연합군측은 이 같은 독일군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해 전격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주요 교전 당사국으로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음양오행에 대해 먼저 밝혀둘 필요가 있다. 독일은 경금(庚金)이고 프랑스는 신금(辛金), 영국은 임수(壬水)의 기운을 지닌 나라들이다.

그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글을 읽어감에 있어 충(衝)운의 작용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충이란 말은 문자 그래도 충돌을 의미하며 모든 사물이 6이란 숫자를 지나 7에 가서 맞이하는 운세의 역전(逆轉) 현상을 말한다. 그것은 6일, 또는 6개월, 길게는 6년, 물론 그 이상도 물론이지만 이 중에서 특히 6년이란 기간은 대단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2차 세계 대전 역시 1939년 기묘(己卯)년에 발발하여 만 6년이 지난 1945년 을유(乙酉)년에 종결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충의 작용이다. 따라서 2차 대전은 6년간의 큰 전쟁이었다.

또 충의 작용에는 년과 월이 충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2차 대전이 발발한 1939년의 경우, 독일이 폴란드에 전쟁을 선포한 것은 9월 1일이지만, 실질적인 전쟁은 9월의 백로절을 넘긴 계유(癸酉)월부터였다. 여기서 기묘(己卯)와 계유(癸酉)는 천간 지지가 모두 상극하는 기운이기에 이 또한 충운인 것이다.

당시 히틀러는 그 달 말에 가서 폴란드 점령이 성공리에 끝나자 그의 장군들에게 서쪽의 프랑스로 쳐들어갈 계획임을 이미 밝히고 있었다.

이런 히틀러의 속셈을 모르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9월의 폴란드 침공전이 끝난 후, 다음 해 5월에 가서 독일군의 기습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어떠한 기선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혹시나 히틀러가 전쟁을 그만 두지는 않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귀중한 몇 달을 허비해 버리고 말았다. 특히 프랑스가 그랬다.

당시 프랑스는 이른바 마지노 방어선이라고 하는 철통같은 수비 요새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요새는 스위스에서 시작하여 룩셈부르크에 이르는 방어선으로서 독일과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국경에 걸쳐 구축되어 있었다.

지난 1차 대전 당시 기관총과 참호의 등장으로 수비가 공격보다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기에 프랑스 육군의 마지노선은 독일의 침공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던 것이다.

독일 역시 철벽의 마지노선 앞으로 쳐들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침공은 프랑스의 북부에 위치한 베네룩스 3국을 경유하는 통로가 가장 유력하게 여겨졌다. 1차 대전 시에도 독일군은 이 루트로 밀고 들어왔었기에 영국과 프랑스 양군은 주력을 이 지역에 배치하였다.

당초 독일 역시 이 루트로 주력을 투입할 생각이었으나, 거의 마지막에 가서 독일군 참모부의 한 천재에 의해 침공 루트가 변경되었고 결국 그것이 적중하게 된다.

그 침공루트는 마지노선의 북단에 위치한 삼림 지대였다. 아르덴느라 불리는 이 울창한 삼림 지대는 탱크와 장갑차로 이루어진 기계화된 군대가 돌파할 수 없는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설사 이 지대를 통과한다 해도 뮈즈 강이라는 험한 강이 있어 도저히 침공이 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의 ‘만슈타인’이라는 천재는 이 지역이 공병의 작업에 의해 능히 기갑사단을 위한 길을 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고, 도상 훈련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해보였다. 여기에 기갑부대의 군단장인 ‘구데리안’이라는 또 하나의 탁월한 전술가가 이 안을 지지했고 결국 히틀러의 재가를 얻어내었던 것이다.

독일의 작전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남쪽의 마지노 방어선 쪽에는 가장 약한 군대를 배치하여 트릭 플레이만 펼치고, 가장 북쪽의 네델란드와 벨기에, 즉 영불 양군이 가장 유력한 침공 루트라고 생각하는 방면에서 먼저 공세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동 작전일 뿐, 주된 공격 라인은 마지노 방어선의 북단 ‘아르덴느’ 숲과 또 하나의 천연 장벽인 뮈즈 강을 도하하는 것이었다. 프랑스군은 이 지역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가장 전력이 약한 제9군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독일군의 작전 목표는 이 지역을 돌파하여 북부 해안에 위치한 영불 연합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통신보급선을 절단함으로써 영불 주력군을 포위섬멸하자는 것이었다.

이 루트는 동시에 프랑스 수도인 파리와 영불 연합군의 주력이 위치한 북쪽 해안의 중간선이어서 프랑스 측으로서는 독일군의 진공 방향이 북쪽 해안으로 가는지 아니면 파리를 노릴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프랑스 침공전이 시작되었던 1940년 5월은 경진(庚辰)년 신사(辛巳)월이었다. 해는 독일과 같은 경(庚)의 해였고, 월은 프랑스와 같은 신(辛)의 월이었다. 전쟁은 독일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을 보았으니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해의 힘이 달의 힘을 압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은 경진년이었으니 천간의 경금(庚金)은 그 해의 군주, 일러서 세군(歲君)이라 하는 것이다.

해의 군주, 즉 세군을 신하인 월이 범하는 달, 이 또한 충운의 하나인데 이런 달에는 언제나 흉한 일이 있기 쉬우며 그 달에 어떤 일을 시작하면 대개의 경우 실패로 끝나게 되는데 그것은 하극상(下剋上)이기 때문이다.

하극상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01년 9월의 테러, 소위 9.11 테러가 바로 하극상이었다. 신사(辛巳)년 정유(丁酉)월이니 세군인 신금을 달의 신하인 정화(丁火)가 범했던 달이다. 이로서 세계는 대단히 어지러워졌고 일파만파의 변화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60년 전인 1941년 신사년 계유월에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어전회의에서 결심하였고 이로부터 얼마 후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는데 이 역시 같은 까닭으로 일본은 패망하고 말았다. 월이 해를 범하면, 좋지 못한 사례가 대단히 많지만 이만 줄이고자 한다.

독일군이 공격을 개시한 날은 그 해 5월 10일, 계축(癸丑)일이었다. 경금인 독일에게 있어 상관(傷官)이 되는 날이니 독일이 가장 맹렬하게 힘을 쓰는 날임을 알 수 있다.

독일은 당초 계획대로 북쪽에서 네델란드와 벨기에로 신속하게 진공했고, 여기에 말려든 영불 연합군은 그 쪽으로 군대를 진군시켜 대항하고자 나섰다.

그러나 독일의 주공 방향은 앞서 얘기한 대로 아르덴느 숲과 와 뮈즈(meuse) 강을 도하 강습하는 루트였다. 5월 13일 병진(丙辰)일에 기갑사단들을 앞세운 독일의 주력군은 아르덴느 숲을 신속히 통과하여 디낭(dinant)과 세당(sedang)에서 천연의 장애물인 뮈즈 강을 도하했다. 불과 하루 이틀 만에 프랑스 측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지역을 돌파해버린 것이다.

전력이 약한 프랑스 제9군은 탱크가 떼로 몰려드는 독일 주력의 상대가 될 수 없었고, 일격에 궤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날이 병진(丙辰)과 정사(丁巳)였으니 경금인 독일과 신금인 프랑스 모두에게 있어 사실상 이 양일간이 가장 힘든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커다란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15일 무오(戊午)일 아침 7시경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프랑스의 레이노 수상이 영국의 처칠에게 전화로 프랑스가 패배했음을 알렸다. 처칠은 워낙 어이가 없어서 ‘그토록 빨리 그런 꼴이 될 까닭이 있냐’고 말했지만, 레이노는 ‘세당 부근의 전선이 결단이 났고, 적은 탱크와 장갑차로 구성된 대부대가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날이 무오(戊午)일이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결국 나중에 프랑스 수도인 파리가 함락된 날이 그로부터 30일 뒤인 무자(戊子)일이기 때문이다. 무오(戊午)와 무자(戊子)는 천간의 무토는 같지만 지지의 오(午)와 자(子)는 상극되는 날인데, 이런 것 역시 충운이며 대단히 극적인 작용력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독일의 공세가 시작된 5월 10일 계축일로부터 30일 뒤인 계미(癸未)일에 이르러 사실상 프랑스는 백기 투항하기로 결정하였으니 이 또한 동일한 작용이다. 왜 전쟁처럼 격렬한 현상마저 이처럼 정수 배로 종결되는지 기이하지 않은가!

(글이 다소 길어지므로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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