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한화컨소시움이 대한생명을 인수할 때 매각심사소위원회 위원 4인 중 3인이 "한화컨소시움이 대한생명을 인수하기는 자격이 불충분하다"는 반대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당시 전윤철 재정경제부장관(현 감사원장)이 정부측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이를 조작해 통과시켰다고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19일 증빙자료를 공개하며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최대의혹으로 일컬어지는 대생 의혹이 또다시 표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16강이 열리던 날, 예보 회의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재경부-금감원 간부출신인 이 의원은 19일 '대생 매각 원천 무효, 무자격자에 헐값에 넘겨'라는 정책자료집에서 "당시 매각심사소위원회가 한화그룹의 인수에 반대한다는 심사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에서 이를 전달하지 않고 내용이 다른 별도의 보고서를 만들어 공자위 전체회의에 상정했다"며, 당시 매각소위가 작성한 반대의견이 명시된 심사보고서 사본과 공자위 사무국이 작성해 공자위 전체회의에 상정한 보고서 사본을 공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2002년 6월18일, 월드컵 16강이 열려 국민들의 시선이 축구로만 쏠려있던 날. 이날 오전 7시 예금보험공사 15층 회의실에서 열린 매각소위회의의 제34차회의에선 매각소위의 '대한생명 매각관련 한화컨소시움의 결과 보고서'가 최종의결됐다.
이날 공자위 사무국(국장 유재한)은 자체 생산한 보고서를 우선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한생명 매각은 공자위 본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결론을 담고 있어, 매각소위 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매각소위 내부에선 2002년 5월말께 한화콘소시움에 대한 불가방침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매각소위 위원들은 이에 위원회 김주영 위원에게 매각소위 최종보고서 작성을 일임했고, 김 위원은 18일 오후 직접 보고서를 작성해 소위 위원들과 사무국에 이메일로 전달했다. 이 보고서에는 "매각소위 4인중 3인이 한화의 대생인수를 반대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었고, 매각가격의 문제점 등 반대 의견이 명시돼 있었다.
***공자위, 매각소위 반대 보고서 조작후 강행처리**
다음은 김주영 위원이 2002년 6월18일 15시53분에 공자위에 보낸 이메일이다.
"나는 분명,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위원들 과반수가 찬성한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국에서는 언론에 그리 전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매각심사소위의 의견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으면 자격문제가 아예 '파묻혀 버릴' 확률이 매우 크다. 일단 매각소위의 손을 떠나면 자격문제가 일단락되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아니 분명히 제시해도 언론 등에서 오해하게 되면, 월드컵 등에 묻혀서 슬그머니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왜 우리나라 16강전이 열리는 바로 그날 사전에 미리 의안배포는 커녕 귀뜸도 없이 최종심사결과보고서를 의결해야 하는지 그 의도는 알지만 수긍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이메일에 첨부된 보고서는 공자위 사무국의 수정을 거쳐 김 위원 등 매각소위 위원에게 돌아왔다. 수정된 내용은 매각소위의 반대의견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었다. 김 위원은 이에 공자위에 다시 메일을 보내 강하게 항의했다. 다음은 김 위원이 6월18일 18시42분에 공자위에 보낸 이메일이다.
"수정된 심사결과에 동의하지 못한다. 특히 심사의견부분에서 인수자의 적정성과 관련해 위원들은 문제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대신 공자위의 최종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했는데, 마치 문제점 해소방안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은 결국 결론을 바꾼 것에 해당한다. 이런 보고서라면 내일 공자위에 제출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며 정식으로 의결서에 서명을 받아서 보고를 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사무국에서 언론에 흘리는 내용이나 보고서의 내용을 볼 때 재경부에서 결국 자격문제를 우회하려는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만약 위원들의 명시적인 서면 동의없는 보고서가 제출되는 경우에는 심사결과를 왜곡하고 허위내용의 공문서를 작성한 것이므로 결코 간과하지 않겠다."
그러나 김 위원의 이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공자위는 일부 자구만 수정해 최종 결과보고서를 의결한 뒤 그 다음날인 19일 공자위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종구 의원은 이와 관련, "어윤대 공자위 민간위원장이 19일 회의에서 매각소위 위원들의 승인을 받지 않아 유보하자고 했지만, 나중에 들은 바로는 모호한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돼 반대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공자위를 통과하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는 19일 본회의에 참석한 한 공자위 위원의 증언을 인용, '보고서 조작 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매각소위 4인 중 3인이 한화컨소시움 부적격 판정" 그러나...**
실제로 최종 의결된 보고서에는 반대의견이 상당히 모호하게 표현돼 있고 "문제점 해소를 전제조건으로 해서 협상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적고 있어 사실상 결론을 뒤바꾼 상태다.
김 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올 3월 한화그룹의 주요계열사들의 분식결산사실이 적발되면서 한화그룹의 재무건전성 및 사회적 신용을 의심할 상황이 야기돼 한화컨소시엄의 인수자격을 집중적으로 심의했다"며 "결과적으로 매각소위 위원 4인 중 3인은 한화컨소시움이 대한생명의 인수자로 적격을 갖추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부적격 근거로 "한화그룹의 경우 01말 기준 부채비율이 2백32%로서 보험관련법령상 기준인 2백%를 초과했고, 최근 한화계열사들의 분식회계사실이 적발돼 '과거 5년간 금융관련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없고 기타 건전한 금융거래질서를 저해한 사실이 없을 것'이라는 요건에 결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보고서는 "한화그룹은 그룹 전체로 최근 10년간 적자발생이 지속되는 등 충분한 출자능력 및 건전한 재무상태 보유여부에 의문이 든다"며 "한화컨소시움이 향후 대한생명의 정상화를 위한 충분한 자금조달능력이 있는지에 관한 중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화측에서 제시한 매각가격의 가치평가기준이 됐던 매각자문사가 2001년 9월말 기준으로 제시한 1조2천4백10억의 대한생명에 대한 가치평가 결과도 대한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급격히 개선되고 있는 대한생명의 경영개선 실적이 반영되지 못했고 ▲보유계약 및 신계약 가치 산정시 적용된 할인율 수준(15%)의 타당성에 의문 ▲보험사 가치평가 방식외에 일반적인 기업가치평가 방식(PBR, PER)에 의한 평가결과도 함께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헐값'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매각소위의 보고서는 공자위의 수정과 재수정을 거쳐 전혀 다른 내용이 6월19일 공자위 본회의에 상정됐다.
조작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작 보고서는 "한화컨소시움의 경우 주요 출자자 요건 및 출자ㆍ재무능력 면에서 충분히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동 출자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행보험업법에 직접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상기한 조기민영화 필요성 등을 감안해 공자위 결정에 따라 향후 협상을 계속할 경우에는 인수자의 적정성 관련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전제조건으로 협상하는 것도 강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또 보험관련법상 위배 조항에 대해서도 "그 요건은 보험사의 신규설립시 허가요건으로 현행 법령상 기존 보험사 인수시에 이를 적용하기는 곤란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고 적고 있다. 부실 재무상태에 대해서도 "한화그룹 주력사의 가용자금규모(약 8~9천억) 및 회사채 만기 현황 등을 감안할 때 대한생명 인수자금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180도 뒤바뀐 내용이다.
이종구 의원은 "이처럼 매각소위의 반대 보고서가 왜곡된 이후부터는 한화컨소시움으로의 매각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공짜로 판 것"**
한화컨소시움은 2002년 10월28일 대한생명을 1조6천5백10억원에 인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2001년 1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 "2001년 투입된 공적자금 1조5천억원을 감안하면 1천1백50억원에 매각한 셈"이라며 "공적자금은 전액 즉각투입되는 데 반해, 매각대금은 지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2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받는다는 점을 감안, 현가계산 등을 하면 사실상 공짜로 판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최근 몇년간 대한생명은 해마다 2조원대 이익을 올리고 있다"며 정경유착 의혹을 강력제기했다.
이 의원은 "대생매각 직전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대생 인수자에게 엄청난 특혜를 부여한 것"이라며, 당시 재경부장관이자 정부 공적자금위원장인 전윤철 현 감사원장에게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또 당시 정권 실세였던 인물들이 대생 특혜에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반드시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한화컨소시엄은 2002년 10월 대한생명 지분 51%를 총 8천2백36억원에 인수, 2002년 12월 1차 매각대금으로 4천1백18억원을 납입했으며, 오는 12월 나머지 금액을 2차매각 대금으로 납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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