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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북두칠성을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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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북두칠성을 따라왔다

김지하 달마展-가을에서 봄까지 <6>

가을에서 봄까지(題字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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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과학자 중의 과학자다.
그런 그가 지구의 시작, 따라서 지구 유기체, 생명의 근원을 북극으로 보고 있다. 북극이라면 자연히 우주적으로는 북극성이나 북두칠성에 연계된다.
그런데 우리 민족 신화의 근원에 북두칠성이나 북극성이 연관된 것을 이야기하면 대번에 미신이라고 욕을 한다.
미신?

역사천문학회라는 재야(在野) 사학자 그룹이 있다. 그들은 여러 해 전 중앙아시아로부터 밤이면 하늘의 정중앙에서 빛을 내는 북두칠성을 인도자로 하여 한반도까지 걸어오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그 길이 곧 우리 민족의 이동코스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중앙의 북두칠성을 따라오는 몽골이나 중국 북부지역의 숱한 지명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나 신화나 전설에 연결된 말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 스스로 크게 놀랐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 또 한마디 거드는 것은 다른 까닭이 있어서다. 한민족의 창조적인 미래문화는 생명학으로서의 선도풍류(仙道風流)와 영성학(靈性學) 중의 영성학인 선불교(仙佛敎) 사이의 안팎 이중적 교호결합에서 나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큰 산 아래 옛 절에 갈 때마다 나는 중앙의 대웅전(大雄殿)에 일배(一拜) 한 뒤 곧장 그 뒷구석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전각들, 환웅전(桓雄殿)이니 삼성각(三星閣)이니 칠성각(七星閣) 같은 현판이 붙은 선도풍류의 옛 솟대자리로 직행하곤 한다.

그중에도 큰 놀라움이 한 가지 있었으니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뒷구석에 숨어있는 북극전(北極殿)이란 작은 전각의 판액(板額) 앞에 섰을 때다.

노을이 타는 저녁 스님들은 출타하고 없고 텅 빈 절 안에 19세기의 저 위대한 선승(禪僧) 경허(鏡虛) 스님의 친필로 쓴 ‘북극전’을 쳐다보고 있을 때 기이하게도 수백만의 물결이 거리거리에서 일어나 외치며 민족의 고향이자 지구 생명의 근원인 북극으로 북극으로 돌아가는 환영을 보았다.

붉은 악마의 월드컵 물결 이전에 발표된 ‘북극전’이란 시편에 그대로 써있다.
북두칠성을 따라 온 민족의 본디 사상이 외면의 생명이고 그 뒤 줄기차게 연찬해온 사상이 곧 내면의 영성임을 경허 스님의 세 글자에서 가슴 저미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민족은 북두칠성을 따라왔다.
생명과 영성, 생명과 평화의 길이 우리 민족사상 안에 거저 생긴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미신?

시 ‘북극전’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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