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정희, 유시민, 그리고 역사의 간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정희, 유시민, 그리고 역사의 간계

[손호철 칼럼] 통합진보당과 역사를 생각한다

"터질 것이 터졌다". 최근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파문을 접하며 개인적으로 나타난 첫 반응이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이번 사건은 일회성 사건이 결코 아니다. 2000년 노회찬 의원 등 평등파가 민주노동당을 만들자 운동권의 주류인 자주파가 소위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이 당에 들어가 당을 장악하기로 결정한 이후 위장전입, 당비 대납 등 비민주적이고 엽기적인 방식을 통해 당을 장악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사건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주류 당권파'의 오래된 실천이었음은 이번 사건이 부정선거가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관행"과 "서로 다른 조직문화"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당권파 이의엽 정책위의장의 해명이 역설적으로 잘 입증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진보교연)을 만들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진 진보정치세력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면서 실감한 것은 이 같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이 불모지에서 공들여 만들어 놓은 지구당과 당을 빼앗긴 진보신당 관계자들의 트라우마가 너무도 깊고 커서 설득이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으면서 통합을 위해 적극 나섰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조차도 이같은 트라우마 때문에 "진보신당으로 분당 후 악몽을 꾸는 습관이 없어져 너무 편했는데 통합을 이야기하자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물론 이번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는 알 수 없다. 결국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분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당권파의 비민주적 관행에 제동이 걸리고 당이 민주화될 것인지, 아니면 또 한 차례의 봉합으로 끝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됐건 현재처럼 당권파가 조사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당선자 사퇴 결정에 저항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얼마나 부도덕한 집단인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역사에 대해, 특히 '역사의 간계' 내지 '역사의 간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관심을 갖듯이 왜 이 같은 사건이 터졌는가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말도 되지 않는, (이의엽 위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못된 관행"이 왜 이제서야 비로소 사회적 의제가 되어 논쟁이 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도 되지 않는 이 같은 관행이 왜 그동안은 사회적 의제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 같은 문제들이 민주노동당에서 문제가 되어 쟁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가 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내부논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건들과 달리 이번 사건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답으로 여러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세력이 약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아 사회적 의제로 발전했을 수 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으로 일거에 제 3당으로 부상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물론 야권연대로 2004년보다 힘이 세졌다고 보아야 하지만 말이다.

둘째, 과거에 비해 이번의 경우 부정선거의 정도가 심해 사회적 쟁점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자백한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고려하면 정도의 차이가 그리 클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세 번째로 비당권파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과거에는 이 문제를 진보세력의 치부라고 생각해 쉬쉬하며 내부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만일 문제를 계속 은폐하려 하는 경우 검찰조사를 받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도 관계가 있겠지만 세 번째 차이가 중요한 변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목할 것은 이번 사건을 처음 제기하고 나섰고 계속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이청호 부산금정구의원 등 진보정당 움직임에 뒤늦게 합류한 국민참여당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진보신당으로 분당한 평등파의 경우 같은 운동권출신으로 같은 진보운동을 해온 '진보운동권 문화' 때문에 이 문제를 보수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을 정도로 공개적으로,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의엽 위원장의 표현대로 전혀 "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국민참여당 관계자들은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 상식 이하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게다가 과거에는 평등파가 힘이 약해 고립되었다면 이번에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의 평등파와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세력이 힘을 합쳐 반대파의 힘도 세졌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 ⓒ연합


이 같은 사실과 관련해, 주목할 또 다른 사실은 진보신당내 통합파, 민주노동당의 비당권파, 노동계 등 진보진영내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 건설에 국민참여당의 참여를 주장한 것이 바로 이정희 대표 등 민주노동당, 그리고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였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짚어 보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진보정당 통합 움직임이 활발했던 1년 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1년 전 진보교연 등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가운데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미래의 진보>라는 책을 함께 집필해 책 콘서트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보세력과는 거리가 먼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통합론이 '비민주진보대통합론'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노동당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진보통합 논의는 내가 이 지면에 소개했듯이 1)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통합하고 민주당 등 자유주의세력과 조건부로 선거연합을 한다는 '선 진보통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론' 2)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민주당의 우산 아래 들어가야 한다는 '빅텐트론' 3) 민주당을 빼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이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비민주진보대통합론'의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여야 했다.

이중 나를 비롯한 진보교연은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은 당내민주주의 등에서 일부 진보성이 있지만 민주당의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프로그램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등 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보다 더 보수적인 '우파자유주의세력'으로 진보정당을 같이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표와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이같은 주장을 무시하고 유시민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비민주진보대통합론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특히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간의 밀월과 비민주진보대통합론은 진보신당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야기시켜 진보신당의 통합파가 통합에 필요한 3분2 득표에 실패하게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러면 왜 당권파는 우파자유주의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주장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몸집 불리기이다. 전통적 진보세력만이 아니라 국민참여당 지지자들에게까지 외연을 넓히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 이와 관련이 있지만, '대중적 진보정당론'이라는 '우경화'이다. 당권파는 오랫동안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 등 '대중노선'을 강조해 온 만큼 대중노선이란 이름 아래 당의 우경화를 시도한 것이다.

셋째, 당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술일 가능성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통합할 경우 민주노동당의 비당권파와 진보신당 세력이 연합해 자신들의 패권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참여당을 끌어들여 이와 연합해 반대연합을 견제하고 패권을 유지하려 했을 가능성이다.

네 번째, 진보신당의 강경파를 자극해 진보신당이 스스로 통합을 거부함으로써 고사하기 만들기 위한 책략일 가능성이다. 사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론은 진보신당이 통합을 거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진보신당이 이번 총선에서 1%대의 저조한 득표에 그쳐 당이 해산당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외형적으로 보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이번 사건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당권파가 의도한 대로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래의 진보>의 북콘서트로 시작된 이정희-유시민의 밀월은 1년도 되지 않아 파국으로 끝나가고 있다. 유시민 공동대표와 국민참여당파는 이정희 공동대표와 당권파가 아니라 심상정 공동대표 등 평등파와 연대해 당권파와 싸우고 있다. 이제 당권파에서는 문제폭로에 앞장선 국민참여당 세력에 대해 "동지로 위장해 세작질을 일삼는 일군의 세력"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가 비당권파와 다른 진보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때문에 바로 이 같은 곤욕을 치르고 조직의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이고 자기 꾀에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의 간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잘못된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이긴 하지만 영국의 인도지배를 분석한 글에서 영국의 식민주의가 탐욕의 산물이고 잔인무도한 부도덕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도의 오랜 봉건적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역사의 도구'라고 분석한 바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며 문득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통합진보당에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을 참여시킨 것은 이들의 이념을 생각할 때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통합진보당 참여를 통해 오랫동안 진보진영의 발전을 가로 막아온 자주파 당권파의 패권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엄청난 역사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만일 유시민 공동대표와 국민참여당세력이 이번 사건을 통해 경기동부연합으로 상징되는 당권파의 패권과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이는 이들이 한국정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기여가 될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유시민은 자주파 당권파의 패권을 해체하고 한국의 진보정당이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사의 도구'인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