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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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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65>

감각의 제국 (2) - 시각

이번 글은 보는 것, 즉 시각(視覺)에 관한 내용이다.

먼저 우스운 얘기 하나 하겠다. 몇 달 전, 거리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남자 대학생 몇이서 ‘색즉시공’이란 임창정 주연의 코미디 영화를 놓고 즐겁게 담소하고 있는 것이 귀에 들려왔다.

필자 역시 그들의 대화 내용이 사뭇 즐거워서 딴청 피우면서 도청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그런데 색즉시공이 뭐니, 무슨 뜻이야?”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대답하기를 “응, 불교에서 쓰는 철학 같은 것인데, 색깔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감각적인 것이고 그러니 결국은 비었다, 즉 내용이 없다는 말인 것 같아.”라고 했다. 이에 나머지 학생들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지? 아무튼 불교는 골 때리는 말들을 한다니까.”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것이었다.

심심하던 차, 필자가 개입하고 나섰다. “이보게, 학생들, 그런데 색이란 것이 뭐지?” 그러자 원래 대답했던 학생이 “색이 색이지요, 영어로 칼러(color)가 색 아닌가요?” 이에 필자는 웃으면서 정답은 아니지만, 전혀 틀린 얘기 또한 아니라고 대답해주고는 개입을 마무리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색(色)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불교 용어이기에 이 말은 모든 존재는 근원적 실재(實在)성, 불교용어로는 자성(自性)을 지니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학생들은 색즉시공의 교설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틀린 대답이 될 순 없다.

불교 철학의 색(色)은 범어의 ‘루-파’(rupa)를 번역한 것으로서, 인간의 눈에 비치는 것에는 모양과 색깔이 있는데 불교 철학은 이 양자를 모두 색이란 어휘로 총칭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존재하는 모든 것이란 뜻으로 확대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 있느냐, 존재하느냐의 여부를 시각적인 정보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들리느냐 또는 냄새가 나느냐, 느껴지느냐 보다도 일단은 보여야만 그것을 존재한다고 그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들의 성향이다. 이는 시각(視覺)이 인간에게 얼마나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말해준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 역시 사람에게 있어 본다는 것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해준다.

보는 것은 눈으로 본다. 눈은 오행이 목(木)이고 보는 행위는 화(火)가 된다. 디자인이나 미술에 속하는 모든 것들은 그래서 불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 미(美)는 바로 불인 것이다.

뛰어난 화가나 미술가치고 사주에 불의 기운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없다. 그 중에서 병화(丙火)가 강한 사람은 영화나 좀 더 빛이 강렬한 방면에 두각을 타나내며, 정화(丁火)가 강한 사람은 그림 방면이나 디자이너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술가는 태어난 날, 일간(日干)이 주로 불이다.

색깔 역시 오행은 불이지만, 그 중에서 붉은 색은 불 중의 불이다. 그리고 우리말에서 ‘불’과 ‘붉’은 같은 어원을 지닌다. 그리고 붉은 색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기고 귀하게 여기는 색이다. 여기서 일부란 열사의 사막 지대나 열대 지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어떤 나라 사람들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는 그 나라의 국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살펴보면 상당수의 나라들이 국기에 붉은 색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붉은 색도 나라마다 톤과 느낌이 모두 다른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그 나라의 풍토나 기후, 특히 일조량과 관계가 깊다. 동구권의 국기가 사용하는 붉은 색은 상당히 창백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이며, 중국 오성홍기의 붉은 색은 탁한 붉음이라 탁홍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을 상징하는 토의 기운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붉은 색은 짙은 장미색으로서 고귀한 피를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성조기는 크림슨에 가까운 톤이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붉은 색의 톤이 다르지만, 가장 정통에 가깝다 싶은 붉은 색은 역시 우리 태극기의 선홍과 일본 일장기의 진홍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태양을 상징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우리의 경우 음양의 양(陽)을 대표하는 색이고 일본의 경우 좀 더 즉물적으로 태양이다. 두 나라 모두 나무의 기운을 지닌 나라들이라 목생화(木生火)하여 불과 태양을 지향하는 것이다.

시각은 동시에 통찰력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두뇌 구조가 그 기본에 있어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두고 직관(直觀)이 좋다는 말을 쓴다. 직관이란 사물의 본질을 빠르게 통찰한다는 뜻이며, 지혜 역시 그 뒤에 ‘빛’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지혜의 빛’이라고 얘기하곤 하는 것도 시각 정보가 결국은 불의 또 다른 성질인 빛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언어 역시 오행 상 불이며, 보는 행위 역시 불이기에 인간은 언어사용과 색깔을 구분하는 뛰어난 시각 능력이 있었기에 지구상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색(color)이란 대단히 묘한 데가 있다. 색이란 빛의 전자파 중에서 특정 파장을 지닌 것들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감지되는 것이다. 인간이 색을 지각하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한 신경 중추적 작용이 개재되어 있다.

또 빛의 파장에 따라 색을 감지하는 것은 물론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나름의 감각기관이 발달되어 있겠지만, 우리는 현재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인간이 느끼는 색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현대 과학은 미처 인지하고 있지 않다.

가령 어떤 물체가 붉은 색으로 보일 경우, 그것은 단지 그 물체가 붉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성질이 불의 기운을 지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예로서 붉은 토마토는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치유 효과를 지닌다. 심장은 오행이 화(火)이고, 붉은 색 역시 화의 기운을 말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태양 빛 아래 자라난 포도와 그 것을 빚은 포도주는 태양의 정기를 담고 있어 그 또한 심장 계통이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포도의 외양은 검붉은 색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색상만으로 물체의 성질을 알아낼 수 있다는 발상이 고도로 조직화된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과일이나 식물, 약초 등의 경우 그 외피와 내부 속의 색상이 다른 경우가 더 일반적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외피의 색상만으로도 우리는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은 인간이 지닌 색 지각능력이 단순히 색상을 감지하는 것 이상의 진화적인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진 색 감지 능력은 그간 알려진 색의 상징성을 넘어서서 사물의 본질까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통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나아가서 이미 수 천 년 전에 어떤 사물은 음양오행 상 무엇에 속한다는 것을 규정한 음양오행 배속표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활용할 경우 우리는 사물의 정성(定性)적인 면에 있어 대단히 심원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얼굴이 붉어 보이는 경우, 그것은 안면 피하의 모세혈관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로서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까지 통찰할 수 있는 것이다. 콧등이 붉은 딸기코의 경우, 코는 금(金)이니 백색을 띄어야 하는데 붉은 색은 화(火)이니 화극금(火克金)하여 그 사람이 만성 알콜 섭취로 인한 병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색이나 빛을 통하는 시각 정보는 우리가 지닌 그 어떤 감각기관보다도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시각 정보는 다시 말해서 가장 명증(明證)한 정보이며,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 이처럼 눈에 확연히 드러나듯이 명확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는 명증이나 명확이란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또한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 있으니 빛 또는 시각 정보와 관련되고 있다.

후각정보, 즉 냄새는 추상적이다. 우리가 무엇을 의심하거나 수상하게 여길 때, 냄새가 난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냄새란 것은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확신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반면에 보인다는 것은 더 이상의 망설임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로 하여금 확고한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냄새 정보는 오행이 수(水)이기에 추상적이고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리송한 성질을 지닌다면, 시각 정보는 화(火)이기에 그야말로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불과 물은 이 점에 있어서도 그 대극(對極)을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중간 영역에 있는 감각 정보들이 있다. 청각과 촉각,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미각이 있다. 이런 유의 감각들은 물과 불의 중간성을 보이는 것들로서 다음 글에서 이어 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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